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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Oct 24. 2023

다시, 달리기


감기 증상은 가시지 않고 외부 일정까지 잡혀 며칠 동안 달리지 않았더니만 새벽잠 꾀가 늘었다. 일어나고 싶지 않아요, 밖은 춥잖아요, 폭신한 순우피─스누피인 줄로만 알고 결제했지─ 안고 더 잘래요. 


그래, 가혹하긴 하다. 10월 쌀쌀한 새벽, 4시 반에 외로운 달리기라니. 하지만 그래서 좀 멋지잖아? 남들 다 일어나 있는 때에 너도 나도 걷는 틈 사이에서 달리고 싶은 거야? 에이, 아니지. 멋지지가 않잖아. 

두 뺨에 닿는 새벽공기, 머리칼 사이를 지나는 새벽바람, 짙푸른 새벽하늘과 총총한 새벽별 그리고 그 모든 것 사이를 홀로 달리는 고독한 새벽러너. 이걸 어떻게 포기하냐고. 


어제 모처럼 마음먹고 일어나 달리러 나갔다. 이제 7km 정도는 매일 뛰는 거리라 거뜬했는데 고작 며칠을 달리지 않았다고 힘에 부쳤다. 컨디션이 정말 좋지 않은 날이 아니고는 쉬지 않고 달리는 거리인데 아이고 힘들어. 어제는 3.5km 부근에서 멈춰 40초가량 걸었다. 7km를 다 달리긴 했지만 말끔하게 뛰진 못해서 영 찝찝했다. 


오늘은 좀 더 결연한 의지로 일어났다. 그동안 쌓아온 러너의 컨디션을 이렇게 놓을 순 없다, non-러너의 삶이라니, 이제 내 인생에 그런 시절은 없을걸?! 

물 한 컵을 마시고 세수를 하고 준비운동을 하며 살짝 떨렸다. 늘 뛰던 7km인데 이거 참. 


밤새 문 닫힌 안온한 곳에 머물다 새벽, 그 차고 트인 시공간에 나서면 언제나 똑같은 기분을 느낀다. 살아있다는 확신. 어쩌면 그 확인을 받고 싶어 매일 죽음 같은 잠에서 기를 쓰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아닐는지. 


근사한 달리기였다. 들이마시는 숨이 너무 차갑지도 거칠지도 않아서 편했고 발구름도 가벼웠다. 어젯밤 갑자기 뭉친 등근육도 달리면서 풀어지는 것이 느껴져 신기했다. 잘 달려지는 날이면 언제나 드는, 어쩐지 키가 커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어제 멈춘 곳에 도착할 즈음 살짝 긴장됐지만 충분히, 여유 있게 달려 나갔다. 그렇게 전처럼 편안하게 7km를 뛰었다. 멋진 기분이 들었다. 처음 10km를 완주했을 때만큼 근사했다. 


아무도 보지 못하고 아무도 관심 없는 나의 새벽 달리기. 몹시 멋있어서 당최 그만둘 수 없는. 

순우피야, 우리의 동침은 더 은밀한 때, 그때 이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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