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경 Oct 30. 2022

오르는 만큼 아름다운 절정의 순간

순천만

해를 좇아 뛰어 본 적이 있는가. 아래로 조금씩 내려가는 해를 따라 많이도 뛰어다녔다. 매일 떨어지는 태양인데, 떨어진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음 날 다시 떠오를 텐데, 무얼 위해 그렇게 뛰어다녔을까. 

첫 번째 이유는 사진이었지만, 실은 어느 곳에서든 완벽한 절정의 순간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가장 좋은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보고 싶은 마음.


그렇게 뛰어서 만난 일몰 중 첫손에 꼽는 곳은 순천만이다. 넓디넓은 순천만에서는 어디서든 갈대밭과 어우러진 멋들어진 노을을 볼 수 있지만, 순천만의 광활한 습지와 그 유명한 S자 곡선 위로 떨어지는 낙조를 한눈에 담으려면 용산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사실, 다채로운 볼거리를 지닌 순천만에서 30분 정도 걸어야 하는 산에까지 올라 노을을 보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사진작가 같은 사진 찍는 사람들이다.



그날도 우리 외에는 산에 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해 질 녘 삼각대를 짊어 멘 사진기자와 함께 산을 타기 시작했다. 능선이 가로로 길게 이어져 있어 산을 오르는 내내 나무 사이로 해가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동그란 해가 점점 빨개지면서 작아지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우린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어디 이날뿐이었으랴. 유명하다는 곳에서 일몰을 볼 때면 늘 한결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해가 떨어지기를 느긋하게 기다리기보다는 해가 떨어질까 조마조마해하면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다니곤 했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풍경에 대한 욕심이 이리도 큰 것인지... 



하지만 가장 멋진 해넘이를 볼 수 있는 곳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한 뒤, 정작 그 풍경은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그마저도 최상을 찾기보다는 최선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고의 일몰을 보려면 장소는 물론 여러 조합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하늘의 색과 구름의 양, 해가 걸리는 위치 같은 것들이다. 최상과 최선. 어쩌면 인생의 딜레마인지도 모르겠다. 늘 최상을 향해 달려가지만 최선을 다한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그래도 순천에서는 최상에 가까운 일몰을 보았다. 행여 해가 떨어질까 거의 뛰다시피 해서 도착한 전망대에서는 S자 물길과 둥근 융단 같은 갈대밭 위로 내려앉는 황금빛 노을이 막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사진기자는 근사한 장면을 건졌고 나는 또 하나의 '인생 일몰'을 가슴속에 새겼다. 





순천에는 일몰로 유명한 곳이 또 있다.  ‘와온’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닌 해변이다. 순천만의 오른쪽 해안가에 위치한 와온해변의 일몰은 순천만처럼 화려하지 않다. 질펀한 갯벌과 ‘사기도’라는 작은 솔섬 사이로 떨어지는 석양은 정감이 넘친다. 사기도는 새들이 싸 놓은 똥이 많아 ‘똥섬’이라고도 불린다. 


와온 갯벌에서는 어민들이 뻘배를 끌며 갯일을 하는 독특한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때때로 뻘배의 실루엣이 노을 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바다의 일몰을 완성하는 것은 실루엣이다. 시시각각 다른 빛깔로 물드는 하늘과 바다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그 사이에 등대나 바위, 배 같은 실루엣이 들어가면 여느 곳과는 다른 특별한 노을이 탄생한다. 


작은 어촌마을의 정겨운 노을 풍경과 어여쁜 이름 덕분일까. 와온은 여러 시에 등장하기도 했다. 곽재구 시인은 '와온 바다'라는 시에서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 전생과 후생/ 최초의 휴식이다'라고 표현했다. 지는 해의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름, 와온. 그 아늑한 온기 속에 머물고 싶다. 


이전 09화 폭풍의 바다와 빛내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