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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Feb 22. 2022

소설은 〇〇해야 마땅하다?

[완독 일기 / 일몰의 저편]

일몰의 저편 / 북스피어

작가는 〇〇해야 마땅하다.

빈칸에 넣을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심오한 철학이 있어야, 정치적으로 올발라야, 성실해야,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글의 내용과 일상이 다르지 않아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가는 그렇다 치고 소설은 어때야 하는가.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을 구분할 수 있나? 도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나?     


기리노 나쓰오는 「일몰의 저편」을 통해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권력에 대항한다. 작중 소설가 마쓰 유메이는 폭력과 성애가 난무하는 반사회적인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문화예술윤리위원회에 소환되고, 요양소로 쓰이던 건물에 감금된다. 이곳에서 소설가 마쓰는 갱생 치료를 받게 된다. 실상 형무소와 다름없는 생활이다. 마쓰는 기존에 자신이 썼던 소설이 나쁜 소설임을 인정하고, 앞으로 희망으로 가득 차고 윤리적으로도 올바른 소설을 쓰겠다고 서약해야 한다. 일명 전향이다. 전향하지 않으면 요양소에서 나갈 수 없고 여차하면 정신병원에 갇혀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전향 후 요양소에서 나간다고 해도 평생 감시를 받으며 창작의 자유를 침해당한 채, 국가에서 허용한 이야기만을 쓰면서 살게 될 것이다. 전향하지 않는다면 감금된 채로 평생을 보내야 한다. 요양소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절벽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감금된 작가 중 많은 이들이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이제 마쓰의 선택이 남았다.     


마쓰의 심리는 분노, 공포, 체념을 지나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가 다시 분노와 공포, 체념을 되풀이한다. 이 과정에 개입하는 사람들은 창작의 자유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요양소 소장 다다는 사회적으로 올바르다고 허용된 글을 쓰지 않는 작가는 교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 소마는 문학은 광기라고 생각하고, 작가들이 죽으면 그 뇌의 기질을 검사하는 일을 한다. 요양소에서 일하는 여러 등장인물은 전직 작가부터 일개 공무원까지 다양하고, 모두 개인적인 사연을 가지고 있다.     


기리노 나쓰오는 작중 마쓰의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소설은 옳다 그르다로 심판하는 게 아니에요. 진실은 당신이 말하는 올바름과는 다른 곳에 있으니까요. 그건 독자에게도 전해질 겁니다. 왜 당신들은 요즘 헐리웃 영화처럼 정치적 올바름에 갇힌 듯한 멀쩡한 말만 하는 겁니까." / 71p


"혐오발언은 작품이 아니야. 내가 말하는 건 작가가 책임을 지고 표현한 작품이야. 허구의 이야기 말이야. 허구는 다양한 인간을 묘사하지. 개중에는 차별적 인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인간도 있어. 왜냐하면 인간 사회가 그러니까. 다양한 사람의 고통을 그리는 게 소설이니까 아름다운 것만 쓸 수 없지. 차별이 목적인 헤이트스피치와 혼동하지 말라고." / 317p


소설을 읽고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재미있네’ 혹은 ‘재미없네’다. 「일몰의 저편」은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다. 단번에 읽었다. 마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며 읽는 재미를 더해, 독자인 나는 소설을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작중 마쓰의 말과 비견해 곱씹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나는 독자라면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가진 가치관에 따라 또는 정치 성향이나 윤리관 등에 따라서 소설을 높게 평가하거나 폄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어떤 작가의 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앞으로 읽지 않으면 그만이다. 내가 손뼉 치며 읽은 소설이 다른 독자에게는 형편없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소설을 비롯한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는 지구 상의 인구수만큼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마쓰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결말을 읽고 난 후의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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