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과정 시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6

by 브로콜리

나는 학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취업 후 나는 당당히 신입사원 면담에서 '저는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싶습니다'라고 했고 그런 나를 황당하게 바라보던 인사부 부장님은 나를 정말 연구소에 배치해 주셨다. 당시 연구본부에 배치된 신입사원 10여 명 중 학부 졸업생은 나뿐이었다. 그렇게 배치된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하며 많은 걸 배웠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왜 4년간 그 어려운 역학들을 공부하며 기계공학도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는 일이라곤 공부한 역학들과 복잡한 수식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전혀 없었고 엑셀,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만드는 게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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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계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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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연구소에는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은 신입사원 중에 간간이 있을 뿐이었다. 기술 개발은 일본, 독일 기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베끼는 수준이었고 새로운 제품을 온전히 우리 힘으로 개발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선배들도 일본 기술을 벤치마킹하는 데 전문성이 있는 학부 졸업생 선배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일본 기술 책자나 기계 매뉴얼을 읽어가며 그걸 마치 교과서인 양 열심히 익혔다. 그 정도만 잘해도 회사에서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였다. 당시 내가 있던 기업 연구소에도 가끔 주위 학교 교수님이나 연구소 박사님들이 방문하시어 세미나 같은 걸 하곤 했다. 잔뜩 기대하고 참석했던 나는 주위 선배들의 '대학 교수가 뭘 안다고...' 하는 불신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분위기에 처음엔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차차 세미나를 듣고 같이 회의도 해보고 하니 왜 그들이 그런 불신을 두고 그들을 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 후에는 나도 그들을 그런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개발 중에 발생하는 많은 문제나 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이슈들을 푸는 방법을 대학 교수님이나 박사님들을 통해서 찾아보려 했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그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대부분 우리가 이런 부분이 문제이고 이런 부분을 풀어야 의미가 있다고 교육 아닌 교육을 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고 나면 그들은 연락이 없었고 우린 우리 나름대로 몸으로 부딪치며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러면 우리는 속으로 '치~ 와서 기죽고 다시는 연락을 안 하는구만. 실력도 없는 사람들이 입만 살아가지고'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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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계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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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에서 많은 일들을 했지만 궁금증이 너무 많았고 해결할 방법이 없던 나는 좌절했다. 대학원에 가면 뭐가 다를까 하고 석사 과정으로 입학했다. 몇 년간 회사에서 실무를 하다가 다시 학교에서 공부하니 감회가 새로웠고 무척 재미있게 공부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공부를 했던 학부생 때와는 다르게 현장에서 실무를 겪어보고 다시 입학한 석사 과정에서는 수업 하나하나가 실무에서 겪었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수업이었다. 아마 학부를 졸업 후 당시 아무 경험이 없고 실험실 생활도 거의 안 했던 내가 대학원을 곧바로 진학했더라면 나는 또 학부 과정과 비슷한 공부를 했을 거다. 하지만 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석사 과정에 입학하니 많은 수업 내용이 왜 배우는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 재미있게 공부하고 졸업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산업계에서 바라보는 연구와 학계나 연구소에서 바라보는 연구에는 큰 시각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산업계에서는 지금 당장 발생하는 문제나 개발에 도움이 되는 실무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 고민하다가 그 분야 전문가분들이란 분을 기대에 찬 눈으로 만난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유명한 교수나 박사님들은 생각보다 실무를 너무 모르고 이론적인 부분만 잘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지식도 큰 도움이 안 되는 어쩌면 실무에서는 다 알고 있는 지식일 뿐이다. 그러면 산업계에서는 큰 실망을 하고 점점 산학연 연계를 꺼리게 된다. 차라리 우리끼리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다. 학계나 연구소는 산업계와 연계를 하고 싶지만, 대뜸 찾아온 그들이 너무 실무적인 부분을 풀어달라고 하니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공정 중 발생하는 품질 문제나 돌발적인 상황들을 대학 교수나 연구소 박사들이 어떻게 풀 수 있겠는가? 그런 부분은 당연히 그 분야에서 수십 년 경험을 쌓은 그들이 훨씬 잘 해결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그렇게 그들과 대화에서 심한 소외감과 무시를 받게 되면 학계에서는 산업계와 연계를 꺼리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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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대학원 입학 시 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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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업계, 학계, 연구계 간의 소통에 있어서 통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산업계에서는 학계나 연구계를 잘 활용하고 연계를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잘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어떤 부분을 의뢰하고 풀어달라고 하는지 알아야 한다. 학계나 연구계도 마찬가지다. 산업계와 연계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무얼 원하는지 실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들에게 발생하는 문제 중 학계나 연구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어떤 것이 있을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계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학계나 연구계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모두 알고 있는 통역가가 필요하다. 그 둘의 언어를 모두 쓰는 사람이 되어야만 진정한 산학연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계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산업계에서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석사나 박사 과정을 밟으며 많은 공부를 하게 되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로 직장인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또 학계를 너무 모르고 입학을 했다가 졸업을 못 하고 낭패를 겪는 경우도 많다. 나도 석사 입학 후 연구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서 지도교수님과 면담 중 독일에 OO 박사가 연구한 내용을 신나게 설명해 드리고 해보고 싶다고 했다가 혼났던 기억이 난다. 당시 교수님께서 '독일이나 일본에 누가 했다 안 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야'라고 말씀하셨다. 학계에서는 신규성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논문이나 연구가 중요한데 그들은 실무에서 많은 경험을 겪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는 오히려 잼병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쪽 다 모두 두루두루 아는 게 꼭 좋은 건 아니겠지만 직장 경력을 쌓고 대학원을 진학할 때는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도 충분히 하고 입학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어떤 콘셉트의 석사, 박사가 될까라는 고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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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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