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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Jul 17. 2023

17 바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조금 걸었더니 바다가 나왔다. 뭐가 들었는지 빵빵한 가방을 맨 주연이 이모는 선재보다 더욱 들떠있는 눈치다. 짭짤한 냄새, 습한 공기,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 평일인데도 무슨 일들을 하는건지 생각보다 사람이 꽤 있었다. 술집, 횟집, 편의점, 카페, 기념품샵, 각종 가게들으로 들어찬 바닷가는 어질어질했다. 모래사장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무엇을 파는건지 장사꾼들이 천막아래 즐비해 있었다.


 선재는 살아갈 걱정을 잠시 잊은 채, 이 곳의 분위기를 눈에 담았다. 시끄럽게 모래와 바다를 번갈아가며 뛰어다니는 청년들, 몸매가 좋아 타인의 본능적 눈길을 즐기는 비키니 언니들, 갈매기를 쫓거나 모래를 파며 노는 꼬마들, 파라솔 아래 그저 누워있는 피곤한 어른들. 저렇게 즐기며 사는 거구나. 별것 아닌데, 단지 내가 있는 곳에서 조금 이동했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졌어. 갈매기들은 사람 따위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날아들었다. 바닷바람에 실려온 달고나 냄새는 선재에게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것이 에피타이저가 되었는지 선재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모, 배고프지 않아요?"

 "오메에...... 바닷가 오랜만에도 와분다. 선재 덕분에 바다 구경도 하고 기분 검나게 좋아부러~ 배고프당가? 그라문 밥 묵으야지!"

 "우리 저기 조개구이집 가요. 바다에서는 조개구이나 회 먹는데요."

 "그려~ 우선 배부텀 채우고 구경하자고. 워디 알아놓은데 있다냐? 허긴 쫘악 본께 사방팔방 널린게 가게고마이."  

 "저기에요."


 선재는 후기가 많이 달리고 유명한 가게 말고, 검색했을 때 위에서 세번째 즈음에 있던 별 볼일 없을 듯한 가게로 들어갔다. 누가 상관하는 것도 아닌데 왠지 자신이 없었다. 여행이 처음이라, 유명한 곳에 가면 사람이 많아서 모두 자신을 쳐다볼 것만 같아 생각만 해도 부끄러워서였다.  


 그런 이유로, 다른 가게들에 비해 허름하고 오래되어 글씨가 일부 지워진 간판이 걸린 가게는 선재가 더욱 여행자의 설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선재와 주연이 이모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조개구이와 술을 주문했다. 조개들은 조만간 하나둘씩 물을 머금고 익어갔다. 타악타악, 벌어지는 조개껍데기들을 바라보며 선재는 이모의 것과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입을 열었다.


 "부모님이 도망갔어요. 저만 두고."

 "잉? 먼 소리여, 그게?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두고 도망을 간다냐?"

 "그런 부모도 있나봐요. 근데 괜찮아요. 있을 때도 좋은 부모는 아니었으니까."

 주연이 이모는 슬쩍 눈을 흘기며 말했다.

 "......괜찮은거 맞어? 애기가 애지간치 폭폭했으믄 그런 일을 갖다가 몇 년을 입을 꾹 닫고 있었으까잉. 먼 사정이 있는갑다하고 나도 캐묻지는 않았다만, 짠해죽긋네."  

 "이제 진짜 괜찮아요. 그 때는...... 안 괜찮아서 말하기 싫었던 거에요. 그래도 이모가 저 많이 챙겨주셔서 괜찮아졌어요. 감사해요."

 

 선재는 주연이 이모를 바라보며 방긋 미소를 지었다. 선이 굵어 남자같은 얼굴을 가진 주연이 이모는 어울리지 않게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멀 챙깄냐. 니, 니가 스스로 잘 하드만. 술병 인 내아. 내가 한 잔 따라줄랑께."


 선재와 주연이 이모는 이런저런 시덥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수다를 떨며 식사를 마쳤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아까의 그 달콤한 향을 따라가 달고나 모양도 떼어보고, 기념품샵이라나 소품샵이라나, 쓸데없는 귀여운 물건들을 파는 가게에서 구경도 했다. 비싸서 사지는 못하고 그냥 나와야 했지만 눈이 즐거운 경험이었다. 귀여운 소품들을 보니 전에 명주와 걱정없이 놀았던 그 하루가 생각났다. 그리고 명주가 떠올랐다. 선재는 어느새 가방에 달려있는 하얀 얼굴의 토끼 키링을 만지작거렸다.


 선재는 휴게소에서 일한 이래 처음으로 돈을 벌지 않고 쓰기만 하는 오후를 보냈다. 그러나 선재는 정말 즐거웠다. 살아가는 것은 생존을 위한 일만을 하거나 돈을 벌기만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기가 차고 슬픔으로 얼룩진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런 이유없이 남에게 말하는 순간도 있어야 하고 잠깐 망설이더라도 돈을 써버리는 날도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선재는 인생의 구멍을 하나씩 천천히 채워나갔다.  


  저녁이 되고,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주연이 이모는 피곤하다고 커피를 사오겠다며 잠깐 편의점에 갔다. 선재가 홀로 정류장 벤치에 앉아 버스 요금을 준비하기 위해 가방을 고쳐 메는 순간, 가방에 달려있던 하얀 얼굴의 토끼 키링이 떨어져 굴러갔다. 처음으로 친구에게 받았던, 명주의 선물이었기에 이렇게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선재는 굴러가는 키링을 잡기 위해 눈을 그곳에 고정한 채 뛰어가서 몸을 숙여 잡으려 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키링을 집어들었다. 선재는 키링을 따라 몸을 일으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그 사람을 보았다. 선재는 순간 당황했고, 곧 이어 눈물이 흘렀다.




 "선재야, 이거 투 플러스 원이라고 해가꼬 세 개나 줘불더라. 아야, 뭣허냐? 거기 누구?......"

 선재와 선재 앞의 사람을 유심히 보던 주연이 이모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봉지를 떨어뜨리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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