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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May 15. 2024

보이스 13

J이야기


여자 J는 어릴 때부터 타인의 눈치를 보고 살았다. 항상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는 엄마, 가정에 무관심하고 얼굴 보기 어려웠던 아빠와 같이 살던 J는 엄마의 표정이나 기분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엄마가 기분 좋아 보이는 날에는 J도 어깨를 펴고 살았고,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뭐 하나라도 엄마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다. 조용히 청소를 하고,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방에 틀어박혀 엄마 눈에 띄지 않게 했다. 만약 뭐라도 하나 걸린 날은 엄마의 하소연을 몇 시간 내내 들어야 했다. 시집올 때의 상황,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도는 아빠의 만행, 친구들과 비교해 잘 못살고 있는 듯한 자격지심, 경제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 가난, 시부모님 특히 시어머님의 시집살이, 어린 도련님과 아가씨의 학교 뒷바라지까지 했던 일 등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J는 내내 고개 끄덕이며 들어야 했다.
어릴 때부터 외모, 학력, 인간관계 때문에 위축되어 있었던 J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양육 방식 때문에 본인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말만 꺼내면 내내 다른 집과 본인의 삶을 비교했고, 다른 집 아이와 자녀의 공부 등을 비교당하며 살아온 J는 내내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거울 볼 때마다 얼굴형, 눈, 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매일 거울 볼 때마다 인생이 망한 것처럼 느껴졌다. 날이 갈수록 무던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는 안 보였던 못생긴 부위까지 부각되어 보였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중, 고등학교 다닐 때는 반 아이들 두세 명이 모여 얘기만 해도 본인 이야기를 하나 의심했고, 웃음소리만 들려도 본인이 못생겼다고 비웃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성격은 갈수록 소심해졌고, 학급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눈에 띄면 죽기라도 하듯 숨죽여 지냈다. 그러다 성형수술을 하면 인생이 달라질 것 같았다. 수술 자체가 무서워 처음에는 눈만 했다. 한두 달 후 자연스러워진 눈을 보며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이번에는 코를 했다. 이마에 지방 이식수술을 하고 전신 지방흡입 수술을 했다. J는 자기 자신 아닌 듯한 모습을 거울에서 보며 숨쉬기가 편해졌다. 이제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뒤로 안면윤곽수술, 여러 번의 눈과 코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한 번 할 때마다 자신감이 쏫아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J는 죽고 싶다. 18번의 수술 후 남은 것은 눈이 감기지 않는 큰 쌍꺼풀, 수술했다는 표시가 나는 큰 쌍꺼풀 자국, 지방흡입수술로 인한 켈로이드, 부자연스럽다 못해 외계인 같은 얼굴형이 남았다.
자신감을 줬던 성형수술이 이제는 J를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골목길로 몰아갔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나 학교에서 내내 숨죽이는 삶을 살았던 J는 성형 수술의 부작용으로 갈수록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편하고 쉬워 보였다. 이 얼굴로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지옥이다. 죽으려고 해 봤지만 죽을 수가 없었다. J는 누구보다 겁이 많은 사람이라 아프거나 무서운 방법으로 자살하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다. 죽고는 싶지만 쉽게 죽고 싶다. 높은 층에서 뛰어내릴까 싶어 아래를 바라보니 숨 막혀서 떨어지기 전에 죽을 것 같았다. 떨어지는 순간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연예인들이 번개탄을 차에 피워 자살했다는 뉴스처럼 본인도 번개탄으로 죽어 볼까, 또는 수면제 약을 계속 모아 한꺼번에 먹고 죽을까 등 여러 가지 자살의 방법을 생각했다. 겁이 많은 J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 인생의 큰 숙제 같다.
대학교라는 체제에 다시 들어가서 고통스럽게 산다는 게 끔찍해서 J는 대학교도 포기했다. J는 회사 일 하다 돌아가신 아빠의 산재 보험,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엄마의 사망보험료로 생활한다. 미움의 대상이었던 엄마, 그 엄마를 힘들게 했던 아빠가 돌아가시자 남은 것은 허탈함과 약간의 돈이었다. 애증의 대상이었던 엄마가 죽은 후 돌아보니 불쌍한 마음만이 남았다. 죽으면 저렇게 한 줌의 재가 되는 것을 왜 그렇게 자녀를 힘들게 했을까? 왜 본인의 고통과 불안한 마음을 자녀에게 다 쏟아부어 불행하게 했을까? 미움이 약간 흐려져 가던 어느 날 J는 성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성형 부작용을 치료해 보고자 서울의 유명한 병원을 검색해서 찾아갔다. 그날도 눈과 코 재수술 상담을 받기로 한 날이었다. J는 불면증에 시달린다. 어린 시절부터 내내 고질적인 병이었다. 성형 수술이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 때만 잠을 푹 잤다. 여러 번의 성형으로 부작용이 심각해진 지금 J는 낮에도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몽롱한 상태로 살아간다. 현실인지 가상인지 우주인지 지구인지 모든 것이 분간 안 될 때도 있다.
