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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Jun 26. 2023

14 떠밀린 독립

 

 선재의 집에서는 집에 오지 않은 선재를 찾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선재의 아빠도 한달만에 집에 돌아왔지만 선재의 부재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고, 미자는 남편이 던지듯 건넨 전례없는 두툼한 돈봉투에 신이나 들떠 있었다.      


 “이... 이게 다 뭐야? 진짜 나 주는 거야? 이거 다?...이거 어디서 났어?”

 “뭐 이렇게 궁금한게 많아? 확씨. 뭐 계약하나 해서 계약금 받은거야.”

 “무...무슨 계약금?”

 “물어보지 말라고! 에이씨! 또 터지기 전에 입 닫아라. 알거 없고 지금 짐 싸. 빨리.”

 “짐을 왜 싸?......”

 “빨리 가야된다고.”

     



 돈이나 친구가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오고, 자라왔다. 혼자서 주변 사람들의 동정심과 예의바름을 팔아 끼니도 때웠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없이 그저 목숨을 이어가는 것을 목표로 사는 것은 고등학생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는 것을, 선재는 이제야 깨달았다. 항상 기죽어있었고 가슴이 텅 비어있는 느낌은 왜 그러는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늦은 밤 갑자기 방문한 이방인인 자신에게 현정이 건넨 첫마디는 ‘어머나, 예쁜 선재왔구나, 밥은 먹었니?’ 였다. 비교되는 엄마들의 모습에 선재는 다시 한번 짧은 부러움과 슬픔을 느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다. 현정은 선재에게 무슨 일로 이 밤에 방문했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간단한 간식과 침구를 건낼 뿐이었다.     


 이런게 배려구나. 이런게 사랑이구나. 선재는 텅빈 마음속에 색이 다른 편안함 한 방울이 똑, 떨어져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보드라운 연보라색 솜이불을 손으로 쓰다듬다가 문득 궁금해진 선재는 명주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랑 안 살고 따로 나와서 살 수는 없을까?”

 “우린 아직 학생인데 그럴 수 있을까? 돈도 없고......”

 “그렇지. 돈, 돈이 있으면 나가서 혼자 살 수 있겠네. 얼마나 있어야 하지?”

 “글세. 집을 사야될텐데. 집은 얼마지? 엄청 비쌀 껄.”

 “......오백만원? 천만원?”


 그 때 현정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얘들아, 치킨먹을래?”

 “살찌는데...... 오늘만 먹을까?”

 “그래, 먹자. 엄마도 오늘 손님이 오니까 맥주 한잔 하고 싶네.”     


 선재는 현정, 명주와 치킨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 말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궁금한 것도 많고 수다스러워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선재였다. 하지만 지난번처럼 도망가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가기 싫기도 했지만 이제는 도망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현정은 맥주를, 선재와 명주는 각각 자몽에이드와 아이스티를 들고 건배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자신의 부모 대신, 선재는 현정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오늘 자신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상담을 했다. 누구에게도 이런 얘기를 해본 적 없는 선재였지만 선재는 이제 좀 다르게 살고 싶었다. 부모가 아니어도 여태껏 주변에서 밥 한끼, 옷 한 벌이라도 챙겨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알바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명주어머니는, 알바를 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학생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도 있다고 했다. 선재는 가슴이 벅찼다. 당장이라도 양손에 돈이 생긴 것 같았다. 학교 쉬는 시간에 학생이 할 수 있는 알바를 알아봐야지 생각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교복을 입기 위해 집에 돌아간 선재는 잠기지 않고 대충 닫혀있기만 한 현관문을 보았다. 싸한 기분에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간 선재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집이 이상했다. 엄마도, 낡은 세간도 없었다. 도둑이 왔다간 것처럼 냉장고와 옷장이 열려있었다. 선재는 다짐했던 것 보다 일찍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현관문 앞에 얼음처럼 서서 굳어있던 선재의 뒤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현성씨, 이현성씨 있어요?”

 “......누구세요?”

 “여기 이현성 집 맞지? 아빠야? 아빠 지금 어디있어? 엉?”

 “......누구신데요?”

 “야 이현성!! 나와!!!”     


 신발을 신은 채 난데없이 선재의 집에 들어가 들쑤시는 남자어른 셋의 모습을 선재는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꿈인가? 아직 명주네 집 연보라 이불 속인가? 너무 생생한데.      


 “이현성이 집에 오면 전화해. 또 올테니까 아빠 숨겨줄 생각 마라.”

 한 남자가 명함을 선재의 손에 쥐어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뒤돌아 나갔다. 쓰레기같은 새끼, 지 자식도 버리고 갔고만. 인간도 아니네. 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선재는 손에 쥐어진 명함으로 시선을 떨어뜨리며 이것이 현실임을 새삼 알았다. 아, 나는 드디어 버려졌구나. 그동안에도 그러고 싶었지만 이젠 실천에 옮겼나보구나. 엄마? 아빠? 단지 낳아주었다고 그런 따뜻한 이름을 붙이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부모가 없어. 아니, 원래부터 없었어. 슬프지도 않아, 원래 없었으니까. 차라리 잘됐어.’    

 

 선재는 세간이 비워진 집을 쓰윽 바라보았다. 잘됐어,하며 웃다가 이내 주저앉아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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