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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Feb 14. 2022

철상자 안에는 길이 없다

[완독 일기 / 제비심장]

제비심장 / 문학과지성사

책에서 쇠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철배를 만들기 위해 철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곳에는 빛도 바람도 없다.

20미터 높이의 철상자 안에는 쇳가루가 둥둥 떠다닌다. 

쇳가루와 열기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방진마스크를 써도 쇳가루와 유리가루가 얼굴에 들러붙고 입 안에 쌓인다.

노동자들의 몸은 녹슨 철같다.

저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람 좀 넣어달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대꾸가 없다.

철상자 안에 ' 빛 조금, 눈 몇 송이, 비 몇 방울, 새 한 마리, 구름 한점…(107p)'이 있었다면 좀 덜 죽었을까.


가수 이지상의 노래를 듣는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용광로에 빠져 사망한 청년의 이야기. 그 쇳물로 무엇도 만들지 말라고, 엄마가 찾아와서 '내 새끼 잘 있냐고' 만지고라도 가게 공장 앞에 청년의 동상을 세워주라고. 

철상자에서도 사람들은 죽어 나간다. 떨어지고, 질식하고, 깔리고, 쓰러지고…. 그렇게 남편이 일하다 죽은 현장에서 아내와 자식들은 계속 일을 한다.


연극 대본 같았다. 독백과 방백이 자주 들린다. 가끔은 누구의 이야기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평안을 얻지 못하고 철상자 안에서 길을 잃은 영혼들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넋이 나간 채 망치와 용접기와 그라인더와 페인트 붓을 들고 있는 살아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 같기도 하다.


그는 망치로 철을 때려본 적도, 허공에 떠 있는 발판 위에 두 발을 디뎌본 적도, 용접 불티를 쫴본 적도 없을 거라고. 철에서 빛이 나려면 손가락에서 피가 나야 한다는 걸 그는 모를 거라고. / 97p

배의 주인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가 아는 건 오직 배가 완성돼서 바다로 나가야 한다는 것뿐이다. 배의 주인만 그럴까. 철상자 안을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들,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나도 그렇다.


쇠 냄새가 나던 책에는 이제 피 냄새가 베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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