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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Oct 16. 2024

회사옥상에서 달리기 하는 남자 1

김미진


아라는 가게 안에서 울었다. 너무 울어 얼굴이 부었을 때는 얼음으로 찜질을 하고 집에 들어가곤 했다.1년 넘는 기간동안 매일 그렇게 울었다. 그리곤 아이들에게 들킬까 늘 노심초사하던 아라에게 어느 날 택배 기사가 박스 하나를 두고 갔다. 발신인의 이름을 본 순간 마음 한 구석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아라는 보낸 이의 이름을 믿을 수가 없어 보고 또 봤다. 잘못 찍힌 이름이 아닌지 발신인이 적힌 부분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라는 또 울었다. 어깨부터 온몸을 떨면서 흐느꼈다. 보낸 이는 남편이었다. 아라는 택배가 남편인 양 박스를 끌어안았다. 너무나 그리웠다. 남편이 보고 싶었다. 남편은 1년 개월 전까지 매달 책을 손수 골라 아라에게 한 달에 한 번씩 택배로 보내주었다. 책을 좋아하던 남편은 매달 서점에 들러 아내인 아라를 위한 책을 골랐다. 행복했다. 남편이 자신을 생각하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했다. 어릴 때는 작가가 꿈이었으나 어느 순간 그 꿈을 완전히 잊고 지내던 아라였기에 당시에는 남편에게 매달 책을 받는 것이 귀찮았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잡지책 외에는 다른 책을 읽지 않던 아라였다. 아라는 책을 보내는 남편에게 짜증도 많이 냈다.
“카페에 잡지가 많으니 보내지 마!”
“내가 너만을 생각하며 고른 책이니 나 생각하며 읽어줘.”
“뭐라고? 왜 이렇게 느끼해? 짜증 나”
“너를 생각하는 내 마음을 왜 몰라주고”
아라는 장난기 어린 눈빛을 보내며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여주는 남편에게 외쳤다.
“이제 보내지 마.”
“싫어. 보내지 말라고 거절해도 나는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에 카페에 책이 도착하게 할 거야.”
“책 필요 없다니까”
“자기 어린 시절 내내 꿈꿔온 게 작가였잖아. 다양한 작가와 작품의 매력에 빠져보라고.”
“그 꿈 버린 지가 언제인데. 내가 글 쓸 시간이 어디 있어? 빨래할 시간도 없구먼.”
“그럼 카페 책장에 꽂아 놔. 손님들이 내가 고른 책을 좋아할걸.”
“정말 고집 세네. 나 안 읽으니까 보내든가 말든가 알아서 해. 어쨌든 난 안 읽을 거야.”

아라는 남편이 매번 책 박스를 받고 남편에게 투덜거렸다. 남편은 결혼할 때부터 18년째 계속 책과 편지를 보내왔었다. 매달 오던 남편의 책 선물이 2년 전부터 오지 않았다. 그전에는 그토록 귀찮았던 책과 편지였는데 이제는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한다. 2년 동안 오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남편의 이름을 택배박스의 발송인의 이름에서 발견하고 남편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아라는 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떨리는 손으로 박스를 열었다. 그 속에 책 한 권과 편지지와 일기를 엮은 듯한 노트가 있었다. 지금까지 매달 자신을 생각하며 책을 고르고 선물로 보냈을 남편과 매달 일상적으로 남편이 보내주는 책 선물을 시큰둥하게 받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습관적이었던 그 일이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특별한 일이었는데, 몰랐던 자신을 책망했다. 마음 한 구석이 아파왔다. 책과 같이 놓여있던 노트를 집었다. 남편의 글씨였다. 그리운 필체를 보자 더욱 감정이 북받쳤다. 노트는 결혼한 지 10주년 이후 한 달에 한 편씩 아라에게 쓴 편지, 연애 시절부터의 자신의 일기 중 일부를 모아서 엮은 것이었다. 첫 페이지만 읽었다.

‘결혼 20주년 동안 나와 함께 해주어 무척 고마워. 당신을 만나고 함께 한 덕분에 나는 무척 행복해. 매년 결혼기념일을 함께 축하하고 있지만, 매번 10년 단위가 돌아오는 해에는 보통과 달리 더 특별한 이벤트를 하고 싶었어. 10주년 되던 해 레드카펫 여배우 이벤트를 했었지. 아이들과 함께 시나리오를 짜고 당신을 여배우 대접했었지. 당신이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 그 다음날부터 나는 고민에 빠졌어. 10년 후 20주년 때에는 더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하고 싶어졌어. 고민하다 깜짝 이벤트를 생각했어. 사랑의 일기를 자기에게 쓰려고 해. 지금까지 매달 편지와 책을 보내고 있지만, 따로 나에 대한 이야기와 자기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오랜 시간 동안 글로 쓴 것을 모을 거야. 나와 아라에 대한 것을 일기 또는 편지로 써서 20주년 되는 날 선물로 보낼 거야. 당신이 이 선물을 받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 더 이해하고 사랑해 주면 좋겠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더 강하게 느꼈으면 해. 당신과 항상 함께 할 나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줘. 사랑해 아라야.’

함께 한 여행, 연극, 영화, 전시 관람, 식사, 모임, 쇼핑, 카페 순회한 이야기, 부부가 함께 고민했던 사항들에 대한 이야기, 부부 싸움 후 느낀 점이나 싸움의 해결책에 대한 이야기, 자녀 이야기 등이 적혀있었다. 남편이 예전 투자가 잘 안되었던 이야기, 혼자 몇십 년을 산 시어머니가 암에 걸렸던 사실을 알게 된 후 든 죄책감, 대출금을 갚느라 자녀에게 비싼 책, 프뢰벨, 몬테소리 교구를 못 사준 것에 대한 미안함 등이 적혀있었다. 일기를 읽으니 당시 상황이 떠올랐다. 아라 본인이 남편에게 어떤 모진 말들을 내뱉었는지도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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