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ppysmilewriter Jun 26. 2024

보이스 19

평범함의 위대함


동네 조직원, 깡패인 그들이 영철에게 주사를 놓은 그날부터 영철은 약의 노예가 되었다. 그들은 영철이를 완전 낭떠러지로 밀었다. 밤늦게 돌아간 날 집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영철은 그다음 날부터 내내 이상한 생각이 들고 소름 끼치는 나쁜 생각에 그들이 놓아줬던 주사가 생각났다. 그 주사를 맞으면 영상이 떠오르고 비명이 나오는가 싶다가 어느 순간 쾌감이 느껴지고 안정감이 느껴졌다. 영철은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찾아갔다. 뭐든 시켜주면 할 테니 주사 좀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웃고 있는 그들이 무섭고 싫었지만, 주사를 맞지 않으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영철은 온몸이 떨리고 아파서 시름시름 앓았다. 영철은 제발 주사 좀 놓아달라고 그들에게 애원했다. 그중 제일 얍삽하게 생긴 아이가 웃으며 주사 한 방당 20만 원이라고 했다. 돈이 없다고 하니 그들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들 주변을 어슬렁거려 봐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결국 견딜 수가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 영철은 돈을 줄 테니 달라고 했다. 처음으로 영철은 도둑질했다. 바로 아빠의 비상금이었다. 어릴 때 아빠가 책상 안이나 집 안에 있는 높은 장 같은 곳의 장식용 소품들에 돈을 넣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당연히 모르는 돈이다. 그들은 돈 갖고 오면 놓아주겠다고 했다. 영철은 집에 가서 아빠의 비상금을 뒤졌다. 역시 영철이 예상한 위치에 비상금이 있었다. 어린 영철을 의심하지 않은 아빠 덕분에 그 돈을 찾아들고 조직원들에게 주었다. 아빠의 비상금이 떨어져서 더 이상 돈을 주지 못하자 그들은 심부름하라고 했다. 심부름 하나 할 때마다 주사 한 방을 주었다. 영철은 묵묵히 그들이 시킨 일을 했다. 영철은 돈을 받아서 전달해 주는 수거책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이지만 체격이 좀 있는 영철이라 오토바이를 타고 헬멧을 쓰고 있으니 퀵서비스 기사라고 생각하지, 아이라고 의심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영철이가 처음 돈을 받은 사람은 어떤 할아버지였다.
"안녕하세요? 누가 돈 받아오라고 시켰어요. 000 할아버지 맞으세요? 000에서 뭐 받아오라고 하던데요."
"응. 여기 있어. 우리 딸 잘못되면 절대 안 된대이. 나 죽어도 좋으니 우리 딸만큼은, 불쌍한 내 딸만큼은 죽으면 안 된다. 엄마 1살 때 죽고 나 혼자 애지중지 키운 내 딸.... 불쌍해서 우짜꼬. 제발 죽이지만 말아 달라고 전해줘. 나 절대 경찰에 연락 안 할 테니.”
“할아버지, 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전 전달만 하는 배달 기사예요.”
“그래도 꼭 좀 부탁할게요.”
“네. 이거 주면서 말 전달은 할게요.”
할아버지는 영철에게 울먹이며 꼭 딸을 살려달라고 전달해 달라며 돈가방을 주었다. 처음에는 그런 돈인지 몰랐다. 받아야 할 돈을 받는가 보다, 빌려준 돈 이자 엄청나게 올려 받는 돈인가 보다 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할아버지를 만난 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주사 안 맞아도 좋으니 불쌍한 할아버지를 힘들게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받아서 가니 고생했다며 가방 가득 든 현금에서 몇 장만 꺼내 영철에게 주었다. 30만 원이었다. 그 돈이 중학생인 영철에게 큰돈인 건 알지만 더럽게 느껴졌다. 영철이가 몇 번 받아온 돈들은 딸이 납치되었다고 납치범에게 주는 줄 알고 찾은 할아버지, 정식 대출이 힘들어 대출해 주는 기업이 뭘 담보로 돈 얼마는 빌려 입금하면 원하는 큰돈을 빌려주는 형태에 속은 가난하고 힘든 자들의 피땀 어린 돈이다. 갈 데가 없는 이들을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도 짜내는 이들에게 환멸이 느껴졌다. 보이스 피싱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자기가 주사 한 방에 도왔다니. 구역질이 났다. 결국 영철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된 것이다. 게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마약 중독자까지 되어 있었다. 마약은 부르는 게 값이라 어제 100만 원 불렀던 게 오늘은 500만 원 불러서 영철은 그들에게 빚까지 지고 있었다. 무력감이 느껴졌다. 