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happysmilewriter
Oct 20. 2024
아라는 편지와 일기가 적힌 노트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향했다. 남편이 죽도록 보고 싶었다. 집에 와서 급하게 남편이 보내온 노트를 훑어보았다. 남편이 다시 살아온 것처럼 느꼈다. 얼핏 보이는 일기장에는 아내에게 더 잘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자녀가 생기고 가장으로서의 느끼는 무거운 책임감 등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아라는 남편의 일기장을 밤새워 읽었다. 일기를 읽으며 남편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시장의 작은 점포에서 옷수선을 하면서 아들 둘을 키운 이야기, 그때부터 내내 학창 시절 장학금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아빠가 안 계시고 가난하기 때문에 상처받은 이야기도 꽤 많이 적혀있었다. 소풍 때 김밥대신 흰밥에 김치가 든 도시락을 들고 갔는데, 친구들 앞에서 꺼내기 부끄러워 안 먹었다는 이야기에선 울컥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 한 명이 교무실 선생님들께서 장학금 대상으로 공부도 잘하고 착실하며 모범적인 남편을 꼽았다고 한다. 또한 기초수급자라 어려운 형편에도 반에서 1등을 하고 성실한 남편을 칭찬했다고 한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남편에게 와서 기초수급자라고 하던데 기초수급자가 뭐냐고 물었다. 당시는 그 뜻을 잘 몰라 집에 와서 엄마와 형에게 말했는데, 무척 슬픈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엄마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는 글도 적혀있었다. 형이 자신에게 기초수급자의 뜻을 이야기해 주면서 절대 가난하다는 이유로 주눅 들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말했는데, 슬펐다고 하였다. 남편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 한번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 시장에서 옷수선을 하던 엄마가 손님과 다투던 모습, 어려운 형편인데 갑자기 미술대학을 가겠다고 선언한 형에 대한 분노,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할 환경이 되지 않는 시장 안 집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뒤죽박죽 혼란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매달 살아가는 것이 걱정되는 가정환경 속에 남편은 살았다. 물론 스스로 미술대학 조교 등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술학원을 다니겠다는 형이 있었지만, 어린 남편의 눈에는 형이 이기적인 사람으로만 보였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엄마는 자신의 주장이 강한 형보다는 순하고 효자인 남편을 의지하고 사셨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유명한 미술대학에 합격한 형의 입학금과 등록금이 없어서 남편과 시어머니는 친척집을 돌면서 돈을 꾸었다고 했다. 남편의 일기장에 그때 느낀 감정, 엄마와 형에 대한 생각들을 보며 아라는 남편이 더욱 그립고 아팠다.
남편이 아라와 처음 만날 날에 대해 몇 십장의 일기를 쓴 것을 보고 아라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라가 생각지도 못했던 자세한 묘사가 있어서 새로웠다. 처음 만난 장소인 지하철에서 아라와 본인의 위치, 걸음, 표정, 눈빛, 손짓 등이 실시간 중계방송처럼 적혀있었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와 함께 방문했던 장소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새로웠다. 일기장에는 온통 아라에 대한 찬사로 가득해있었다. 아라의 말, 행동 들에 대해 하나하나 기록하고 미사여구를 다 갖다 붙여 아름다운 천사처럼 표현했다. 아라의 마음을 열게 되기까지 긴 시간 동안 마음 졸임, 슬픔 등에 대해 읽으며 아라는 한 남자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얼핏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보니 그때로 돌아간 듯 착각이 들었다. 취업을 빨리 해서 고생한 엄마를 쉬게 하고 싶은 아들의 모습도 일기에 나타났었다. 남편은 처음 입사제안이 들어온 곳에 원서를 쓰고 합격하자마자 그 회사에 갔다.
취업준비를 하던 아라와 함께 도서관 다니며 데이트를 하다 남편이 신혼집을 마련 후 결혼을 했다. 결혼하면 남자는 변한다고 했는데, 아라는 남편은 변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데이트할 때보다 더 자상하게 이것저것 챙기는 남편이 든든했다. 남편은 회사가 구미에 있어서 매일 새벽에 출퇴근을 했지만, 저녁에 오자마자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큰 애를 임신하고 매일 아이에게 쓰는 편지를 쓰고, 좋은 글을 읽어주었다. 큰 애가 태어나고 매일 목욕을 시키고 아라의 건강상태를 살폈다. 큰 애가 태어난 지 3년이 흘러 둘째를 임신했다. 아라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아라와 아이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남편을 연애 때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다. 평온함이 계속 이어질 줄만 알았는데, 얼마 후 구미에서 철수해 평택으로 옮겨 어쩔 수 없이 주말부부를 하게 되었다. 아내는 대구에 직장이 있었고, 어린아이를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키워야 했기에 가족이 함께 평택으로 이사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때 아라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일은 겹쳐서 왔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혈액암에 걸렸다고 했다.
아라는 남편의 노트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