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happysmilewriter
Oct 17. 2024
아라야. 내가 사랑하는 아라야.
네 이름을 적는 이 시간이 내겐 무척 행복한 일이야. 너와 결혼을 하면서 매달 한 편씩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편지로 작성하기로 했어. 매달 내 책과 편지를 잘 받고 있지? 20주년 되는 날은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을 글로 표현한 것을 한 편의 책으로 만들어 너에게 선물로 주려고 해. 넌 매달 한 번씩 내가 고른 책과 편지 받는 것도 귀찮아했지만, 매달 한 편의 일기 겸 편지를 쓰고 있는 줄은 모르겠지? 이 글에는 오직 나의 경험, 느낌, 생각을 적을 거야. 그리고 너와 내가 함께한 경험, 함께 얘기 나누거나 얘기 나누었음 하는 생각 등을 적을 예정이야. 가족 내에서 두 자녀의 엄마, 아내, 며느리, 딸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아라가 멋지다고 생각해.
너와 처음 만날 날이 기억나. 내 눈에 너는 지금까지 우리가 처음 만났던 20살의 아라로 보여. 학교 가는 지하철에서 내리기 위해 서 있는 내게 와서 길을 물었던 ‘그때의 너’ 말이야. 너는 지각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교수님 수업에 지각할까 봐 평소 타던 버스를 타지 않고 지하철을 탔었지. 너는 정확히 내려야 할 역을 묻기 위해 곧 내릴 사람을 찾고 있다 내리려고 출입구 앞에 서 있던 나를 발견했다고 했어. 내게 말을 거는 너의 모습에서 환한 빛이 느껴졌어. 그 순간 운명처럼 넌 내게 다가온 거야. 지각할 뻔한 넌 빨리 택시를 타고 가기 좋은 출구를 물었어. 같은 대학이라 같은 택시를 타고 내리려는 너에게 난 다급히 전화번호를 물었어. 그때의 넌 재미있다는 표정이었어. 나중에 전화번호를 물으면 누구에게나 다 번호 알려줄 거였냐고 물었더니 넌 ‘느낌이 그냥 착해 보였어. 순수해 보이기도 했고,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 법한 남녀 간의 만남 같아서 재미있기도 했고,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했어.’라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지. 진짜 전화를 할지도 무척 궁금했었다고.
몇 개월 간 넌 내게 선배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했어. 난 너라는 존재를 알고 내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 그냥 네 주변을 계속 맴돌았어. 네가 힘들어하면 위로하고 즐거운 일, 속상한 일 있으면 들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지. 그러길 1년이 지날 때쯤 너와 나는 드디어 연인이라는 이름이 되었지. (중략) 넌 그때 꿈꾸는 사람이었어. 유치원 시절 친구네 집에서 빌려 읽던 동화책,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을 졸라 간 헌책방의 강렬한 기억, 고등학생 때 플라타너스 가로수 아래에서 발견한 누군가의 일기, 고등학생 때 만난 헤르만 헤세, 전혜린이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과 존경으로 작가라는 꿈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했지. 작가와의 만남을 찾아다니고 필사를 하고, 글을 쓰고 친구와 고등학교 정원에서 책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작가의 꿈을 키워나갔다는 얘기를 눈을 반짝이며 했어. 하지만 어느 순간 넌 그 꿈을 잊어가기 시작했어. 전공 공부, 대학 내 여러 활동 등을 하며 10년 넘게 꿈꿔왔던 작가의 꿈은 옅어져 갔어. 취업하고 결혼과 출산, 양육이라는 큰 일로 인해 바쁜 너는 아예 꿈을 잊은 것 같았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무척 속상했어. 너의 모든 것을 지지하고 응원하지만 스스로 빛나던 너의 꿈을 향한 열정이 여러 현실 속에 덮혀졌거나 안개처럼 희뿌옇게 변한 것 같아. 그때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
바로 그런 생각했을 때부터였어. 너를 가슴 뛰게 했던 작가와 책을 네가 꾸준히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방법을 찾아봤지.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책 블로거들의 리뷰들을 읽어보고 네가 매력을 느낄 만한 책을 매달 한 권이나 몇 권 선정했어. 서점 가서 한번 더 보면서 네가 좋아하고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한지 검토했지. 그런 책들을 매달 고르며 나는 행복했어. 넌 읽지 않고 카페에 꽂아두기만 한다 했지만 언젠가 그 책들이 너에게 자극을 주고 너의 뇌를 일깨울 거라 생각했지. 난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어. 네가 아내, 엄마 등의 이름으로서 뿐만 아니라 설레고 즐거운 일을 하며 스스로의 삶을 돌아봤을 때 진정 행복하길 바랐어.
가끔 일찍 퇴근하거나 출장 갈 때 네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 잠시 들를 때, 난 봤어. 내가 보내준 책을 한 줄도 안 본다고 했지만, 그 책을 읽고 있던 너를. 그때 너의 꿈꾸는 표정을 봤어. 난 항상 아라 편이야. 아라를 위해,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살아갈 거야. 그게 나의 행복이고 내 존재의 가치이자 이유인 것 같아.
아라야. 네가 이 노트를 받을 때는 결혼 20주년이 되었을 때인데 그때까지 작가라는 꿈을 펼치지 못했다면, 지금은 그 꿈을 시작해야 할 때야. 늦지 않았어. 박완서 작가 알지? 마흔이 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거 알지? 절대 늦지 않았어. 지금이 바로 너를 반짝일 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