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바라중독자 Nov 13. 2023

5 기원이 아빠 2

        

 기원이 아빠는 옆동네 건물 짓는 곳에서 청소나 잡일같은 허드렛일을 하며 지냈다. 그러나 결국 며칠 전 그나마도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눈에 띄는 장애라든지, 혹은 자폐처럼 확실한 것이 아닌 경계선 지능장애에 대해 무지했다. 국가에서도 장애로 인정하지 않아 일반인들 사이에서 그저 적응하고 살아야 했다. 겉으로 볼 때는 약간 둔하고 느린 사람처럼 보일 뿐, 일반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기에 더욱 힘들었다. 그러나 일터에서는 장애든, 비장애든, 눈치없고 이해도 빠르지 못한 사람에게 일을 시키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했다.      


 기원이 아빠는 빗자루질 하나에도 여러번 되뇌이고 반복하고 공부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부모없이 자란 기원이 아빠지만 천성이 순하고 착했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게끔 할머니에게 교육을 잘 받았다는 것이다. 경계선 지능이라는 것도, 할머니가 사람들에게 말할 때 꼭 얘기해서 이해를 구하라고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무엇이든 기억이 안 나면, 사소한 것도 적어놓고 기억이 날 때까지 백번이고 천번이고 반복하라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 하라고, 할머니가 없어도 혼자서 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최근, 기원이 아빠에게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일도 못하게 되고, 할머니도 오래전부터 앓아온 지병 때문에 한 달 전 돌아가셨다. 기원이와 단둘이 남게될 기원이 아빠의 손에,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은행에서 돈찾는 방법이 꼼꼼하게 적인 종이와 함께 통장을 하나 손에 쥐어주셨다. 장례도 치르지 말라고 했다. 모르면 물어보고, 계속 쫓겨나더라도 계속 일을 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 돈은 정말 배고플 때, 진짜 돈이 없어 막막할 때 꺼내쓰라고 했다. 기원이를 혼자두거나 굶기면 안된다고 했다. 기원이 키우는거, 잘 모르겠으면 기원이랑 비슷한 또래 애들 키우는 동네 아줌마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너도 어린데, 너도 어린데, 라고 할머니는 말했었다.      


 기원이 아빠는 뭘해야할지 몰라 동네를 돌아다녔다. 어느 날, 동네에 채소가게가 생겼다. 가게 공사할 때 지나면서 보니 딱 기원이만한 남자애가 가게를 들락날락 한다. 가까이 가보니 사람을 구한다고 써있었다. 할머니가 말한대로 비슷한 남자애가 있으니까 일하면서 기원이 키우는 일도 물어보면 될 것 같았다. 다음날 새벽부터 졸린 기원이를 깨워 슈퍼에 갔다. 기원이를 굶기면 안되니까 빵하고 우유를 샀다. 졸음에 겨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기원이에게 빵을 한 입 먹여보지만 안 먹겠다고 한다. 빵과 우유를 한 손에 쥐고, 아이의 손을 꼭 잡은 기원이 아빠는 채소가게 앞을 얼쩡거린다.          





  

 아저씨가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다. 기원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정례네 채소가게로 오면, 아저씨가 무나 과일박스를 옮기고 있었다. 점심이 다 되어 가는 시간까지 아저씨는 오지 않는다. 사장님이 당황한 것 같다. 여기저기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정례는 정신이 없어보인다.      

 “사, 사장님, 안녕하세요. 무, 무슨 일 있으세요?”     


 정례는 기원이 아빠를 힐끗 보더니 짜증이 가득 실린 얼굴로 통화를 한다.


 “네, 여보세요? 창수아저씨 어제 갔었죠? 우리 직원, 그 아저씨 있잖아. 통통하고 키 작고. 응, 응. 그래. 수금해갔어요? 얼마나? 하...... 알겠어요.”

 전화를 끊은 정례는 어디론가 또 전화를 건다.

 “응, 나야. 어제 창수아저씨 갔었어? 뭐? 얼마나? 아닛, 하...... 나한테 전화 한 번 해보고 주지, 일단 알았어요.”


 정례는 전화를 끊고 고개를 숙이며 욕을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인간! 아이고, 씨부럴!”

 곧 이어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정례는 급히 금고 서랍을 열어본다. 

 “아주 개새끼였네. 씨부럴 놈! 아이고 나 증말, 어쩐디야! 어째!!”     


 정례는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기원이 아빠는 가만히 보고 있었다. 손님이 왔다. 엉엉 울고 있는 정례를 보고 손님은 당황했다. 기원이 아빠는 손님에게 물었다. 그래야할 것 같았다. 할머니가 있었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을 것 같았다.

     

 “뭐, 뭐 드릴까요?”

 “아, 저기, 다음에 올께요.”

 “괘, 괜찮아요. 배 아파서 그, 그래요. 뭐 드릴까요?”

 “미나리 한단만.”

 “미, 미나리, 미나리......”

 “저기, 이거에요. 이거 얼마에요?”

 “아, 아. 네, 네. 아마, 사, 삼천원......”

 “여기, 그럼...... 계세요.”

 “아, 안녕히 가세요.”     


 기원이 아빠는 손님에게서 받은 삼천원을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정례에게 두손으로 슬그머니 내민다. 정례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기원이 아빠를 한참 쳐다보다 그 돈을 받아든다. 정례는 소매끝으로 콧물을 쓰윽 닦고서 기원이 아빠에게 말한다.      


 “기원이 아빠 장사도 할 줄 아네?”

 “죄송해요. 제, 제가 마음대로 해서요.”

 “근디 미나리 오천원이야.”

 “아, 아, 오, 오천원이면, 삼천원이면, 빼기하며는, 그......삼에서 오, 오를 빼고, 영...... 삼천원, 아니 이천원 제가 드, 드릴께요. 죄송하, 합니다.”


 정례는 순수한 기원이 아빠의 모습에 젖은 얼굴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됐어요. 이천원 달라고 얘기한 것 아니여. 그리고 생각보다 계산도 잘 하네? 잘했어요.”

 “고, 고맙습니다. 그, 근데 사장님, 우, 울다가 웃으면, 그...... 곤란한 이, 일이 생길지도 모, 몰라요.”

 “기원이 아빠 농담도 할 줄 알아?”

 “죄, 죄송해요. 웃으시니까 조, 좋아요.”

 “봐서 알겠지만, 오늘부터 사람 필요한디 기원이 아빠가 우리 가게에서 일해줄거에요?”

 “네, 네?”

 “우리 가게에서 일하고 싶댔잖아. 오늘부터 일해요. 그동안 우리 가게 와서 일했던 것도 쳐줄테니. 모른척해서 미안해요.”

 “지, 진짜요?”

 “그럼, 진짜지.”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께요!”     

매거진의 이전글 4 기원이 아빠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