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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Oct 08. 2023

(D-7) 어깨에 손을 얹고


대청호 마라톤 D-7


고쳐질까 싶다. 

15m에서 20m 앞을 보고 달리라고들 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고개를 떨구고 발 앞을 내려보며 뛴다. 


마음 사라짐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 5년째. 하필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걸 어려워하는 사회불안증이 병 중 하나로 와 사회생활이 곤란하고 난처하고 버겁다. 명랑 쾌활하게 회사 곳곳을 누비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하던 사람. 그 사람으로 산 시절이 더 길었는데도 그에게 내 이름 석 자 붙이는 것에 단호하고 성질 사나운 거부감이 든다.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사람들이 오기 전 출근하고 근무시간을 채운 뒤 일찍 퇴근한다. '내가 이놈의 빚만 없었으면'으로 출근길에 나서고 시야에 회사 건물이 들어오면 세차게 가슴을 치며 한 번 더 빚타령을 한다. 육중한 건물(에 압사할 것만 같은 두려움을 안고) 안으로 들어가면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내 자리에 가 앉는다. 괜히 두리번거리다 누구라도 마주치면 아침부터 심장이 곤란하다. 


직원들이 들어오는 출근 피크 시간에는 책상에 펼쳐놓은 책이나 신문에 얼굴을 박고 목소리로만 인사를 한다. 9시가 되어 사람들로 건물이 꽉 차고 시끌벅적 또 한 세상이 펼쳐지면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에너지를 한껏 끌어올려 애쓰고 용쓰기를 시작한다. 물론 그걸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다. 그래봤자 남들 눈 감고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기, 회의 참석하기, 업무 의논하기, 전화 통화하기 같은 것들이니까.


결재나 협의를 위해 다른 부서에 가야 하는 경우 혹은 코앞인 화장실을 갈 때엔 두 눈을 복도 바닥에 붙이고 걷는다. 곁을 볼 수 없도록 양쪽 눈 끝에 채우는 경주용 말의 눈가리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그렇게 걷게 만든 마음의 고집이 달릴 때에도 여전한가 보다.


 '고개 들어야지' 달리는 내내 고개 숙인 내게 말을 걸 때면 아픈 자식의 어깨에 손을 얹는 것 같은 심정이다. 조심스럽고 두렵다. 눈을 들어 초록 이파리도 보고 푸른 하늘과 흰 구름과 작은 새를 보며 즐겁게 달리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너에게 힘이 든다면 지금도 괜찮다고, 그렇게 발 앞을 내려보고 달려도 괜찮다고, 네가 나쁜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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