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happysmilewriter
Oct 19. 2024
회사옥상에서 달리기 하는 남자 4
남편의 죽음과 택배상자
아라의 남편은 2년 전 회사로 출근했다가 쓰러져 응급실에 갔다. 췌장암이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손 쓸 수가 없는 지경이라 했다. 남편은 3개월 전 속이 너무 아파 내과를 갔다 췌장암을 발견했다고 했다. 3개월 동안 자신에게 발병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남편이 미웠다. 그때 알았더라면 어떤 방법이라도 찾아봤을 텐데, 지금은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의사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라 수술해도 회복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했다. 그래도 의사는 3개월 전 확률은 적지만 가능성은 있으니 바로 수술하자고 했는데, 아라의 남편은 거절했다고 했다. 아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응급실 간 이후 어제까지 미소를 보이던 남편은 급격히 안 좋아져 중환자실로 갔다. 아라의 남편은 일주일을 병원에 있다가 죽었다. 아라는 남편이 죽고 1년 넘는 시간 동안 운영하던 카페 문을 닫았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1년이 지나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뭔가를 하지도 않는 아라를 보며 엄마마저 떠날까 봐 아이들은 두려웠다. 엄마 눈치만 보며 걱정하던 두 아이들이 하루는 아라에게 화를 냈다.
“엄마가 그러고 있으니 하루 종일 엄마 잘못될까 봐 걱정되어 나도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엄마만 슬픈 거 아니야. 나도 하나뿐인 아빠를 잃었다고. 나도 힘들어. 그런데 엄마의 이런 모습 보는 게 더 힘들어. 엄마마저 떠날까 봐 무서워. 제발 우리 살자. 아빠도 남겨진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 아파할 거야. 엄마. 제발.”
첫째인 아진이가 울면서 외치는 말에 아라는 정신을 차렸다. 겨울 꽁꽁 언 호수에 서있다가 얼음이 깨져 허우적거리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날 이후 아라는 억지로 힘을 냈다. 자녀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벽에 주변 상인들보다 일찍 가게에 나왔다. 카페지만 간단한 샐러드와 빵을 팔기 때문에 재료를 사서 손질하고 준비를 몇 시간에 걸쳐해 놓았다. 재료와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할 거라 여겼다.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1년이란 공백에 손님은 없었다. 중도에 허무감을 이기지 못하고 집으로 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가면을 써야 했다. 카페에 온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 책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 새로 만들 빵이나 쿠키 등에 대한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늘어놓았다. 아이들은 엄마가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라는 여전히 카페에서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목놓아 울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남편의 택배가 왔다. 남편이 죽기 1년 6개월 전쯤 친구인 민수 씨에게 택배상자를 포장한 다음 20주년 날 아라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남편은 자기 죽음을 알았을까? 하필이면 남편이 갑자기 죽은 그 해에 민수라는 친구에게 부탁했던 것일까?
“민수 씨,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아라 씨, 너무 오래간만입니다. 저는 잘 지냈어요. 제수씨는......”
남편 친구인 민수 씨는 잘 지냈냐고 묻는 평범한 인사말을 건네려다 입을 닫았다. 보통의 인사말도 실례가 되는 사람이 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사람에게 잘 지냈냐고 묻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실례가 되는 질문임을 민수는 깨달았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감돈다.
“며칠 전 수현이에게 다녀왔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왔어요.”
“아 그러셨군요. 혹시... 제게 택배를 보내셨나요?”
“받으셨군요.”
또다시 조용해졌다.
“남편이 민수 씨에게 언제 부탁했나요?”
“수현이가 떠나기 4개월 전 절 찾아왔어요. 부탁이 있다면서. 박스 하나를 주면서 딱 2025년 10월 며칠에 절대 잊지 말고 제수씨에게 전해달라고 했어요. 뭐냐고 물으니 웃기만 하더군요. 그냥 꼭 10월 00일에 전해달라고. 무슨 날이냐고 하니 또 웃기만 하대요. 생각해 보니 제수씨와 수현이의 결혼식날짜 같더군요. 제가 수현이 결혼식에 사회를 봤기 때문에 그 날짜가 익숙해요. 녀석, 결혼기념일 선물을 그냥 직접 전해주거나 택배 시키면 되지, 왜 나한테 부탁하지? 의아하긴 했어요. 그냥 네가 날짜 맞춰 보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그날 부탁하러 온 수현이 표정을 보니 그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냥 알았다고 하고 보관하고 있었어요. 혹 내가 잊어버릴까 봐 달력, 제 폰일정표에도 적어놓고, 알람설정도 몇 개나 해놨답니다. 제삼자인 제가 전해줘야 뭔가 의미가 있는 건가 보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원래 수현이가 생각이 많은 아이이고 가끔 그 속을 모를 때가 많아요. 그래도 지나와서 생각하면 항상 수현이의 생각이 옳은 결정일 때가 많았기에, 이번 부탁도 그런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꼭 그렇게 갈 줄 알았던 것처럼. 허허 참. 아라 씨, 이 녀석이 쓴 글 다 읽고 나면 제게 꼭 전화 한 통 해주세요. 아라 씨에게 따로 할 말이 있어요.”
"지금 해주세요."
"아닙니다. 반드시 수현이가 쓴 노트를 아라 씨가 다 읽어야 제가 말할 수 있어요. 시간에 구애받지 마시고 천천히 읽고 전화 주세요. 제가 카페에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