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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Oct 21. 2019

당신도 버티고 있나요?

영화 [버티고] 리뷰

요즘 유명한 관광지에 필수적으로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투명 다리입니다. 한국에서도 유리 다리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전망대가 상당히 많습니다. 바닥을 투명하게 만들어서, 다리 밑이 그대로 보이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다리 위를 지나갈 수 있는 이유는 튼튼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 몇 명이 올라간다고 부서진다면, 공개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죠.


신기하게도 이런 관광지에 대해서 왜 우리는 신뢰를 가지고 있을까요? 정작 가까운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누군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를 사람이 만든 이 다리의 유리가 튼튼할 것이라는 것은 왜 믿는 것일까요? 


영화 [버티고]의 제목은 영화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보이는 그대로 느껴지는 의미인 버틴다는 의미와 영어로 표현된 의미인 ‘현기증’ 그리고 영화 속 서영이 자주 가는 술집의 이름입니다. 이렇게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버티고’라는 단어를 영화 속에서는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 이용하고 있는지 생각을 해보면 이 영화의 의미가 조금 더 와 닿을 것입니다. 




투명한 벽


다른 영화보다 이 영화에는 생각보다 많은 투명한 벽이 등장합니다. 이는 유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서영이 일을 하고 있는 빌딩이 가장 대표적으로 볼 수 있죠. 요즘 웬만한 건물들은 유리로 외관을 처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영이 있는 건물도 유리로 되어 있죠. 그리고 이러한 건물에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외관 청소를 필요로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염이 적을 수 있으나, 안에서 봤을 때는 오염 때문에 시야가 흐려질 수 있는 것이죠. 아직까지 건물 외관을 청소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옥상에서부터 줄을 타고 내려와야 하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이로 인해서 관우의 직업인 건물 외벽 청소를 하는 인물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죠.


유리로 되어 있는 건물은 예뻐 보일 수는 있으나 밖과 안이 모두 보인다는 단점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 외벽 청소를 한다는 방송에 블라인드를 치는 행동이 나옵니다. 종종 그렇기 않은 곳에서 관우는 서영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관우가 서영을 바라보는 장면의 대부분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 바라봅니다. 그렇지 않은 장면은 그녀의 뒤에서 바라보는 인물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전 [현기증]을 연출한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는 관음적인 시선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관우가 서영을 훔쳐본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나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 누군가를 지켜보는 시선이 하나 더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CCTV의 존재입니다. 이 CCTV가 스치듯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영화는 이런 CCTV와 관우를 동일 선상에 두고 있습니다. 어떤 특정 의도를 가지고, 특정 인물을 따라가며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관우는 자신의 일을 하던 중에 혹은 우연히 그녀를 마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관우의 존재는 영화의 결말에 그녀에게 어떤 작용을 일으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영화의 의도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CCTV와 관우, 그리고 투명한 벽. 그리고 밖이 보이는 휴게실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일들. 사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은 모든 사람이 알게 됩니다. 결국 이 회사라는 공간은 모든 것이 노출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즉, 나의 공간이라는 것이 없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서영이 혼자 있을 만한 곳을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찾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찾은 곳은 그녀의 감정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해가 쨍쨍한 곳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 노출되지 않은 곳으로 찾아가고, 가장 노출되는 것이 아무도 없는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서점의 입구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있는지도 모르는 관우의 모습 또한 그런 모습과 비슷한 모습일 것입니다.




거리와 벽


극 중 서영과 사랑하는 사이로 등장하는 진수는 영화의 초반에는 상당히 좋은 사이로 등장합니다. 서영이 진수에게 많은 부분 의지를 하고 있던 것으로 보였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특히나 어느 시점 이후에는 두 사람이 메신저를 통해서만 대화를 하고, 직접적으로 대화를 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도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지도록 연출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관우와 서영은 물리적으로는 가까운 거리를 보여줍니다. 물론, 이런 사실에 대해서 서영은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객과 관우만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죠. 하지만, 관우와 서영에게는 앞서 이야기한 투명한 벽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관객과 그들의 사이에서도 그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관우와 그의 누나인 관순도 그럴 것입니다. 관순이 하는 인터넷 방송이라는 것도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많은 부분 일맥상통합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실제로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합니다.


서영은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는 인물입니다. 대부분 그녀의 대화는 전화나 메신저로 이뤄집니다. 회사 동료인 예담과는 친밀한 사이로 그려지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들어주기만 합니다. 애초에 서영은 비밀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서영은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거리를 좁힐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진수가 떠나게 되면서 그녀는 더더욱 위태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그녀의 질병입니다. 




현기증


이 영화의 제목인 ‘버티고’의 의미인 현기증이라는 의미로 이 영화를 이야기해볼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현기증을 유발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고층 빌딩, 서영의 질병,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의 위치, 남자 친구와의 관계 등 모두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하던 마지막 희망인 진수가 떠나고 그녀는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그녀의 질환입니다. 영화 속에서 정확한 병명을 이야기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질환은 그녀의 상태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귀의 이상으로 평행 기관에 이상이 생기고 이러한 이상이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것이죠.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준 진수가 떠나고 그녀는 중심을 잡고 서있을 힘도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 유리 벽 사이에서 꺼내 준 인물이 관우입니다. 


사실 관우는 물리적으로 그녀를 구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서영이 그의 존재를 알고, 그를 찾아간 것이죠. 그녀는 드디어 유리 벽 밖에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맞이한 이 영화의 결말은 상당히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상당히 직관적으로 영화의 주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쉽게 아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결말이 너무 직관적이어서 조금은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그녀가 바란 것은 큰 것이 아닙니다. 그저, ‘힘내요’와 ‘괜찮아요’ 같은 짧은 위로였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녀는 이러한 대사로 인해서 감정적인 동요를 보입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을 합니다.


보이지 않은 벽이라는 것은 우리를 막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는 맨 처음에 언급했던 유리 다리와 같은 작용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영화 속 이야기처럼 그녀도 모르게 안전장치가 되어 주는 존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믿음 혹은 확인을 해봐야 알 수 있죠. 우리가 유리 다리 위에서 발을 굴러보고 튼튼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여러 영화를 보면서 매번 하는 생각은 영화의 이야기 이후 영화 속 주인공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입니다. 매번 모든 영화에서 대해서 예상을 해보지만, 항상 좋은 결말 혹은 확신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서영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과연 그녀의 현기증은 치료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오랜 버팀 속에서 벗어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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