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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May 22. 2023

10 어렵지 않은 것

  

 “선재야, 너 괜찮아?”

 “뭐......뭐가?”

 “손도 차갑고 얼굴도 상기되어 있고. 어디 아파?”

 “아니.”

 “......집에 돌아갈까?”

 “사실은 엄마가 있었어.”

 “근데 왜 도망쳤어?”

 “우리 엄마는 너희 엄마랑 많이 달라. 아까 담배피면서 막 소리치던 여자 있지? 우리 엄마야...... 실망했지?”

 “그렇구나. 인사라도 할걸. 근데 뭐를 실망해?”

 “?......”     


 그런 꼴의 선재네 가족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는 서명주의 모습을 보고 선재는 오히려 더 놀랐다. 이런 경우라면 얼마든지 어정쩡한 표정과 함께 어쩔 줄 몰라하는 어색한 공기가 흐를 순서라고 생각했던 선재는 당황했다.     


 “다시 가보자. 너희 엄마에게 인사하고 싶어.”

 “......”

 “얼른, 일어나. 빨리 가보자. 어차피 그쪽 아직 구경 못 했잖아.”     


 선재는 못 이기는 척 일어나 교회천막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뭐라고 하지. 교회분들에게 인사는 해야겠지. 죄송하다고 해야하는데...... 죄송합니다, 엄마 때문에 죄송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입을 달싹달싹 움직여 사과의 말을 연습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선재는 명주와 함께 걸었다. 어느새 교회 천막 앞에 도착했다. 미자는 가고 없었다. 선재는 교회사람들이 불편했지만 그냥 인사를 해보기로 했다. 예전의 선재라면 명주를 버려두고 도망을 갔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으니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아... 안녕하세요......”

 “어, 어. 선재구나. 엄마 왔다가셨다.”

 “네. 죄송......해요.”

 “에휴...... 니가 무슨 죄가 있겠니. 이거 가지고 가. 아까 목사님이 주셨는데 엄마가 놓고 가셨어.”

 “고맙습니다......”     


 명주는 그 모습을 잠자코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비난이나 동정, 또는 경멸같은 그런 감정이 아니길 바래보는 선재였다. 사람들에게 친하다거나 관심을 바라는 감정 따위는 기대하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사실은 자신의 못난 모습에 실망할까봐 조마조마하는 마음이  저 밑에서부터 스물스물 기어올라오고 있었다.     


 선재는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좀더 마켓구경을 하고 비빔밥도 야무지게 먹고 행사에서 주는 선물들도 챙긴 후 집에 돌아왔다. 친하지도 않은 엄마때문에 스스로 불안에 갖혀 살 필요는 없지, 하며 용기를 내보았던 것이다. 엄마는 깡마른 팔로 만세를 부른 채 방 한가운데에 누워 자고 있다. 삐걱이는 낡은 식탁에는 구겨진 포장종이와 한 입 깨물은 널브러진 샌드위치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다.      


 눈내리던 지난 밤의 창문을 선재는 바라본다. 엄마가 맞는 소리, 담배연기, 그런 까슬까슬한 시간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왔던 자신의 모습이 창문을 통해 그려진다. 엄마나 아빠처럼 살지 않기로 했었지. 선재는 오늘 낮의 일들을 생각해본다. 돈을 쓰지 않고도, 못난 부모들을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친구와 놀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웃음이 나왔고, 내가 보려하지 않았을 뿐 세상엔 예쁘고 사소하고 이유없이 기분을 좋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엄마가 하는 것의 반대로만 하면 되지 않을까. 도둑질도 하지 말고, 담배로 피지 말고, 여러 사람 앞에서 막무가내로 큰소리 내지도 말고, 곁에 있는 사람도 챙기고.      


 선재는 갑자기 손에 든 봉지 속에 있던 두유를 꺼내어 한쪽에 쌓아 두었다. 한 손에는 빈 봉지를 들고, 식탁 위에 어질러진 샌드위치를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뜯지 않은 것은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휴지를 돌돌 말아 뜯어 식탁을 닦았다. 그냥 버리고 닦았을 뿐인데 마음까지 청소가 되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하지 않는 것 중에는 청소도 있었다. 그럼, 집 청소부터 해보자. 

     

 선재는 닦은 휴지를 버리며 낡은 집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청소, 하자. 

 그런데 뭘 어떻게 해야하지?      


 휴대폰을 열어 명주에게 전화를 건다. 물어볼 사람은 명주밖에 없었다. 창피했지만 명주는 저런 나의 엄마도 아무렇지 않아 했으니 괜찮을거야. 신호가 가는 순간, 선재는 전화를 황급히 끊어버렸다. 청소하는 방법을 알려주려면 집에 서명주가 와야 한다. 누군가 우리집에 오는 일은 아직 용기가 더 많이 필요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냥 나혼자 해보자. 우선 눈에 보이는 쓰레기부터 버리는 걸로. 


'어렵지 않은 것부터, 해보자. 친구랑 노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 내가 안 했을 뿐이지.'


선재는 방바닥에 눌어붙은 전단지를 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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