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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Mar 13. 2023

5 관심

     



 어쩌고저쩌고조잘조잘이러쿵저러쿵......

 하...... 얘 진짜 말 많네. 


 선재는 아침부터 대답하느라 바쁘다. 명주는 쉬는 시간마다 뭘 그리 궁금한게 많은 건지 입을 쉬지 않는다. 선재는 분명 명주가 싫었는데, 이상하게도 명주의 물음에 자꾸 대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내가 넘어지는 바람에 얼굴로 쫘악~ 뿌려졌다니까. 헤헤헤헷. 선재야, 너 김치볶음밥 좋아해? 나는 엄청 좋아해.”

 “먹어본 적 없어.”

 “먹어본 적이 없다고? 어떻게 그 흔한 김뽁을 안 먹어봐?”

 “우리집에 밥통도 없고 김치도 없어. 급식에서도 안 나오던데.”

 “하하하하하~ 야 너 농담하지마. 밥통하고 김치 없는 집이 어딨어?”

 “진짜 없어. 밥통만 없는게 아니라 왠만한 건 다 없어.”

 “뭐가 없는데?”

 “너무 많은데.”

 “그럼 뭐가 있는데?”

 “낡은 것들이랑 바퀴벌레?”

 “너 그럼 바퀴벌레를 때려잡을 수 있어?”

 “그럼. 돌돌 만 신문지만 있으면 돼. 그깟게 뭐라고.”

 “와~ 너 진짜 대단하다~! 최고야~! 난 바퀴벌레 완전 소름이라. 너 진짜 브레이브걸이다!”     


 바퀴벌레를 잡을 수 있다고 칭찬을 받네? 선재는 당황했다. 이런걸로도 칭찬을 받는건가? 

 나, 다 없다고. 

 나, 못 산다고. 

 나 없는 애라고 하는 말은 못 들은건가?     


 “야, 오늘 우리집 가서 김치볶음밥 먹을래? 엄마한테 울트라브레이브걸과 함께 먹을 김뽁 준비해달라고 얘기해놓을께. 나 이번주는 학원 안 가.”

 “됐어.”

 “야아~ 왜에~ 같이 가자. 내가 오늘 너에게 천상의 김뽁맛을 보여줄게. 우리 엄마 김치볶음밥 완전 잘 해.”

 “......”

 “가자~ 응? 멀지도 않고, 바로 옆집이잖아. 응?”

 “......알았어.”

 “예에~!!!!”     


 선재는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비루한 집안형편에 친구하나 제대로 사귀어 보지 않았던 선재는 그깟 벌레잡기에 칭찬받는 일도, 누군가의 집에 식사초대를 받는 일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있으면 돈을 써야 할텐데 교복조차 학교측에 기부된 것을 가져다 입었던 선재는 항상 돈이 없었다. 친구가 생겨 집에 놀러가면 집안형편이나 부모님에 대해 말해야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는 담배냄새랑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놀림을 받는 일은 흔했다. 사람들은, 솔직하고 말없는 선재를 자기들 마음대로 평가했고, 그것들을 눈에 고스란히 담아 선재를 쳐다보았다. 주로 동정 또는 자신들과 다름에 대한 불편함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어정쩡한 상황에서 선재는 스스로 멀어져 있었다.      


 그런데 서명주에게서는 그런 눈빛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명주의 땡글땡글한 눈은 궁금한게 많아서 못 참겠다는 듯 했고, 옆에 있자면 통통한 손으로 거리낌없이 선재의 팔짱을 끼곤 했다. 그래서인지 선재는 자신도 모르게 서명주에게 이말저말 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선재를 초대한 - 선재가 싫어하는 - 서명주는 초대에 응한 선재의 대답을 듣고 꽤나 신나 있었다. 선재는 오늘 마침 저녁을 먹지 않고 하교하는 날이었기에 명주네 집에서 저녁을 때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명주는 사람을 집에 초대하는 일에 신이 났는데, 선재는 끼니를 때울 수 있다는 일에 안도했다.


 철컥, 삐리릿. 명주가 뭔가를 갖다가 번호판에 대니 굳게 닫혔던 1층 현관의 문이 열렸다. 선재는 신기했다. 저건 작은 로봇인가. 밖에서 바라보던 조명의 꽃잎들이 이번에는 선재에게도 날렸다. 계단에 발을 올릴 때마다 하얀 빛이 카펫 깔리듯 선재를 에스코트했다. 선재는 구름위를 걷는 것 같았다. 기분이 들떠, 옆에서 명주가 계속 재잘거렸지만 선재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선재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명주의 집에 들어와 있었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듯 하얗고 고급스럽게 반짝이는 벽지, 밝고 희한한 모양의 조명들, 구름처럼 폭신해 보이는 소파와 커다란 TV, 그릇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건지 깨끗하고 환한 주방이 선재의 눈에 파도처럼 들어왔다. 세련되고 하얀 광택의 대리석식탁 위에는 계란후라이가 새침하게 올려진, 김이 모락모락나는 두 그릇의 빨간 김치볶음밥이 접시에 정갈하게 담겨져 있었다.     


 선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현정에게 인사를 했다.

 “아......안녕......하세요......”

 “명주 친구 선재구나~ 얘기 많이 들었어. 선재야, 정말 반갑다. 우리 옆집에 산다며? 명주 짝꿍인데 집도 가까워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선재는 인사도 잘 하고, 눈도 예쁘고 엄청 날씬하네. 연예인같아, 너무 예쁘다~! 명주는 한다리 하는데. 하하핫. 식기 전에 어서들 먹어.” 

 “아, 엄마! 선재한테까지 다리얘기야! 창피하잖아~ 하하하핫!”     


 내가 눈이 예쁜가?

 내가 연예인처럼 날씬했나?

 내가 인사를 잘 했나?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선재는 관심과 칭찬받는 일이 민망하긴 하지만 썩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별거 아닌 일에도 칭찬을 들으니 마음속이 몰캉몰캉해진다. 진한색 물감이 많은 양의 맑은 물에서 보다 청량하게 풀어지는 느낌이다. 말랑하고, 흐물텅거리고, 가슴이 콩닥거리고, 다시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눈 앞에는 선재만을 위한 분홍의 벚꽃잎이 날리는 것 같았으며, 아주 어릴 때 딱 하나 있었던 부들부들한 솜인형에 얼굴을 부비던 그 느낌이 느껴지는 듯 했다.     


 처음보다 씩씩해진 목소리로 잘 먹겠습니다, 하며 선재는 숟가락 가득 김치볶음밥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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