영철은 그들의 심부름도 하지만 빚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점점 보이스피싱의 현금 전달시키는 정도가 너무 심해졌다. 피해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표정으로 애절하게 돈가방을 영철에게 전해줄 때면 다시 들고 도망가라고, 경찰에게 당장 신고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제정신이냐고, 이런 데 넘어오는 바보 같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 저 은행에 다시 뛰어 들어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영철은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비겁하게만 느껴진다. 영철을 감시하고 미행하는 여러 명의 조직원, 모든 소리를 듣고 있는 조직본부, 가족을 해치겠다는 협박, 마약에 중독된 듯한 자신,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와 돈을 받아 전달한다. 영철이 만난 상대들은 순진한 사람들인지 의심을 하지 않았다. 저들은 그날이 지나지 않아 보이스피싱에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그들의 반응은 안 봐도 눈에 뻔하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가는 나뭇가지 붙들고 있는 사람에게 나무에 불 붙이는 격이다. 바닥에는 수심을 가늠할 수 없는 세찬 물이 흘러가고, 떨어지기만 해도 몸이 산산조각 날 것 같은 뾰족한 바위들이 가득 있다. 영철은 자기가 그들이 잡은 나무에 불 붙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영철은 갈수록 우울해졌다. 주사를 맞아도 기절한 순간 외에는 사라지지 않는 고통으로 잠을 못 이루었다. 하루에 한 시간도 못 잘 정도로 영철은 양심에 찔렸다. 처음에 안 하겠다고 했었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건 심각한 폭력이었다. 그리고 협박이었다. 엄마, 아빠, 학교, 영철이가 조금이라도 속한 집단에 모두 마약중독자이자 범죄조직 수거책임을 알릴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죽게 만들겠다는 협박만 돌아왔다. 영철은 첫 번째 강제로 주사를 맞고 그 주사를 맞고자 제 발로 조직에 들어간 그날부터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피해를 주는 일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본인이 집에 들어가지 않아야지 엄마, 아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조직에서 영철은 하루 종일 일을 했다. 영철은 구역질 나고 더러워도 그들이 시킨 심부름을 모르는 척했지만 어느 날 폭발했다.
‘이렇게 매일 살아가며 죽는 날까지 누군가를 등쳐먹는 일을 하며 사는 게 과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전 도덕 시간에 배웠지. 인간이라도 모두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사람다워야 사람이라는 말. 난 지금 사람이 아니야. 도저히 계쏙 이렇게 살 수 없어. 차라리 저들 손에 죽는 게 나아. 그 편이 부모님께도 덜 미안해.’
영철은 죽음조차 무섭지 않을 정도로 두통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날은 고통으로 너무 힘들어 그들에게 대들었다. 못하겠다고 고함을 치고 때리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이제부터 자기를 죽여도 되니, 절대 너희들이 시키는 일 안 한다며 고함쳤다. 나를 죽이라면서 부엌칼을 들고 와 자기 배에 대고 찌르기 시작했다. 조직원들은 어이가 없는지 때리지도 않고 쳐다만 봤다. 영철은 칼이 복부를 찔렀는지 비명을 지르며 피를 흘리고 있었고, 조직원 중 한 명이 어떤 방에 집어넣고 문을 잠갔다. 다른 조직원 한 명이 소독약, 붕대 등을 들고 그 방에 들어가서 치료했다. 영철은 누군가가 붕대 감는 것을 본 것 같은데, 그 뒤로 쓰러져 2일을 잠만 잤다.
영철은 꿈에서 부모님을 보았다. 말은 별로 없지만 순박하게 살아가는 아빠, 보통 엄마들처럼 아들을 위하고 남편을 위하는 평범한 엄마를 보며 본인이 평범한 아들이 되지 못하고 이상한 세상에 그들을 끌어들여 미안했다. 이제 영철은 평범하게 산다는 게 본인에게 제일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노는 애가 부러웠고 자신도 남들이 좀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지금에서야 영철은 깨닫는다. 평범함이야말로 엄청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이전 18화 보이스 1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