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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보이스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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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Jul 31. 2024

보이스 노트 24

다시, J


처음 병원에 온 아진이는 상태가 심하지 않아 며칠 동안 입원해서 여러 검사를 했다. 친구 M이 병간호를 했는데, M은 많이 회복된 아진에게 같은 병원에 입원한 엄마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날부터 아진이는 엄마 아라 병실에 계속 있었다. 아라와 아진이는 병원 측의 배려로 2인실에 갔었다 며칠 전 아진이는 퇴원했고, 엄마 병실에서 아예 하루 종일 있었다.
J는 오랫동안 집안일을 봐준 아라 아주머니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되고 집에 오지 않았다. J가 아는 정보라고는 아주머니의 휴대전화 번호밖에 없다. 수십 번 계속 전화하니 병원에서 받았다. 아라는 병원 중환자실에 있는데, 어떻게 되는 사이인지와 면회 올 건지를 물었다. 누군가에게 뻑치기를 당해 혼수상태라고 곧 돌아가실지 모를 정도로 위급했으나 수술 후 차츰 차도를 보여 지인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밖에 나가지 않았던 J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같이 지내왔던 아주머니가 그런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병원에 갔다. J가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어른이자 유일하게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가는 도중 경찰의 전화가 와 J는 아라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일을 얘기해 주었다. 아라 아주머니를 보고 나온 아라에게 간호사는 아라 아주머니의 아들 아진이도 아는 사이인지 물었다. 그도 같은 병원에 있다고 했다. J는 간호사에게 아라 아주머니와 아주머니의 아들 병원비는 모두 본인이 낼 것이라며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J는 아주머니의 아들이 있다는 병실에 문안 갔다. 잠들어 있는 아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본인이 뒤통수를 세게 쳤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나 때문에....’
J는 매일 병원에 찾아갔다. 이틀 정도는 자고 있던 아진이만 봤는데 이날은 아진이가 깨어있었다. 아진이가 J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서로 한눈에 알아봤다. 쌍꺼풀 선이 눈 크기처럼 크게 그어져 있고, 윤곽 수술의 부작용인지 뺨이 시작되는 부분부터 턱까지 칼로 오려낸 듯 세모 형태로 인조인간 같은 느낌을 주던 그 여자, J였다. 성형수술 부작용이 보이던 J는 인상적인 사람이었으니까 아진이는 한눈에 알아봤다.
J는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는 말만 수십 번 말했다. 아진이는 J를 침대 옆 의자에 앉게 했다. 그날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진이는 처음 자기 뒤통수를 때리고 간 이가 J인 줄 몰랐으나 자세한 얘기를 듣고 아진이도 별 뜻 없이 그냥 한 말에 상처받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J는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되는 일을 했다며 어떻게든 아진이에게 다 갚겠다고 했다. J는 매일 병원에 찾아가 아진이의 엄마 아라를 극진하게 간호하고, 아진이의 일 등을 도왔다. 간호사실에 가서 아진 씨의 병원비 계산하러 왔다고 하니 간호사분이 이웃 주민인 분이 벌써 계산했고, 앞으로의 병원비도 그분이 낸다고 하셨다 한다. J는 누굴까 궁금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아라 아주머니 병원비는 본인이 낼 거니 그분에게 연락하지 말고 내게 얘기하라고 했다.

뉴스에서 어떤 제보자에 의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대 보이스피싱 조직을 잡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조직은 마약까지 수입해 불법 유통, 판매까지 한 조직이라 경찰은 시민들의 칭찬을 받았다. 뉴스에서 경찰의 집요함이 낳은 정의의 승리라며 대대적으로 경찰을 찬양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경찰에서 아라에게 전화 왔다. 아라를 수술까지 하게 만들었던 조직이 잡혔다는 소식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J와 아진이도 기뻐했다.
춘재는 아들이 조직에 이용당하고 마약까지 강제 투약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아빠로서 아들을 위해 한 점,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직에 대한 제보를 한 점이 정상 참작되어 형량을 많이 줄여 받았다. 춘재는 감옥에서 매일 하는 일이 있었다. 보미와 영철이에 대한 편지를 매일 썼다. 영철이는 자기 때문에 아빠가 저렇게 되었다고 생각해서 엄마에게 찾아가 아빠를 용서해 주라고, 한 번만 더 아빠를 믿어달라고 부탁했다. 영철이도 아빠의 편지를 받고 매일 답장을 했다. 예전의 나태한 고등학생 영철이가 아니다. 아빠가 감옥 간 이후 영철이는 변했다. 새벽에 일어나 우유 배달과 신문 배달을 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엄마를 1년 정도 도와 작은 토스트 가게를 하면서 아빠가 올 날만을 기다렸다. 1년 정도 엄마의 토스트 가게가 자리를 잡을 때쯤 영철이는 수능을 치고 대학에 들어갔다. 새벽에 배달하고 가끔 토스트 가게도 도우면서 악바리같이 열심히 공부했다. 장학금을 받고 경영학과 들어가서 4년 내내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교수님의 신뢰도 받고 조교 역할을 하면서 월급처럼 매달 돈도 받았다. 학교 수업 마친 후 오후나 저녁부터 과외 2~3건 정도를 했다. 조교로 월급도 받고 과외비도 많이 받아서 매달 엄마에게 그대로 주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이상한 세상에 발 디뎌 세상의 쓴맛을 본 영철이라 그런지 모범, 정직, 성실, 건실 이런 세상에 좋다는 단어를 모두 갖다 붙인 사람이 되었다.

