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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May 01. 2024

보이스 11

우산 너머


아라는 일하는 곳 문밖을 나왔다. 속박에서 해방된 것 같다. 후련함을 느끼며 나오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확 내리는 비는 아니고 부슬부슬 비가 약한 물줄기를 뿌리며 내리고 있었다. 아라는 평소 가방 안에 우산을 들고 다녔다. 우산을 꺼내 펼치고 평소 준비 잘하기를 잘했다며 자신을 칭찬했다. 우산을 들고 주차장에 가서 시동을 켰다. 인제야 휴대전화를 꺼내 연락이 온 것 있는지 봤다. 오래간만에 일하러 갔는데 할 일이 너무 많아 핸드폰을 볼 시간이 없었다. 부재중 전화가 10통 와있었다. 누가 전화했는지 확인했다. 네시부터 오페라 같이 보기로 경이에게 연락이 왔었다. 전화할까 하다 카톡을 확인했다. 역시 그 친구로부터 많은 카톡이 와있다.
'아라야, 전화가 안 되네. 아주 바쁜가 봐. 큰일 났어. 오늘 회사 일이 늦게 마쳐 오페라 시간까지 못 가. 일찍 퇴근하려고 집중해 자료 만들어 보고했는데, 팀장이 다시 작성하래. 내일 아침 8시에 부사장님에게 보고해야 하니까 오늘 완성한 후 퇴근하라 하네. 아라야 진짜 미안해'
'아라야, 오페라 마치고 나서 공연장 바로 근처 레스토랑에 와. 예약해 놓을게. 공연장에서 운전해 3분 거리니 식당에서 바로 보자. 맛있는 거 사줄게. 아라야 너무 미안해'
아라는 짜증이 나서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핸드폰 거치대에 두고 시동을 걸었다. 대답하지 말지 고민하다 화는 나지만 회사 일 때문이라는데 어쩌겠는가? 참기로 했다.
거치대에서 핸드폰을 꺼내 답변을 보냈다.
'알았어. 화나지만 이번만 특별히 참을게. 어쩔 수 없지.'
'아라야. 사랑해. 진짜 고마워. 너 혼자 공연을 보게 해서 미안해.'
공연을 혼자 보러 간 적이 거의 없던 아라는 경이가 못 와서 혼자 보는 것도 싫지만 예약해 둔 표 한 장을 그냥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돈이 아까웠다. 지금은 갑자기 누군가와 같이 갈 수도 없는 처지다. 그냥 혼자 보기로 하고 공연장에 도착했다. 리골레토 역을 한 배우 중저음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오페라가 마치고 나오니 아까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나오는 그곳에서 혼자 비 오는 밤에 걸어간다는 게 쓸쓸했다. 공연장 문을 나서 우산을 폈다.
'주차장이 왜 이렇게 먼 거야? 아까보다 정말 춥네. 대체 기온이 몇 도이지? 겨울은 겨울이구나.'
주차장까지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아라가 걸어가고 있는 길 맞은편에 위아래 검은색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지나간다. 우산 너머 슬쩍 그 남자를 봤다. 그 순간 아라는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왜일까?
그 남자는 검은색 패딩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우산을 눌러써서 얼굴형체는 볼 수 없었다. 인상적인 건 크고 하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밤인데 마스크가 하얀 것을 넘어서서 형광 흰색인 듯 과한 빛이었다. 요즘은 코로나나 전염병이 많이 사그라들어 마스크 쓴 이를 거의 보지 못하는데, 질병에 걸리고 싶지 않은 건강 염려증 환자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 남자 옆을 지나가는 순간 아라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남자가 분명 나를 노려봤어. 그럴 리가. 대체 왜? 미친 사람도 아니고. 내가 예민한 거야.'
그 사람은 아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그냥 행인일 뿐인데 본인을 왜 노려보겠는가?
'아 나는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사람인가 봐.'
공연장에서 주차장 가는 보도블록으로 평평한 바위가 깔려 있다. 예전 그곳을 걸어갈 때는 참 경쾌하다고 생각했는데, 비 오는 오늘은 이상하게 소리가 묵직하다. 무거운 소리, 좀 전에 봤던 소름 끼치는 남자의 표정을 마음에서 얼른 지우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바닥에서 내가 걷는 소리가 둔중한 울림으로 난다. 몇 걸음 걷다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나 혼자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와 동시에 같은 보폭으로 걸음을 딛고 있다. 살짝 속도를 늦추었다. 누군가도 똑같이 속도를 늦춘다. 걸음 소리 외에 다른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이 세상에 걷고 있는 나와 어두운 밤길 누군가가 나를 따라오는 걸음 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모두 사라진 듯.

아라는 따라오는 소리의 정체를 밝혀내고 싶지만, 뒤돌아볼 수가 없다. 돌아보는 순간 블랙홀에 빠져 시간이 완전히 멈춰버릴 것 같다. 시간이 멈추고 내 몸은 유화 물감이 흩뿌려진 것처럼 늘어진 상태로 멈출 것 같다. 아라는 우산 든 오른손에 힘을 주고 왼손으로는 재킷을 꽉 잡는다. 빠른 속도로 걷는다. 그때였다. 둔중한 소리와 함께 아라는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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