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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 Oct 22. 2023

폭풍의 바다와 빛내림

영광 백수해안도로

서해에도 동해 못지않은 해안도로가 있다. 바로 영광의 백수해안도로다. 칠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77번 국도를 따라 가는 16.8km에 이르는 길로, 서해안에서는 드물게 짙푸른 바다와 수평선, 기암절벽을 볼 수 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바다를 끼고 시원하게 달릴 수 있어 서해 최고의 해안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는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9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전망이 좋은 곳마다 정자와 벤치가 놓여 있어 바다를 바라보고 일몰을 감상하기 좋다. 특히 전망 좋은 언덕에 세워진 '칠산정'에서는 멀리 칠산도·안마도·송이도·낙월도 등 섬들이 한눈에 보인다. 해안도로 아래 바다 가까이서 데크를 따라 걸을 수 있는 3.5km의 '해안노을길'도 있다.   


언뜻 사진으로만 보면 동해 같지만, 동해와 다른 점은 바다로 떨어지는 환상적인 일몰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을이 얼마나 좋으면 '노을전시관'과 '노을전망대', '노을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었겠는가. 국내 유일의 노을전시관에는 노을이 생기는 원리가 설명돼 있고 노을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매년 10월이면 백수해안도로 노을축제도 열린다. 


노을전망대에는 칠산도에 서식하는 괭이갈매기의 날개를 형상화한 커다란 조형물이 세워져 사진 스폿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7개 섬으로 된 칠산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랑부리백로와 괭이갈매기·저어새의 번식지이기도 하다. 괭이갈매기는 한 번 짝을 이루면 평생 함께하는 것으로 알려져 백년해로를 상징하는데, 사랑을 이루지 못한 한 남녀가 괭이갈매기로 환생해 칠산바다 위를 날아다니며 지킨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흔히 서해에는 파도가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겨울 찾은 백수해안도로에서는 동해 못지않게 거센 파도를 만났다. 폭풍 치는 겨울바다는 추위를 잊게 만들었다. 두터운 겨울옷을 여미면서도,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시린 눈을 부릅뜨면서도, 바다를 바라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 폭풍 사이로 노을까지 번지고 있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서해의 근사한 일몰을 기대했지만, 폭풍 치는 바다의 낙조도 좋았다. 


폭풍의 바다를 품은 하늘은 변화무쌍했다. 하늘을 뒤덮은 구름 사이로 해가 드나들기를 여러 차례. 회색빛 구름은 붉은 기운을 머금었다가 이내 검어지는가 하면, 어느 순간 작은 틈을 내주며 신의 선물 같은 빛내림을 선사했다.   

   

하늘과 바다와 구름이 만들어낸 천지창조 같은 노을이 내린 그날, 귀를 얼얼하게 하는 추위도, 일상을 지루하게 물들이던 권태도 모두 잠시 사라지는 듯했다. 때때로 여행은 이렇듯 느른해지려는 마음을 곧추세우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힘은 가늠할 수 없는 자연과 날씨의 변화에 있으며, 그 중심에는 노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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