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딸공] 감 떨어지는 이야기
어릴 때 살던 주택의 집주소를 정확히 기억한다. 기억력이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라 하도 여러 번, 반복해서 학습시켰던 탓이다. 어디서든 길을 잃으면 어른한테 가서 주소를 말해주면 된다고 했다. 구구단처럼 리듬을 붙여 틈만 나면 연습한 집 주소,
‘대구직할시 동구 효목1동 000 다시 00번지 살아요.’
노래처럼 외워둔 주소는 꽤 쓸데가 있었다. 엄마 없이 외출을 시작한 게 몇 살 때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네발자전거를 타고 효목시장에 갔다가 호떡 굽는 아주머니 옆에 달라붙어 살짝 탔거나 잘못 구워진 호떡을 얻어먹던 기억이 일곱 살 즈음인 걸 보면, 그 시절 유아들의 외출은 지금보다 꽤 일찍, 꽤 자유로웠던 것 같다. 저녁 먹자는 엄마들의 외침에 아이들이 하나 둘씩 사라질 때까지, 골목길은 홀로 놀러 나온 자유로운 아이들로 가득했으니까.
유치원 소풍 때, 줄지어 그네를 타다가 딱 내 차례가 되자마자 이제 그만 가야한다는 선생님 말에 혼자 마음이 상한 날이었다. 어차피 자주 다니던 길, 다 아는 길이니까 난 집에 가버릴 거라며 씩씩대고 돌아 나온 여섯 살의 나. 그런데 몇 블록을 걷다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졌다. 분명히 아는 길인데 왜 집에 못 가겠지?
‘할머니! 저 엄마한테 전화 좀 해주세요! 하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지. 세상에, 길을 잃어버렸다 잖아! 길을 잃었으면 울 텐데 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집 주소랑 전화번호를 대면서 엄마한테 전화해달라고 해서, 내가 데리고 들어왔어. 아유 세상에! 무슨 애가 울지도 않고!’
길가는 할머니를 붙잡고 엄마한테 전화해달라고 했던 건 사실이었다. 내가 그 때 안 울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그 할머니네 집이 ‘빨간 비행선’이라는 이름의 예쁜 경양식집 2층이었다는 것과,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세련된 갈색유리접시에 할머니가 담아준 하얀 유가 카라멜이 정말 맛있었다는 것뿐이다.
후에 엄마는, 평상에 앉아 우산을 꿰매며 몇 번이고 이 얘길 했다. 엄마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복원될 때마다 할머니의 멘트는 조금씩 더 길어지고 디테일해졌다. 여섯 살짜리가 삐졌다고 혼자서 나와 버리다니 어릴 때부터 성질이 정말 더러웠다는 엄마의 감상평은 유가 카라멜의 댓가치고 지나치게 오래가긴 했지만. 하얀 비닐에 담긴 유가 카라멜을 떠올릴 때마다 예쁜 갈색접시와 빨간 비행선이 함께 떠올랐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똑똑히 외우고 있으면 겁낼 필요 없다는 자신감도 내 마음속에 함께 떠올랐다. 어른이란, 아이들을 돕는 존재니까. 단순하게 구성된 세계였다.
오늘 2학년 둘째의 원격학습 학습꾸러미,
멈추고 뭘 생각해야 하지? 아, 이름, 가족의 전화번호!
그런데 누구한테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 어른? 경찰?
앞 문장은 웬만큼 채워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OO와 함께 있는 OOOO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학습꾸러미에 링크된 아이쿠 영상을 다 보고서야 비로소 정답을 알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아주머니’
세상에, 너무나도 현명하고 현실적인 학습 자료였다. 아이와 함께 있는 아주머니라면 길을 잃은 아이를 도와주지 않을 리 없고, 통계적으로 충분히 안전하다고 보아도 좋을 집단이기도 하니까. 경찰보다 길에서 마주칠 확률도 훨씬 높겠지. 그런데 왜 마음이 씁쓸한 거지. 나는 꽤 자주 아이와 함께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으로 길을 가는데, 길을 잃은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엄마 전화번호 몇번이니? 엄마가 낯선 사람에게 번호 알려주지 말랬어요.
집은 어디니? 개인정보예요.
엄마 기다리는 동안 카라멜 먹을래? 마스크 벗으면 안 돼요. 낯선 사람이 준 거 먹지 말랬어요.
설마 이러진 않겠지. 왠지 비뚤어진 마음으로 상상을 한다. 답을 못 맞춰서 비뚤어진 건 아니다. 그냥 오늘 둘째의 학습꾸러미는, 현실 감각이 한참 떨어지는 나에게 좀 어려웠다.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고 나는 단지 유가 카라멜이 먹고 싶을 뿐, 그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