J는 아진이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J는 서울역에서 내려 아진을 본 것이 아니었고 기차 안에서부터 아진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J는 기차 18호차에 있던 아진을 처음부터 의식하고 있었다. 아진이는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외모였다. 183cm 정도 되는 키에 자연스러운 곱슬머리, 편안하고 호감 가는 외모였고, 소위 말하는 댄디한 남자 친구룩을 잘 소화하고 있었다. 멜톤 올 롱 코트 베이지 컬러 안 깔끔한 베이직 니트와 화이트 셔츠, 블랙 컬러의 팬츠가 잘 어울렸고, 시계와 벨트로 포인트를 주었다. J는 계속 아진이를 바라보았으나 아진이의 시선은 J에게 닿지 않았다. 서울역에 도착했다.
'지금 이후 이제 저 사람을 못 볼지도 몰라. 그냥 궁금해.'
기차역에서 지하철로 가는 길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는 분명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왜 그때 아진이가 웃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을 보고 웃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런 미소를 가진 남자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J는 성형 수술 실패 후 주눅 들어 있던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 사람이 처음이었고, 아진이의 모습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J는 아진이가 눈치채지 않게 따라갔다. 지하철 4호선 플랫폼에서 그의 시선에 들고 싶어 아진의 옆에 섰다. 서울역에서 혜화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눈에 띄지 않게 그를 흘끔 바라보았다.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그도 나를 봤을까?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아까 미소 지은 건 내게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지하철 문이 열리고 J는 아진이를 따라갔다.
하지만, J는 아진이를 따라간 것을 바로 후회했다.
아진이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통화 소리를 들었다.
"나 방금 지하철에서 성괴 봄. 흐흐 눈과 턱한 거 진짜 티 나네. 눈 여러 번 한 건지 완전히 망했어 흐흐. 신기하게 눈 크기와 쌍꺼풀 크기가 같다? 눈 안 감길 것 같아. 근데 그런 생각할 때 그 여자랑 눈 딱 마주침. 깜짝 놀라고 멋쩍어서 웃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머리 넘기며 웃더라. 눈 바로 바닥으로 돌렸지 크크 깜짝 놀랐어. 혹시 본인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사람들이 붐비고 어수선한 이곳에서도 J는 정확하게 그 말을 들었다. 세상이 멈춘 듯 J의 귀에 아진의 말은 한 자, 한자 똑똑히 들려왔다. J는 수치심을 느꼈고, 심장을 후벼 파는 듯한 상처를 받았다. 예리한 날로 잘 갈아진 화살촉이 심장에 들어가 360도 회전을 하는 듯했다.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죽여버리고 싶다. 분한 마음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세상이 본인에게 준 모든 불행의 원인이 아진이기라도 한 것인 양 화가 미친 듯이 끓어올랐다. J는 양손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었다. 잠시 후 결심을 한 듯 두 손을 주먹 쥐고 오른손에 짐 들고 있던 가방을 꼭 쥔 채 뛰어간다. J는 저만치 앞에 가고 있는 아진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무수히 많아 움직이기조차 힘든 그곳에 모세의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사람들은 J가 뛰어가게 자리를 열어주었다. 모두가 짠 것처럼 일제히. J는 달려가 주먹 쥔 오른손의 가방으로 아진의 머리 부분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악!"
아진이는 머리를 움켜쥔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놀라서 수군거린다. 사람들은 처음엔 놀라움의 감정이, 시간이 좀 지난 후부터는 아진이와 J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 갑자기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J는 급하게 뛰어간다. 사람들이 저 사람 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수군거린다. 아진이는 아픈 머리를 움켜쥐고 숨을 못 쉴 정도로 아팠다. 아픈 것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 일을 당한 게 부끄러웠다. 그것도 여자한테 맞은 것도.
"야, 너 뭐야? 거기 서." 외치며 달려간다. 맞은 부위가 얼얼하고 아프다. 자기가 왜 맞아야 했는지, J는 자기를 왜 때렸는지 궁금하다. 아니 이유를 떠나 저 여자를 잡아 복수하고 싶다. 감옥에 넣든 같이 때리든 뭐든 하고 싶은 생각이다. 그녀를 쫓아가려는 아진이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던 찰나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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