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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 Oct 30. 2022

추억의 바다에서 새로운 추억을

부산 오륙대와 이기대

“바다만 보이면 그렇게 좋아요?”

어느 여름 취재차 강화도 옆 석모도에 갔을 때였다. 석모도수목원에서 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한참 오르다 문득 뒤를 돌아다보니 숲 사이로 푸른 바다가 살짝 보였다. 수목원에 오기 전까지 여러 곳의 바다를 둘러봤는데도 숲길에서 언뜻 보이는 바다를 보고 탄성을 지르는 나에게 사진기자가 웃으며 말했다. 


맞다. 나는 바다가 그렇게 좋다. 어딜 가든 바다가 보이면 보고 또 본다. 바다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언젠가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바다와 산 중에서 어디서 살지 선택하라고 하면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하다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산골에서 태어나 살다가 어부한테 시집가 바다에서 살겠노라고. 바다가 더 좋다는 얘기다. 지금도 바다와 산 가운데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바다를 택할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바다에 갔던가. 우리나라는 삼면을 둘러싼 동해, 서해, 남해 모두 다른 풍경과 분위기를 갖고 있다. 백사장이 있는 바다, 갯벌이 펼쳐진 바다, 포구의 정취를 지닌 바다. 바다라는 이름은 같지만 그 모습은 모두 다르다.      




내 오랜 기억 속의 바다는 고향인 부산의 오륙도 앞바다다. 나는 오륙도가 있는 바다 근처 동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륙도가 보이는 바닷가는 어릴 적 틈만 나면 찾던 놀이터였다. 그곳에서 갯바위에 붙은 담치(홍합)를 따는 게 일이었다. 친구들과 소쿠리와 칼을 들고 가 담치를 따서 삶아 먹곤 했다. 한번은 바다와 맞닿은 절벽에 붙은 담치를 따다가 칼을 바닷물에 빠뜨리면서 바다에 빠질 뻔하기도 했다. 오륙도에서 이어지는 이기대에도 낚시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오빠를 따라 자주 갔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살았던 그 동네를 떠난 이후로 나는 오륙도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가끔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가 나오는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을 때나 오륙도의 존재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다 오륙도를 다시 찾은 건 한참 뒤였다. 고향이라 그런지 여행지를 찾을 땐 은연중에 늘 부산을 제외시키곤 했는데, 도보길을 테마로 한 여행에서 부산의 ‘갈맷길’이 눈에 들어왔다. 갈맷길은 부산 곳곳을 걷기 좋도록 조성한 길로 여러 개의 코스 중 광안리에서 오륙도를 지나는 길을 걸었다. 


어릴 적 오륙도 앞바다에 그렇게 자주 갔지만 사실 오륙도를 제대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릴 땐 그저 바닷가에서만 놀았고 오륙도는 저 멀리 어디쯤 있겠거니 했다. 다시 찾은 오륙도에는 소공원이 조성돼 있었다. 봄이면 노란 수선화가 오륙도와 어우러진 풍경으로 유명한 그곳에 서자, 푸른 언덕 너머로 대여섯 개의 섬이 보였다.(6개의 바위섬은 보는 위치에 따라개수가 달리 보여 오륙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푸른 언덕은 마치 제주도 우도나 송악산 같은 분위기가 났다. 오륙도가 이런 곳이었던가. 미처 몰랐던 빼어난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기대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기억 속의 이기대는 그저 갯바위 같은 느낌으로만 남아 있었는데, 이기대해안산책로를 걸으며 우리나라의 바닷길 중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고 싶은 길로 바뀌었다. 해안을 따라 데크가 놓인 산책로에서는 기기묘묘한 바위와 해식동굴 등 볼거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또 임진왜란 때, 술 취한 왜장과 함께 떨어진 두 기생이 묻혀 '이기대'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알게 됐다. 


사실, 너무 좋아 다시 가 본 곳 중에서 예전보다 좋았던 적은 많지 않다. 맛집도 마찬가지. 너무 맛있었던 기억으로 다시 찾으면 늘 그전보다 못한 맛에 씁쓸해하곤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가 본 곳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어린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아이들은 멋진 풍경 따위엔 관심이 없고 잘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어린 시절의 나에게 오륙도와 이기대가 제대로 보였을 리 없다. 오륙도와 이기대뿐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갔던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도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가니 새롭게 보였다. 


여행 따위엔 관심조차 없었던 아주 어린 시절에 갔던 곳들을 다시 찾아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겠다. 오래된 추억이 현재와 만나 새로운 추억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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