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ppysmilewriter Oct 25. 2024

겁 많은 경찰 10

살만한 곳

다음 페이지에는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는 글이 적혀있었다.

답답하다. 철이가 미얀마에 있고,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음이 분명한데 내가 요청한 미안먀사건 조사요청을 윗사람이 무시했다. 미얀마 정부와 공조하는 것도 어렵지만 가봤자 잡지도 못하고 돈만 쓰고 올 것이라고. 번거롭게 몇 명 때문에 나랏돈 크게 축낼 거냐고 화를 냈다. 국내문제에만 신경 써도 문젯거리가 엄청나니 해외는 관심을 끄자고 했다. 미얀마에 정보통을 내 돈으로 심어놨다. 철이의 행방을 조금이라도 찾고 싶어서. 일주일 뒤 그 정보통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미얀마 무연고 정신병동에 철이처럼 보이는 동양인이 있는데,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이른바 ‘좀비 마약’으로 알려진 펜타닐에 중독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알아보니 마약성 진통제 중 하나인 펜타닐은 중독성이 매우 큰 약물로 치사량이 아편 계열인 헤로인의 100배에 달한다. 단 한 번만 사용해도 엔도로핀 분비에 문제가 생기며,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는데, 철이는 대체 어떤 상황일까? 펜타닐 없이는 체내 진통효과를 주는 엔도르핀을 느낄 수 없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고통도 매우 크게 느끼게 되면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중독에 빠지게 된다는데 철이는 왜 펜타닐을 접한 것일까?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마약 특히 펜타닐을 통한 환각 체험은 신경계통의 손상을 통해 인간의 정신이 신체를 제어하는 기능을 마비시켜 온몸이 꺾이고 뒤틀리게 된다고 했다. 마약을 비롯해 니코틴, 카페인 등과 같은 중독물질, 게임, 쇼핑, 스마트폰을 할 때 등에 분비되는 도파민은 행복감을 느끼게도 해주지만, 적게 분비되면 집중력과 의욕이 저하되며 운동능력을 감소시키고, 반대로 과도하게 분비되면 정신병,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이 야기된다. 중독에서 오는 쾌락은, 내성(동일한 효과를 누리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의 약물을 필요로 함)이 동반되어 더욱더 강도 높은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마약으로 인한 쾌락의 끝에는 결국, 고통과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우는 이모를 달래 미얀마의 시설로 함께 갔다. 나는 휴가를 냈다. 그 속에서 눈은 초점이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철이를 발견했다. 여러 서류 처리를 도와 퇴원시키고 즉시 한국으로 귀국시켰다. 한국의 시설에 입원한 철이는 시간이 지나자 안정감을 찾고 회복된 듯 보였다. 그러나 어느 날 자살했다. 대체 무엇이 철이를 죽게 했는지. 마지막 페이지에 마약에 중독된 자신이 싫고, 마약 안 할 때의 통증과 고통이 너무 싫다고 적혀있었다. 철이는 그보다 더 힘든 건 본인이 아빠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남을 괴롭히고 사기 쳐서 고통에 빠지게 빠지게 한 것이라고 적었다. 철이의 마지막 글을 보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빠, 아빠처럼 정의롭게 살다 죽고 싶었는데, 비겁한 사람이 되었네요. 아빠 너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나 죽어서 만나는 세상에서는 아빠처럼 남을 돕고 정의로운 멋있는 사람이 될게요. 엄마 사랑해. 나와 아빠 없이 엄마 혼자 이 세상 살아가게 해서 무척 미안해. 다음 세상에서는 내가 엄마의 아빠가 되어 엄마 지켜주고 사랑하며 살아갈게. 혹시 윤회가 사실이라면 다음 생애에는 나를 절대 만나지 말고 멋진 아들이 엄마의 아들이 될 거야. 내가 기도하며 죽을 거야. 엄마 나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 내가 아프게 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죄하는 길은 내가 목숨을 끊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 하지만 혼자가 될 엄마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자식, 죽기는 왜 죽어? 죽으면 문제가 다 해결될 것 같아?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 잡아서 처벌하게 해야지. 지가 죽기는 왜 죽어? 미련하게.

F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E는 F의 죽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촌인 철이 사건을 혼자 힘으로도 조사하려고 하다 왜 갑자기 자신이 자살한단 말인가? 신문에서는 친척아이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괴로움, 가족 간의 불화, 직장 내에서의 불화 등을 말했다. E를 비롯한 동료들은 모두 다 안다. F는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던 경찰이라는 것을. 본인은 어릴 때부터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지만 정의로운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어 경찰이 되었으니, 본인의 약점을 뛰어넘으며 살아봐야겠다며 항상 노력한 사람이었다. 같이 잠복근무 등을 가보면 표정에 두려워하고 땀을 내내 흘리던 F가 기억났다. F는 크게 한숨을 쉬고 현장으로 뛰어들어가곤 했다. 누구보다 용감한 사람이었다. F가 철이의 죽음 후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통해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F의 친척 동생인 철이의 아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30대 김 모 씨는 집 근처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5살 된 아들과 앉아 있다가 옆 테이블에 있던 10대 청소년 여러 명이 시끄럽게 떠들며 바닥에 침을 뱉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욕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철이 아빠는 그들에게 '그러지 말라'라고 타일렀지만 오히려 그들은 무리 지어 철이아빠를 때렸다. 심하게 폭행당하고 기절하면서 뒤로 넘어지게 되었고 결국 뇌출혈로 죽었다. 5살이었던 철이는 아빠의 맞아서 죽는 장면을 그대로 목격했다. 사랑하는 아빠가 그런 일을 당했으니 평생 고통받았을 것이다. 아빠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고 열심히 살아가던 철이가 고수익에 넘어가 마약중독이 되고 범죄조직의 일원이 사기 치는 일에 가담하다니.

그로부터 6개월 후 신문에 기사가 떴다. 경찰 F를 자살인 것처럼 위장해서 죽인 사람은 미얀마 범죄조직의 명령을 받고 출소한 D였다. 자신들의 조직을 파고드는 F가 위협적이었을까? 자살로 위장될 뻔했던 경찰 F의 살해사건은 F의 동료인 E를 비롯해 많은 경찰들이 힘을 모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는 자신들이 한 일이 적힌 기사를 보고 한숨 쉬었다.

누군가를 도우려 하거나 정의로운 일을 하려다 오히려 피해를 입는 경우가 나왔다. 정의로운 사람, 타인을 배려하던 이가 오히려 힘들게 되고, 남겨진 그분들의 가족들이 가족 잃은 고통, 경제난 등에 빠지는 일 모두 서글프고 너무한 일이다. 그런 일이 사회에 알려질 때마다 미치도록 안타깝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E는 점점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자신들만 생각하게 되는 이 사회, 미래가 두렵고 속상하다. 그래도 E는 남의 슬픔과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고 도우려 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스스로 위안해 본다.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함께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준 많은 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