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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Oct 24. 2024

회사옥상에서 달리기 하는 남자 9

남편의 노트


"아라야 네가 이 노트를 받을 때쯤에 나는 네 곁에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최근 몸이 너무 안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에게는 얘기 안 해서 미안해. 널 만나고 너에게 잘해준 게 없는데 내가 아프기까지 하면 걱정 많은 네가 얼마나 힘들까 생각했었어. 얼마 전 극심한 통증에 병원에 갔더니 이미 손쓸 수 없이 암이 심각하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어. 너에게 알리면 넌 울며 병원에 입원하게 하고 온갖 방법으로 나를 살리려고 애쓰겠지? 하지만 내 몸이라 난 알았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너와 아이들을 위해 내 몸을 사용하고 싶었어.
엄마가 암으로 2년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신 이후 난 너 몰래 암보험을 여러 개 들었어. 이 번에 암에 걸렸다는 말에 죽는다는 두려움보다 너에게 보험금을 남겨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어. 암진단금을 바로 보험사에 요청해 받았어. 이 돈으로 네가 해줘야 할 것이 있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카페의 규모를 더 넓혀서 북카페 가게를 운영해 줘. 가게가 안정이 되면 넌 믿을 만한 아르바이트생에게 가게를 맡기고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던 글을 썼으면 좋겠어. 그리고 북카페에서 작가와의 만남, 예술인 초청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길 바라. 넌 가끔 대화할 때 꿈꾸듯이 말하곤 했어. 화가, 음악가, 연극이나 뮤지컬 관계자, 동화나 소설, 시를 쓰는 작가와의 만남이 편안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감을 마련하고 싶다고. 그 꿈을 이제 이루었으면 해. 내가 한 가지 더 바라는 건 작가와의 만남에서 작가가 아라 너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구나.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냐고?
혹시 네가 가끔 얘기했던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 버려져있던 일기 기억하니? 너에게서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설마 내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어. 엄마가 나 고3 때 갑자기 내가 모아놓은 책을 싹 다 버렸었거든. 말 잘 듣고 순하던 내가 고3 되어 오히려 공부를 하지 않고 학교를 며칠 빠지고 방황하자 엄마는 경고의 의미로 내 책을 다 버렸었거든. 처음으로 엄마에게 화를 내고 버렸다는 곳에 가봤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지. 엄마가 책만 버린 줄 알았는데, 그 속에 내 일기도 있었던 것 같아. 엄마가 책 버리기 전날밤까지 일기를 썼는데, 그 뒤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고. 그런데 너랑 이야기하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버린 일기장을 읽었다고 하는데, 내용이 너무 친숙한 거야. 네가 가져가서 읽었던 일기장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설마 했었는데, 일기 내용을 네가 기억나는 대로 말할 때 확신했었어. 내 일기였다는 사실을. 지하철에서 만남도 운명처럼 느꼈는데 나의 일기장을 네가 보고 작가의 꿈을 펼쳤다니! 이 정도면 우리는 신이 강력한 운명의 끈으로 묶은 인연 아니겠니? 이 글을 읽으며 충격에 빠질 너의 표정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는구나.
내가 죽더라도 울거나 힘들어하지 마. 네가 나를 기억하는 한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우리는 촘촘하고 굵은 인연의 선으로 만나게 된 거니까 죽어서도 네 옆에 네 편으로 있을 거야. 사랑해. 아라야.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라. 다음 생에서도 또 만나자. 이번 생에서는 너에게 못해준 게 너무 많아서 다음 삶에서는 너에게 마음껏 잘해주고 싶어. 그러니 우리 꼭 부부가 아니라도 네 부모, 네 자식으로라도 태어나게 해 줘.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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