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숙함 버리기

손목 관절은 몸을 이루는 360개 관절 중 고작 8개 뿐이다. 

오른 손을 주로 쓰는 나는 오른 손목의 염증이 재발할 때마다 삶의 좌우가 바뀌고 균형이 무너지고 포기가 많아질 뿐 아니라 속도가 급감한다. 

손목 힘줄 염증은 치료법이 너무나 단순해─쓰지 말 것─영원히, 언제고 도지고 마는 지병이다. 석고를 대고 붕대를 감을 때마다 오른쪽 손가락, 손바닥, 손등, 손목, 팔뚝, 팔꿈치, 어깨는 쓸모를 잃고 왼쪽 손끝부터 어깨까지는 과도한 노동에 녹초가 된다. 무탈했던 일상이 능숙을 잃고 어설픈 움직임으로 바듯이 이어진다.

오른손 잡이가 왼손으로만 살기에 무엇이 불편한가.

세수와 양치와 머리감기와 샤워가 개운하지 않다. 생선 발라 먹기 어렵고 깻잎 한 장 떼기 어렵고 콩자반 집기 어렵다. 자동차 기어 넣고 운전대 잡은 상태에서 깜빡이나 와이퍼 켜기 상당히 어렵다. 과자봉지 열기 어렵다. 콘 아이스크림 까기 어렵다. 핸드폰에 타자 쳐넣기 어렵고 자전거 타기 어렵다. 로또 살 때 지갑 열어서 오천원 꺼내기 어렵다. 책에 긋던 밑줄이 삐끗, 쭉 내려간다. 이만저만 성질 나는 게 아니다.

이 정도를 겪어야 장애를 생각한다. 나와 다른 손을 쓰는 사람을 생각한다.

조금 부끄러워서 모처럼 찾아온 생각을 더 넓게 둘러보지 못하고 서둘러 접어넣는다. 

부끄러우니까 다시 펼쳐보는 게 맞는 거겠지? 접힌 자국까지 곰곰 살펴보는 게 맞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