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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Oct 02. 2023

(D-13) 다시, 호수

대청호 마라톤 D-13


4년 전, 마음이 사라지는 병이 찾아왔을 때 사람들 있는 공간에서 숨 쉬는 것이 어려워 한 달 반의 병가를 냈다. 휴가가 시작된 초반에는 병세가 심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남아있는 능동의 가능성이라고는 달리는 차에 뛰어들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스스로 움직여 남은 생을 끊는 것뿐이었다.


더 살아도 좋을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목줄 잡힌 채 죽음의 문으로 끌려가는 식용견을 생각하면서도 빼놓지 않고 병원에 다녔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약을 삼켰고 목울음 같은 하루를 끝내 이겨내고 다시 한 줌의 약을 먹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좋아졌다. 사람들이 칼을 들고 덤비는 망상을 여전히 떨치지 못했지만 도서관은 안전하다고 느껴 종일 머무를 수 있었고, 마주 오는 덤프트럭에 달려들고 싶은 충동이 없진 않았지만 '그거 미친 거야' 제어하며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오갈 수 있게 되었다.


가을바람이 좋던 어느 날, 옆동네 호수로 갔다. 맑은 볕 아래에서 이마를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모든 게 좋아질 것만 같았다.


한낮의 호수는 반짝였고 몹시 컸다. 높이 뜬 해는 거침없이 제 빛을 발했다. 유려한 곡선을 가득 채운 호수는 충만히 존재했다. 작은 새가 날개를 펴 하늘에 사선을 그었고 하늘 아래 나무가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아름다워서 나는 다시 아팠다.

손마다 커피를 들고 환히 웃으며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들과 나 사이에 깊은 선이 그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선 밖이 나의 자리였고 선은 아픈 심장에 뚜렷하게, 또 한 번 그어지는 비정상의 작인 같았다.

  

그날, 자전거를 타고 삼분의 일도 채 돌지 못한 채 억억대며 도망쳐 나왔던 호수를 오늘, 4년 후 오늘, 다시 찾았다. 발과 다리, 허리와 등, 어깨와 팔을 움직여 호숫가를 달렸다. 눈을 들어 태양과 하늘과 나무와 물결을 바라보며, 다시 이마를 스치는 바람을 조심스레 맞으며 호수 한 바퀴를 천천히 달렸다. 내가 많이 나았구나, 눈물이, 주책맞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은 달리는 마음이 이상했다. 마음이 흔들렸다. 몸이 울었다.

그동안 애쓴 내가 기특하고 고마워서, 아직 온전치 못한 것이 조금은 짠해서 오늘은 좀 이상하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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