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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Oct 21. 2024

회사옥상에서 달리기 하는 남자 6

남편의 일기 1


• 좁은 집, 그마저도 대출이 있는 집에 남편과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아내는 둘째가 곧 태어나서 두 아이 양육해야 되는데, 시어머니가 아파서 많은 돈이 들어가니 휴직도 못하고 많이 갑갑했을 것 같다. 아픈 엄마도 걱정, 아이 양육하며 퇴근 이후 시어머니 간병하러 가는 아내도 걱정, 어린아이도 걱정이다. 돈 문제 외에는 인생에 만족하지만 돈문제가 무척 크다.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아도, 속이 메스껍지 않아도 이렇게 오바이트가 쏠리는 것이 요즘의 몸 상태다. 이것이 나의 일이고 계속해서 나아질 기미나 조짐이 없다면 나는 과연 어떤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할까? 우리의 가정과 나의 건강을 위한 최선의 결정은 무엇일까?더 이상 피할 구멍도 없다. 엄마의 병이든, 직장일이나 돈문제든 뭐든 부딪히자. 이제 퇴근해야겠다. 너무 피곤하다. 지금 핸드폰 시간으로 8시 37분. 퇴근 버스는 8시 45분.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힘든 것 내색하지 않고 밝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엄마는 얼마나 힘들까를 떠올리니 내 걱정은 사치인 것 같다. 힘을 내자.
• 둘째를 만나는 날
드디어 오늘이 너를 만나는 날이구나. 오늘은 너를 만나기 하루 전날이란다. 입원할 물건을 챙기고 7시까지 병원에 가면 되니 시간이 좀 남는 거 같아서 이렇게 울 아기를 만나기 전에 환영의 말을 해주고 싶어서 글을 쓴다. 참 길었지? 8월부터 해서 5월까지 9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엄마랑 많은 것을 함께 해왔지. 너를 기다리며 엄마와 아빠는 좋은 생각만 하면서 좋은 글, 좋은 음악, 좋은 그림,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단다. 울 아가한테 뱃속에서부터 세상이 참 좋은 곳이니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란 의지를 주고 싶었어. 그래서 태교를 잘하고 싶었는데 작년엔 엄마가 직장에서 중요한 일을 맡아서 신경 쓸 일이 많았단다. 그래서인지 입덧도 무척 심했고 머리도 자주 아팠어. 겨울철 춥다고 사무실 문을 꽁꽁 닫아놓아서 엄마 입덧이 더 심했던 것 같아. 엄마는 힘들긴 해도 너를 기다리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단다.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너의 존재를 어느덧 느끼게 된 너의 오빠도 너를 기다리는 이 순간이 무척 행복해.
그리고 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쁨도 배가 되었어. 엄마는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딸을 기다렸었거든. 그런데 너에게 미안한 일이 생겼어.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줬어야 했는데, 작년 12월 너의 할머니가 아프면서 엄마는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게 되었단다. 할머니가 매달 주사를 맞아야 하고 입원치료를 해야 했어. 거기다 큰아버지 내외와 돈문제에 얽힌 스트레스 등을 받게 되었단다. 거기다가 아빠가 잘해보려고 주식을 했는데 크게 손해를 보는 사건까지 생겨 2월 달에 너의 엄마는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다 받아버렸단다. 아빠가 많이 미안해. 엄마의 스트레스로 너도 뱃속에서 무척 힘들었을 거야. 거기다 그때 아빠의 회사가 평택으로 올라간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이제 영영 주말부부가 되어 엄마가 너희 둘을 키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 너의 엄마가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할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웠어. 그리고 특히 어린 시절에 아빠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데 오빠는 그래도 4살 정도까지 아빠랑 같이 놀며 존재를 느꼈는데 너는 태어나기 전 아빠와 평일 이별하니 더 가슴 아팠어. 너의 오빠도 마찬가지로 동성끼리 느끼는 감각과 경험은 돈주고도 못 살 경험인데 앞으로 많이 부대껴야 할 아빠와 아들 사이가 주말에 한정되어 버리니 걱정이다. 최근 우리 가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닥쳤구나. 게다가 의사분 말씀이 네가 주수에 비해 작다고는 하셨거든.
엄마와 아빠가 무척 낙관적이고 좋은 사람이니 비록 너를 배속에서 스트레스받게 했지만 이 세상이 얼마나 살만한 곳인지 보여주도록 할게. 사랑한다. 너무 소중하고 특별하며 멋지고 아름다운 나의 아가. 이 세상에 네가 나와서 멋진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을 환영하고 축복한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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