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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Oct 23. 2024

겁 많은 경찰 8

어느 날.... 집을 나섰다.


어느 날....
집을 나섰다.
아침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엄마가 깨웠다. 오늘따라 몸이 더 무겁고 덮던 이불을 밀어 제치는 행동을 못할 정도로 몸이 얼었다. 깨워도 꿈쩍도 하지 않는 딸에게 엄마는 목소리를 높여 외친다. 직장 생활하는 딸도 내가 깨워야 하냐며.
난 앉을 수가 없다. 이불 밖을 나갈 수가 없다. 숨이 막힌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 머리가 아프다. 깨질 것만 같다. 이불을 열며 폭풍 잔소리를 해대는 엄마를 향해 시선을 둘 수가 없다. 제발 오늘만 나 좀 내버려 두라고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내가 한다며 엄마는 내 몸을 강제로 일으킨다. 힘으로 버티려 해도 엄마의 힘은 더 세다. 억지로 앉게 된 나는 다시 누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 엄마는 내 손을 끌고 강압적으로 화장실로 나를 밀어 넣는다.
그 뒤 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로봇처럼 아무 의식 없이 씻고 준비를 했다. 거울을 쳐다봤다. 거울 속 나의 눈빛은 흐리멍덩 그 자체였다. 삶의 의지란 찾기 힘든 흐린 눈빛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당황의 눈빛으로 변해갔다.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나의 눈빛에서 불안을 느끼고 의지에 앉혔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 자체 외에 다른 생각, 다른 행동,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용납 안되기 라도 하듯 딱 제단을 하는 엄마의 눈에는 나의 그런 눈빛을 보이지 않았으리라. 아니 그 눈빛을 봤다 해도 무시했으리라.
등 떠밀려 가방을 던져주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하지만 나는 갈 수가 없었다. 갈 곳이 없었다. 마음과 달리 발은 매일 아침 가던 길로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버스정류장까지 왔다. 매일 타던 버스가 잠시 섰다. 발은 버스를 오르고 싶어 하나 꿋꿋하게 버텼다. 잠시 후 버스는 지나갔다. 나는 여전히 정류장에 서있었다. 다른 버스가 섰다 가길 반복했다. 나는 여전히 서있다. 발이 아파진 나는 정류장의 의자에 앉았다. 앉아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눈 둘 곳을 찾아 헤매다 맞은편에 보이는 언덕을 본다. 말라비틀어진 갈색 같은 빛깔을 띤 나무와 싱그럽지 않고 칙칙한 초록빛 아니 진녹색과 누리 탱탱한 빛깔이 섞인 나무가 보인다. 나무 사이로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한참을 바라보다 눈을 그 위로 향했다. 하늘이다. 하늘에 눈을 돌리자 그제야 마음이 약간 누그러진다. 무섭고 힘든 생각이 아주 조금은 자취를 감추었다. 죽으면 내 마음이 편안해질 것만 같다. 고통과 괴로움, 힘든 기억이 다 사라질 것만 같다. 버스 정류장 앞에 20층 건물이 보였다. 철이는 그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에서 내린 후 옥상까지 이어진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다. 옥상문에 출입금지라고 빨간색 글씨로 적혀있다. 살짝 밀었다. 경비원의 실수로 문 잠그는 걸 잊었는지 문이 열렸다. 철이는 조용히 걸어갔다.
(6) 출소자 D가 사라졌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은 출소자의 재범을 막고 사회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갱생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쌀·마스크 등 자립을 위한 여러 물질적 지원뿐만 아니라 정신적 지원으로 상담도 꾸준히 한다. 공단직원인 C는 출소한 D와 정해진 기간에 연락을 했었다. 며칠 전 C는 다시 D와 연락해야 하는 기간이 도래해서 전화를 했다. 바쁜 일이 있는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C는 다시 전화한다는 것을 1개월 동안 잊고 있었다. 출소자 관련 지원 서류정리를 하던 C는 2개월이 지나서야 지난번 D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D와 연락이 안 된다. C는 한숨을 쉬었다. 출장기안을 내고 D집으로 향했다. 1잔에 1500 원하는 저렴한 카페에 가서 진한 아메리카노 두 개를 들고 D집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초인종이 고장 나서 안에 안 들리나 싶어 노크하며 D이름을 불렀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D집 앞 4층 계단에 앉아 10분 정도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D집은 공단의 주거지원을 받아 대구 00구의 한 임대주택 4층이었다. 10분 후 포스트잇에 '방문했는데, 안 계셔서 갑니다. 무슨 일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000으로 연락 주세요.'라고 글을 써서 대문에 붙였다. C에게는 D라는 사람에 대해 애정이 있다거나 동정심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D는 마약을 공급하던 사람이었다. 특히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공급하기도 한 D는 C가 이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부류에 속했다. 지구밖으로 보내버리고 싶은 마약범 D를 위해 집을 비롯한 여러 지원과 상담을 연결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이 싫었다. 억지로 직업상 임무를 최소한도로만 하자고 마음먹었기에 D집에 몇 번 연락하고 집 찾아갔다는 것을 서류작성 한 후 잊고 지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는데, D로부터 여전히 연락이 안 왔다. D와 연락이 닿지 않아 그 뒤로 총 8번 거주지에 방문했고 전화 연락도 시도했다. C는 상담 및 지원기록지에 그 사실을 기록했다.
C는 국밥집에 가서 순대국밥을 먹고 있는데, TV를 보고 먹고 있던 국밥을 뿜을 뻔했다. 뉴스에 D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의 제보로 D가 실종된 것으로 추측되는 6개월 뒤에야 경찰과 공조해 40대 D의 거주지 문을 강제 개방해 숨진 D를 발견했다는 뉴스였다. D는 본인의 집에서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D가 공단의 주거지원을 받아 입주할 당시 자녀 1명이 있었으나, 자녀가 대학교 때문에 서울 간 이후 연락이 끊겨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여있었다고 뉴스는 보도했다. D의 딸을 비롯해 다른 가족은 시신 인수를 거부했고,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된 D는 공영장례를 치렀다.
마약 전달책이었던 D가 출소 후 행적, 공단에서 D를 위해 매뉴얼대로 실행했는지에 대해 C는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F라는 여자 경찰은 매서운 눈으로 C를 집중 조사했다. C는 하기 싫어도 억지로 D에게 전화하고 집에 방문을 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C가 적극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공단의 매뉴얼에 어긋나거나 최소 해야 할 일은 했기에, C는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C는 2개월 동안 F라는 경찰에게 여러 번 조사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D는 이미 백골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고 부검을 했지만 사인과 사망 시점을 추정하기 어렵다는 소견을 받았다”며 “범죄 가능성은 없어서 입건 전 조사를 종결했다”라고 밝혔다. D 사망사건은 시신을 화장하면서 사람들이 기억에서 잊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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