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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May 22. 2024

보이스 14

엄마


꿈인가? 엄마가 책상에 앉아 뭔가를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엄마’라고 외치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다.
‘엄마에게 내가 보일까? 이거 꿈인가?’
아진이는 엄마를 바라본다. 희한하게 엄마가 편지 쓰고 있는데, 편지 내용이 눈에 보인다.
‘나 지금 천국 온 거야? 갑자기 죽게 되어 저승 못 가고 이승에서 가족과 마지막으로 얼굴 보는 건가?
어떻게 된 거지? 아까 뭔가 큰 고통이 느껴지더니 기억을 잃었어. 저승사자나 천사 뭐 그런 존재가 지금쯤 나타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편지를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분명 엄마는 아무 말 안 하고 있는데,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아진아~ 공부하기 위해 6시라는 시간에 눈을 억지로 떠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안쓰럽단다. 얼마 전까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걱정으로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는 널 지켜보며 마음이 아팠단다. 누구보다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데, 널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깨우고 아침밥을 준비하는 것이 다구나. 네가 스스로 힘을 내고 기운차게 해야 할 일을 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하길 바라며 묵묵히 네 주위에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구나.
지금 넌 무거운 몸을 일으켜 씻고 머리를 말리는구나. 오늘 아침으로 따뜻한 어묵탕을 준비했어. 2월의 아침은 이불에서만 잠깐 나와도 추위가 느껴진다. 맛있는 어묵을 넣어 정성 들여 준비한 어묵탕을 먹으렴. 어묵탕이 네게 온기를 주고, 위로와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 어묵탕에서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엄마구나. 내가 지치고 힘들 때 별같이 아름다운 존재인 너, 아진이 덕분에 힘을 냈듯 나도 너에게 별 같은 존재가 되고 싶구나.
하늘이 희뿌옇다. 잿빛 색의 구름이 가득하였는데, 잿빛보다는 더 밝고, 하얀색에 가까운 구름이 잿빛 구름을 밀어내고 있다. 너를 보내고 난 뒤 몇 줄의 글을 쓰고 고개를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잿빛의 구름이 거의 다 사라졌지 뭐니? 나는 너에게 저 잿빛 구름을 밀어낸 하얀 구름이 되고 싶고, 깜깜한 밤에 아름답게 감성적으로 만드는 밝은 별이 되고 싶구나.
잿빛과 하얀 구름이 왔다 갔다 자기들끼리 공간을 차지하려는 서열 싸움을 하다가 어느 순간 어둠에 묻혔어.
바깥은 어둑어둑해. 분명 오후 2시인데, 밝아야 할 바깥 색들이 어두워지고 있어.
정확하게는 잿빛과 먹색과 회색 등 다양한 느낌의 색들로 가득해.
하늘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하늘에 있는 잿빛 구름이 움직이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네. 움직이는 모습이 왜 보였는지 아니? 잿빛 구름 뒤에 하얀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야.
하얀색이 진하게 그려져 있었기에 잿빛이 그 색인 줄 알겠다.
하얀색의 구름이 배경에서 일부 나와 뭉쳐진다.
잠시 고개를 숙여 너에게 쓰던 편지를 이어 쓴다. 그러다 깨달았어. 너에게 쓰는 편지는 결국 부치지 않고 묻어둘 것임을. 그 시절이 지나서야 청춘임을 깨닫고 멋지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어려운 일과도 과감하게 부딪쳐서 헤쳐나가 볼 걸이라고 후회한다는 진리를 구구절절 쓸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너에게 내가 지금 할 말이라고는 격려, 응원의 말이고 지금 제일 힘든 것 같지만 미래의 너에게 힘들었던 상황이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는 말을 할 것이 뻔해. 그 편지를 받은 너의 표정도 눈에 선하단다. 샌님, 아재, 진부 이런 단어를 모두 합친 것을 머리에 떠올릴 때 떠오르는 표정을 지을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오네. 너에게 쓰던 편지를 그만두고 일상생활에 대한 글을 적어야겠다고 결심했어.
습관이 되지 못하고 내 실루엣 주변만 맴도는 글들.
잠시 무슨 주제로 글을 쓸지 고민하며
노트북에 제목을 적었어.
내용을 쓰려할 때 잠시 고개를 들었어.
흐린 하늘을 보며 쓸 내용을 떠올리고 싶어서.
잠시 후 뭉쳐진 하얀 구름이 잿빛 구름을 밀어내기 시작하네.
서서히 밀어내더니 어느 순간 하얀 구름이 잿빛을 거의 다 몰아냈어.
몇 분이 흘렀을까? 바깥 색들이 전체적으로 밝아졌어.
몇 분 동안 고개를 아래로 내리고 글을 썼어.
잠시 아까 봤던 밝은 기운을 느끼려 고개를 들었는데 앗!
바깥 색이 다시 어두워지고 있었어.
잿빛, 회색 구름이 많이 뭉쳐져 하늘의 꽤 많은 부분에 자리 잡았어.
왔다 갔다 하는 하늘의 변화는 내 마음 같구나.
생각할까? 독서할까? 글을 써볼까?
그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늘은 또 변해있을 테지.
아진아!
지금 넌 학원에서 수업 듣고 있겠구나. 수업에 집중이 되니? 아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하고자 하는 공부가 잘 안 되어 괴로워하고 있을까? 그냥 별생각 없이 있을까?
너에게 요즘 기쁨을 주는 일은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무척 궁금하구나.
하늘을 보며 내내 네 생각을 한 것 보면 나는 무척 너를 아끼고 사랑하나 보다.
네가 알든 모르든 넌 내게 무척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란다. 그 사실은 하늘의 변화와 달리 변함이 없단다.
오늘도 부디 행복하길, 조금 있다가 집에 올 너의 표정이 지치고 힘든 표정이 아니길 기원한다.’

‘저건 2년 전쯤 내가 고3 때인 것 같은데? 지금 이 장면이 현재가 아닌 2년 전 엄마의 모습인 거야? 왜 과거로 왔지? 내가 죽은 게 아니라 꿈꾸고 있나 봐.’
아진이는 좀 전 엄마인 아라가 본인에게 편지 쓰고 있는 장면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느꼈다. 본인이 엄마가 된 것처럼 엄마의 감정이 다 느껴졌다. 아라는 물아일체 타인과 나, 사물과 나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것만 같다. 내가 나비인지 내가 나비인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 모르는 것처럼 아진이는 지금 내가 엄마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내가 엄마인지, 내가 엄마의 마음과 생각을 관찰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럽다. 내가 엄마가 된 건가? 엄마의 모습을 한 ‘나’가 식탁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아진이는 엄마를 관찰하고 있다고 처음에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엄마 그 자체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난 분명 김아진인데, 왜 엄마 그 자체인 것 같을까? 엄마의 예전 나이대로 돌아간 시절을 내가 엄마인 듯 경험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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