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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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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Jun 19. 2023

13 새로운 기분


        

 방바닥에 쭈그려 앉아 긁던 전단지가 제거되고 기분이 좋아진 선재는 몸을 일으켜 다시 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제 뭘 해볼까. 내가 살고 있는 집이니까 내가 치워도 되는거였는데. 이제라도 해보자.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부엌 겸 거실에는 방치된, 몇 개 안되는 그릇들과 십년은 지나 보이는 양념들, 누렇게 색이 변한 벽지에 걸린 먼지쌓인 앞치마와 싱크대에 어지럽게 놓여진 녹슨 냄비들, 사용된 적이 없는 밥솥. 먼지와 뒤섞인, 알 수 없는 책이 쌓인 알 수 없는 수납장, 부러진 구두주걱, 이가 다 빠진 쓰레받이와 기능을 제대로 할 수나 있을지 모를 정도의 짧고 뭉개진 빗자루. 선재는 엄마와 얘기하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웠다.    

  

 “엄마.”

 “......”

 “엄마, 이거 버리는거야?”

 “......아 뭐어. 쯧.”

 “이거 버린다.”

 “뭔데 버려? 아무것도 버리지 마.”

 “밥도 안 해주면서 곰팡난 밥통을 뭐하러 가지고 있어!”

 “뭐어? 이년이!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뒈지겠고만 니 밥을 내가 왜 해줘?”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집’을 청소해보려고 했는데...... 가슴속에서 뜨겁고, 검고, 끈적이는 액체가 타악 풀려 천천히 선재의 심장을 침범해 퍼져 나갔다.     


 “그럼 나를 왜 낳았어? 왜 낳아서 방치해?”

 “이년이 뭐라는거야? 나도 왜 너를 낳았는지 아주 후회가 막심하다.”     

 무심하게 담배를 피워물며 상처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미자의 모습에 어느새 선재의 볼 위에는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리고 있다.     


 “내가 뭘 잘못했어? 엄마한테 애초에 사랑받는 일 따위는 기대도 안 했어. 그래서 나 혼자 끼니 때워가며, 교복 얻어 입어가며 알아서 살고 있었잖아! 가만히 숨만 쉬고 있는데...... 흐흐흑...... 이럴거면 나를 왜 낳......흐흑......”     

 미자는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며 울고 있는 선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텔레비전을 켠다.      

 “시끄러워 이년아. 갑자기 질질 짜고 지랄이야. 저것들은 맨날 본 것만 다시 틀고 있어. 쯧.”     


 ‘우리집’을 청소해보려고 시도했던 선재의 가슴은 이미 검은 액체로 완전히 덮여 버렸다. 선재는 쓰레기를 담기 위해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거실에 집어던지고 집을 나왔다. 현관문을 쾅 닫고 나오니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안팎이 다 검구나. 갈 곳은 없었다. 선재는 눈물로 범벅이 된 젖은 얼굴을 손등으로 닦으며 구부러진 벚꽃나무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작은 버섯 밑에는 어느새 새로운 버섯 서너개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나같은 인생도 있는거지?”

 “......”     

 말없는 나무 앞에서 선재는 말을 이어 간다.     

 “명주네 엄마는 안 그러잖아. 따뜻하게 김이 나는 김치볶음밥도 해주고 과일도 깎아주고......흐흑......얘기도 들어주고, 자기 자식이 아닌 나에게도 살갑게 말을 걸어주잖아......흐흐흑......나도 엄마가 있는데......나는 원래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태어난게 아닐까? 으허허헝......”

 “나무가 알아듣는데?”     


 선재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명주가 뒤에 서 있었다.      


 “......들었어?”

 “아니. 방금 나왔어.”

 “......”

 “......”

 “......집을 청소해보려고 했어. 새로운 기분이 들어서. 엄마처럼 안 살고 싶어서 청소부터 해보려고 했어. 그런데 엄마가 나를 낳아서 후회스럽데. 흐흐흑......”


 명주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선재의 손을 잡았다.


 “......엄마들은 진심이 아닌 말을 가끔 하기도 하더라고...... 우리집 가자.”     


 선재는 잠시 망설이다가 집에는 다시 들어가기 싫다는 생각에 명주 손에 이끌려 못 이기는 척 명주네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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