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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해수욕장

by 브로콜리

드디어 여름방학이다.

올해 방학은 유난히 기대가 크다. 외삼촌 댁 식구들이 해수욕장에 가는데 나도 따라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외삼촌은 군부대에서 근무하신다. 매년 여름 군부대에서 ‘하계 휴양소’을 마련해 가족들을 위한 휴가공간을 운영한다. 몇 년 전에도 삼촌댁에 꼽사리 끼어 해수욕장에 다녀온 기억이 있다. 올해 여름에도 그 바다로 간다고, 나도 함께 가자고 하신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

비록 난 외사촌 병진이와 병팔이형처럼 수영을 배우적은 없지만 바다에서 파도타기 만으로 재미있다. 외사촌들은 수영도 잘하고 구명조끼도 가지고 있다. 나는 그저 형이 벗어 줄 때만, 잠깐씩 빌려 입는다. 구명조끼를 입으면 물에 둥둥 떠서 마치 수영 선수가 된 기분이다. 나도 하나 갖고 싶지만 엄마에게 사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어디서 파는지도 모르겠고, 엄마는

“그게 왜 필요하노?”

라고 하실게 뻔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고대하던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외숙모가 선크림을 온몸에 덕지덕지 발라 주신다. 병진이와 난 신나게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너무 마음이 급해서 수영복도 안 입고 들어갈 뻔했다.

바다에서 우린 한 마리 물고기처럼 논다. 튜브에 올라 파도를 타니 마치 바다에 배를 뛰우고 있는 느낌이다. 점심도 잊은 채 열심히 놀고 있으니 숙모가 우릴 부른다.

“야들아, 점심 먹자!”

아쉽지만 야영장 단체 텐트로 향한다. 텐트 안은 마치 피난처 같다. 커다란 나무 평상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고, 많은 가족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매우 찝찝하고 불편하지만 상관없다. 난 바닷속에서 놀면 되니까... 점심을 먹는 동안은 조금 불편하다. 왠지 외삼촌댁 식구들 틈에 나만 끼어 있는 불청객이 된 느낌이다. 대충 먹고 빨리 바다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점심 식사 후 병진이와 병팔이 형이 주섬주섬 구명조끼를 챙겨 입는다.

난 그런 둘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둘은 구명조끼를 입어서 그런지 자유롭게 바다를 누비고 다닌다. 나는 튜브에 몸을 맡기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불편하다. 부럽다.

한참을 놀더니 형이 구명조끼를 나에게 벗어 준다.

"니 입고 놀아라. 나는 괜찮다."

"어? 진짜?"

난 신이 나서 형이 벗어준 구명조끼를 입고 저녁이 될 때까지 바닷속을 헤엄쳐서 다닌다. 아무리 발장구를 쳐도 고작 10미터도 못 가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수영선수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날 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대형 텐트에 누웠다. 어색하고, 찝찝한 잠자리 그쪽 어디 구석에서 난 잠이 들었다. 자는 동안 몸이 둥둥 바다에 떠있는 느낌이 계속 든다.

'너무 파도를 많이 탔나?'

잠결에 몸이 '둥둥' 파도를 타는 느낌에 신기한 생각을 하다 금세 곯아떨어진다.




다음날 새벽부터 해가 유난히 더 빛난다. 새벽 바다는 고요하다. 물이 빠져 바다는 얕고 고요하다.

‘오늘은 또 어떻게 놀지?’

난 병팔이 형보다 먼저 일어나 생각한다.

'아! 구명조끼가 있어야 좀 더 재밌는데...'

형이 일어나기 전에 얼른 구명조끼를 먼저 입는다.

'이렇게 입고 있으면 형이 나에게 양보를 하겠지?'

그 생각이 맞았다. 아무도 나에게 구명조끼를 달라고 하지 않는다.

조끼를 입은 채 밥을 먹고 얼른 바다로 뛰어 들어간다. 드넓은 바다지만 구명조끼만 입으면 난 바다가 두렵지 않다. 이곳저곳 열심히 뛰어다닌다. 모래에 깊은 웅덩이를 파고 댐 만들기도 한다.

점심시간이 되어 텐트로 왔다. 근데 형이 보이지 않는다.


"형님은 어디 갔어요?"

"어, 형님 오전에 바다에서 다리에 쥐가 나서 지금 의무실 갔다."

"네? 진짜요?"




너무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형이 바다에 빠졌단다. 인명구조요원에게 업혀서 물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마음이 철렁했다. 내가 괜히 구명조끼를 입고 싶은 욕심에 병팔이 형이 다친 게 아닌가 걱정이다. 아무도 날 탓하지 않았지만, 난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쌀밥을 입에 꾸역꾸역 넣는다.

형이 파란 입술을 하고 돌아왔다.

난 형에게 미안한 마음에 얼른 구명조끼를 벗어둔다.

"행님아, 괜찮나?"

난 걱정반 미안함 반으로 묻는다.

"어, 게안타. 다리에 쥐가 나서 그런 거다."

형은 웃으며 밥을 먹는다.


내 것도 아닌 조끼에 욕심을 냈던 내가 부끄러웠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고, 눈감아 주었다는 걸 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형이 다치고 오니 난 내 행동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형은 여전히 웃으며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해 여름방학 해수욕장은 나에게 구명조끼에 대한 추억과 교훈을 선물했다.

'남의 것에 욕심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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