의사가 일주일 정도 후 마지막으로 체크하고 괜찮으면 그때 퇴원해도 된다고 아라에게 말했다. J는 집에 있는 현금 박스 1개를 여행용 가방에 차곡차곡 담고 밖에 나와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엄마보다 더 가족같이 느꼈던 아라에 대한 보답과 아진에 대해 사죄를 하고 싶었다. J는 어딘가 들뜬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힘찬 발걸음으로 이동했다. J는 아라, 아진이가 퇴원하는 날 두 분에게 은혜를 갚고 싶으니 제발 본인이 주는 선물을 거절하지 말라고 했다. 대답을 들어야 한다고 해서 아라, 아진이는 알겠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J는 A4 지에 선물 받겠다는 확인증을 쓰자고 하며 ‘어떤 선물이든 받겠습니다.' 라고 적고 두 사람의 사인을 받았다. 아라와 아진이, J는 가족처럼 친밀한 감정을 느꼈다.
드디어 아라가 한참 동안의 입원을 마치고 오는 날 J는 두 사람을 본인 차로 데리고 어디를 갔다. 어디 가냐고 물어도 선물 주러 가니 무조건 받아야 하는 거라고 했다. 세 사람은 어떤 집 앞에 섰다. J는 이 집이 선물이라 했다. 부모에게 남겨진 재산이 죽고 나서도 다 못 쓸 만큼의 돈이라 돈 쓸 궁리만 하던 본인에게 고마운 두 사람에게 집을 선물하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깜짝 놀라 아라와 아진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된다는 두 사람에게 J는 두 사람의 사인이 있는 A4 지를 꺼내 들었다. J는 돈 들고나간 날 바로 계약을 하고 인테리어 업자를 불러 며칠 만에 그 집을 환자에게 맞게 다니기 편한 구조로 바꾸었다. 5일 만에 안된다던 인테리어 사장님에게 현금을 내밀자 밤새워서라도 해줘야지 사정이 딱한데 어쩌겠냐며 투덜거렸다. 튀어나온 부분, 난간 같은 것을 다 깎고 부엌이나 화장실, 방도 휠체어로 쉽게 드나들게끔 공사를 미리 해놓았다. 아라와 아진이가 집에 온 날 아진이를 데리고 부동산에 가서 집 매매계약서와 돈 관련 일을 다 마무리지었다는 서류에 사인하게 했다.
J는 며칠 뒤 집에서 뉴스를 보았다. 그 뉴스에 익숙한 얼굴이 나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마 전 보이스피싱 및 마약 유통 및 판매 혐의를 받던 범죄조직이 잡혔으나 우두머리는 행방이 묘연했었는데, 그 우두머리가 오늘 잡혔다면서 사진이 나왔다. 사진 속 모습은 분명 J의 아빠였다. 아라가 어릴 때부터 무섭고 멀게만 느껴졌던 아빠의 젊은 시절 사진이었던 것이다. 소름이 끼쳤다. 아라 아주머니를 저렇게 만든 사람이 본인의 아빠였다니. 아라와 아진의 집을 사는 데 현금 박스 1개를 썼던 J는 나머지 여러 박스에 편지를 써서 배달원을 통해 아빠를 잡은 형사가 소속되어 있는 경찰서에 모두 보냈다.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가 잡혔다며 두목의 얼굴이 모든 채널의 뉴스에 계속 나왔다. 피해자들의 인터뷰도 나왔다. 일주일 내내 뉴스에서는 큰 사건으로 보도하고 외국 뉴스에서도 한국 경찰의 성과에 대해 칭찬했다.
J는 아라, 아진이가 알아봐 준 병원에 충분히 상담을 받고 눈 재수술을 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 나를 위해주고 걱정해 주는 아라, 아진이가 있는 한 어떤 것도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진이는 원래 모범적인 사람이었는데, 더 성실하게 되어 처음 면접 본 외국회사의 회장 눈에 띄어 승진도 빨리하고 성과를 많이 냈다.
아라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어 요즘은 요가와 줌바를 한다. 가요 교실에 가서 노래도 배운다. 수술 후 안정적인 얼굴이 되어 마음도 안정을 찾은 J와 아들인 아진이가 연인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아라는 두 사람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봐주겠다는 미래 계획까지 짜놓았다. 아라는 혼자 커피를 내려 마시며 생각한다.
’ 인생은 한 번 살지만, 제대로 살면 그 한 번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아침 햇살 같은 아름다운 이 시간을 감사하며 사는 것 그게 바로 행복 아닐까? 아, 간절히 기다리던 꽃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네. 내 앞에 행복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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