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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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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Jul 10. 2023

16 주연이 이모


 선재는 다행히 휴게소일이 나쁘지 않았다. 매일 각자 다른 얼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선재에게 기쁨이었다. 자신이 그동안 외로움 속에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과의 짧은 대화속에서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선재는 처음에 휴게소 편의점을 맡게 되었는데, 또 볼일이 없을 휴게소 편의점 직원인 자신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 것이 어색했지만 점차 적응이 되었다. 물론 이상한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나를 놓고 도망간 엄마아빠보다 더 이상할까 싶어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같은 방을 쓰는 주연이 이모는 여기서만 20년을 넘게 일했다고 했다. 첫만남부터 아가, 주연이 이모라고 불러부러라, 하며 장군같은 덩치에 큰 목소리로 쩌렁쩌렁 말을 건넸다. 주연이 이모 역시 선재 나이 즈음에 이쪽으로 왔다고 했다. 여기서만 있다보니 돈 쓸 일도 없고 밖에서 사람 만날 일도 없어 남편도 아이도 없이 홀로 살아왔다고.


 “일은 어뗘? 안 힘든가? 나 처음 여기 왔을 때 라면코너 주방이었는디 으디서 왕나방이 날아들어와갖고 놀라는 바람에 아, 그 뜨거운 라면국물을 사방팔방 엎어가꼬 아주 그 가게 대청소를 나가 다 해부렀다니까. 하하하하하....”

 “헤헤헷......”

 “힘든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여기서 제일 오래됐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어린 것이 먼 사정이 있는 줄은 몰라도, 버섯처럼 살아야 대. 있는 듯 없는 듯. 썩은 나무라도 붙잡고 버티고 주변에 먼지라도 잡아먹음서 바득바득 살아야 대. 물론 남한테 피해를 주믄 안되고.”

 “네.”     


 버섯. 선재는 집 앞에 있던 구겨진 벛꽃나무와 버섯들이 생각났다. 명주가 나타나기 전 유일한 친구였던 나무와 버섯. 주연이 이모도 그런 존재가 있었던 것일까?      


 “이모님은 원래 집이 어디세요?”

 “우리집? 경전리든가, 경장리든가. 오메...... 오래돼서 까묵어부렀다잉. 성이 하나 있언디 결혼도 안헌 처녀가 아를 임신해갖고 집을 나감서, 집에 있는 돈되는 것을 모조리 갖고 도망가부렀어. 남자놈이 시켰는가 어쩌게 알고 집문서, 땅문서 할거없이 싹 다. 엄마가 오랫동안 병원에서 목숨만 포도시 붙어 있언디, 성이 도망간 딱 그날 아부지가 엄마 병원 오는 길에 뺑소니 사고로 죽었으. 그 후로 한달 있다가 엄마도 죽고. 나 혼자 된거제이.”

 “아...... 힘드셨겠어요.”

 “어찌냐, 이미 벌어진 일. 살기가 되야도 내가 알아서 히야지. 내가 원래 씩씩해. 선재라고? 이쁘장하게도 생깄네. 귄있는 얼굴이여. 나랑 잘 지내보세.”

 “고맙습니다.”     


 주연이 이모와의 첫 만남은 어쩐지 어렵지 않았다. 선재도 자신이 원래 이렇게 낯을 안 가리는 성격이었던가 하는 생각에 의아했다. 아니면, 자신이 모르던 본모습을 알게 되는 과정일 수도 있었다. 처음 본 이모가 어디 살았는지는 왜 물었을까. 선재는 무의식적이며 자연스러운 자신의 행동에 놀라는 중이었다. 살기 위해, 선재의 내면은 변화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휴가철이 되면, 휴게소는 더 바쁘다. 화려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여행 중에 밥이나 간식을 먹으러 들어오는 사람들은, 들뜨고 약간은 피곤한 얼굴이다. 저쪽에서 선재 또래의 여자아이들 서넛이 재잘거리며 들어선다. 크롭티에 짧은 반바지, 뽀얗게 화장을 하고 한껏 멋을 부린 여자아이들. 시끄럽게도 메뉴를 정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썬글라스와 챙이 큰 모자 등을 벗어 놓는다. 무엇이 저렇게도 재미있을까.     


 선재는 문득 나도 여행을 한 번 가볼까, 생각한다. 저 사람들을 보니 자연스레, 친구 하나 없고 멀리 가본 적도 없이 20대의 중반을 향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기서는 주연이 이모가 챙겨주었지만 그것은 또래끼리 즐기는 그런 즐거움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선재는 지난 몇 년은 생존을 위해 돈을 벌고 모아야 했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저 사람들은, 한창 놀고 싶을 20대 초반의 선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명주, 명주는 잘 있을까? 전화해볼까? 대학에 갔겠지? 인사도 없이 나와서 화나 있을까? 아니야. 나를 잊었을거야. 자신이 없어. 아쉬운대로 주연이 이모한테 물어봐야겠다.’     



     

 “무시당가! 저런 씨부럴놈! 저 놈이 저럴 줄 알았다니까. 느자구없냐, 저것을 왜 몰라부냐. 깝깝허네.”     


 그날 저녁 선재는, 침대에 누워 드라마를 보며 욕을 하고 있는 주연이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 저랑 여행갈래요?”

 “여행? 매급시 먼 여행이여?”

 “그냥요. 사람들 다들 놀러다니느라 바쁘잖아요. 저도 여행가보고 싶어요.”

 “돈 벌기 바쁘담서, 우리 선재가 인자 쪼까 돈도 모이고, 째부리고 댕기고 싶고만?”

 “하핫. 네. 이모, 저랑 같이 가요. 이모도 보면 맨날 휴게소 안에서만 있드만.”

 “그것은 그라지. 으디를 갈라고?”

 “음...... 글쎄요.”

 “같이 가는 것이야 갠춘헌디, 나는 으디 뭐 맛나고 그란거 한나도 몰릉께 거가 다 알아서 혀.”

 “네~!”

 “아야, 잘 생각했어야. 젊은 것이 방거충이마냥 그라고 있으믄 안대. 아무리 없이 살아도 자기 자신한티 꼽꼽하믄 안되아.”     


 선재는 생각에 잠겼다.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어디를 가야할지 몰랐다. 뭘부터 해야할지 몰랐다.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망설이다 검색창에 천천히 ‘바다’를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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