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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Mar 06. 2023

4 현정

● [버섯]은 소설입니다. 글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지명, 배경 등은 허구이므로 실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주 1회 업데이트됩니다.






 ‘저 여자는 담배를 저렇게 피워대고 괜찮나? 푸우...... 문을 못 열어놓겠네.’      


 현정은 환기를 시키며 청소를 하고 싶었다. 명주가 학교에 가고 조용한 아침, 현정은 아침약을 챙겨 먹고 부엌을 치운다. 이사온 후로 정리도 할 겸 오늘은 대청소를 좀 해볼까 했는데 저 여자 때문에 문을 다 열고 청소하기는 이미 글러먹은 것 같다. 처음엔 저 집에 불이 난 줄 알고 신고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저 여자가 내 바지에 가래를 뱉은 날 이후로 저 집의 연기는 단지 담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정은 집 안에서 담배를 얼마나 피우면 밖에까지 연기가 저렇게 넘치는지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현정이 전에 살던 에코트리아파트는 다른 아파트를 비롯해 여러개의 단지가 모여있었다. 다양한 주민들이 어울려 살았고,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었다. 슬리퍼를 신고 집 앞에만 나가도 대형마트, 관공서, 도서관 등 질 높은 삶을 살기 위한 모든 것들이 완벽히 갖추어져 있었다. 현정의 아파트 단지 내에는 외부에서 대관을 할 정도로 꽤나 큰 체육관도 있었다. 광장의 트랙을 따라 달리기를 하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사람들, 그 활기찬 모습은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었고,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들을 바라보면 명주가 아기일 때가 생각나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곤 했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근처에 입소문이 난 높고 긴 미끄럼틀과 어른이 타도 재미있는 짚라인 등 다양한 놀이기구가 있었다. 그 덕분에 아파트 주민뿐만 아니라 동네 꼬마들도 많이 와서 놀곤 했는데, 항상 북적북적한 놀이터의 분위기가 현정은 좋았다. 해가 좋았던 어느 날, 현정은 오전에 명주를 데리고 그네를 태우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어김없이 줄이 긴 짚라인 앞에서 아이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야! 비켜. 내가 먼저 탈거라고! 넌 여기 살지도 않잖아!”

 “나도 여기 살아. 그리고 너보다 먼저 서 있었어.”

 “너 몇 동 사는데?

 “401동”

 “야. 거기는 임대동이잖아. 임대는 임대동 놀이터에서 놀아야지 여기까지 왜 와!”

 “임대가 뭔데?”

 “너네 집 거지라고. 저리 비켜!”

 “우리집 거지 아니야!”

 “뭐래~ 우리 엄마가 410동까지는 거지라고 했거든!”

 “우리집 거지 아니라고! 그리고 내가 먼저 서있었다고! 하아앙.......끅끅 엄마아.......”     


 현정은 놀라고 기가 막혔다. 기껏해야 9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들이, 사는 집으로 친구를 놀이에서 차별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전에 정수기 아줌마에게서 초등학생이 친구에게 ‘빌거, 휴거’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 그게 뭔데요?

 - 빌라거지, 휴먼시아거지요. 요즘 애들 진짜 보통 아니죠? 저도 깜짝 놀랐다니까요.

 - 어휴...... 애들이 그런 얘기를 하다니, 슬프네요.     

 그 때에도 적잖이 충격이었지만 내 눈 앞에서 이런 일이 펼쳐지다니. 현정은 씁쓸해하며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갔다.


 “아가, 울지 말거라. 얘, 사람들은 각자 자기집이 제일 좋은 집인거야. 친구한테 거지라고 하면 못 써.”

 “우리 엄마가 임대동 애들하고 놀지 말랬어요. 그리고 임대동 애하고는 친구 안 하거든요? 아줌마도 임대 살아요? 나는 502동 사는데.”


 우리집 너희집보다 넓거든.      


 “누가 어디살든 그건 중요한게 아니야. 남한테 거지라는 말하고 그러면 안돼. 네가 얘한테  사과했으면 좋겠구나.”

 “내가 사과를 왜 해요? 저리 비켜요. 나 이거 타야하니까.”

 “사과하고 타렴.”

 “아!!! 비키라고요!!!!”     


 아이는 빼액 소리를 질렀다. 이 아이는 어른이 무섭지 않구나. 아이의 소리를 듣고 그때까지 큰소리로 통화하느라 바빴던 아이의 엄마가 뛰어왔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이 아줌마가 자꾸 얘한테 사과하래! 나 잘못한거 없는데에!”

 “이거보세요. 당신이 뭔데 우리애한테 사과하라고 해요?”     

 현정은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아이의 귀를 막고 작게 이야기했다.     

 “댁의 아드님이 이 아이를 임대동 산다고 무시하고 거지라고 하더군요. 새치기도 하려고 했고요. 그럼 사과해야지요.”

 “당신이 얘네 엄마라도 돼요? 그리고 임대동 살면 거지 맞구만 그게 뭐가 잘못됐어요?”

 “이보세요!! 애 앞에서 무슨 말이 그래요?”     


 현정은 안고 있던 아이를 더욱 세게 끌어안아 귀를 단단히  막았다.


 “애 앞이건 어른 앞이건 임대동 살면 못 사는거 맞잖아요? 그게 우리 애 잘못이에요? 부모가 얼마나 게으르면 그런데를 살겠어요? 임대동에서 왜 여기까지 와서 놀이터를 이용해요? 그것부터가 잘못된거 아니에요? 사실 임대동 애들 진작에 못 오게 했어야 했어요!”

 “그만해요.”

 “얘네들 때문에 놀이터도 더러워지는 것 같고......”

 “그만하라구요! 아이가 듣잖아요!”

 “이 여자가 어디서 소리를 질러어! 우리 남편이 누군지 알아요? 나한테 이렇게 하면 안될텐데요!!”

 “휴...... 그만합시다. 아가, 오늘은 집에 돌아가고 다음에 놀러와. 알았지? 아줌마가 소란 일으켜서 미안해.”

 “네......흐흑......”     


 현정은 어느새 와서 슬며시 손을 잡고 있던 명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여자는 현정의 뒷통수에 대고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거 봐요! 사람 얘기하고 있는데 어디 가요? 진짜 어이 없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애가 뭘 보고 배우겠어요? 임대동 애들 감싸면 뭐 성인군자라도 되는 줄 알아요? 어릴 때부터 다 자기 수준에 맞게 사는거에요!”


 참 시끄럽네.     


 “명주야. 미안해. 놀이터는 다음에 또 오자. 저 아줌마처럼 친구가 작은 집 산다고 짚라인 못 타게 하고 그럼 안되는거 알지?”

 “응, 알지. 그건 말도 안 되지. 나 다 알아 엄마. 엄마 잘했어.”

 “그래. 고마워. 우리 명주는 똑똑해서 다 알지. 저 아줌마는 11살 먹은 명주보다 더 모른다. 그치?”

 “엉. 엄마 우리 김치볶음밥 해먹자.”

 “그래, 좋아. 사과도 깎아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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