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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Nov 07. 2023

행운목 버리기



나이가 드나 보다. 식물이 어여쁘다. 

최소한의 양식을 취해 이파리를 피우고 열매를 맺고 뿌리를 뻗는 그들의 간소하고 힘센 생명력이 감동스럽다. 




너도나도, 이 책 저 책, 이러저러한 콘텐츠마다 우울증을 말하는 것이 마땅찮다. 이렇게 보편적으로 소비되어도 괜찮은 질병인 것인가. 중등도 우울장애 환자로서 희소성을 빼앗기는 것 같아 영 탐탁지가 않다. 

하지만 질병에 귀천이 있을 수 있나. 저마다의 통점과 역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것이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아닐까. 

그렇지만 아무래도 대책 없는 자기 연민 혹은 가여움 유발의 아이템으로 우울증이 대량 유통되는 것은 떨떠름하다. 


우울증의 정도를 구분하는 의학적 기준은 모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뭐 죽어도 큰 상관없겠어. 지금 뛰어내릴까?'라는 생각을 줄곧 하던 때를 정말 위험했을 때라고 본다. 살아야겠다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전혀 없는 상태, 도리어 죽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하는 것이 편하겠다 마음 기우는 상태. 




우직하게 약을 먹으며 병세가 호전되어 가던 어느 날, 생명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이 솟구쳤다. 살아있는 것들에 둘러싸여 그들이 내뿜는 숨을 확인하고 싶었다. 


화원으로 달려갔다. 거대한 비닐하우스, 그 안의 초록 식물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심장이 뛰었다. 살아있어. 내가 살아있어. 이 생명들이 나를 기다려왔어. 





고무나무, 한라봉 나무, 올리브 나무, 스파티필름, 싱고니움.

식물과 함께 지내본 적 없는 내 곁에서도 오래 살아줄 것 같은, 건강해 보이는 식물들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껏, 모처럼 한껏 상기된 얼굴로. 


죽지 않고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키를 키우고 잎을 내는 녀석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받았다. 연한 것들이 내어주는 굳건한 응원을 마음 열어 온전히 받았다. 그렇게 새롭게 건강해졌다. 





어느 날 길을 걷다 버려진 유기 식물을 보았다. 망설임 없이 화분을 들고 와 흙을 갈아주었다. 지금껏 욕심 없이 잘 자라주고 있다. 

어제는 매일 바쁘게 굴러가는 사무실에서 한 구석에서 목숨 다한 채 꽂혀있는 행운목을 발견했다. 수소문 끝에 주인을 찾아 (멋쩍어하는) 그에게 화분을 넘겨받았다. 바짝 마른 행운목은 회사 마당에 묻고 불합리한 회사일에 울화 치미는 내 옆에서도 의연하게 잘 자라줄 조그만 나무를 하나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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