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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공 Jul 17. 2020

엄마의 제사

14주기 엄마의 제사를 지내고,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왔으니, 어떻게 죽는지 모르고 또 죽을 것이다. 도중에 가슴이 터져 죽어버리지 않은 것은 어린 자식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와서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먼저 죽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애도에서 다음 애도의 웅덩이로 텀벙터벙 걸으면서도 다 놓아버리지 않은 것은, 내가 먼저 죽은 사람들의 기록관이어서였다. 남은 사람이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까. 어떤 의미로는 친구들에게 져 술래가 된 것이다. 편을 먹고 내게 미룬 채 먼저들 가버렸다. 

『시선으로부터,(정세랑)』          



믿고 읽는 정세랑 작가의 신간이라 고민 없이 집어 든 책을 바빠서 미루고 미루다,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게 하필 내 엄마의 제사가 있는 주였다. 평소 제사 따위는 지내지 않던 집에서 10주기를 맞아 처음으로 시도한다는 엄마의 제사, 그것도 하와이에서, 라는 처음 두어 장 전개에 이미 나는 책을 내려놓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심시선으로부터 뻗어나온’ 다소 복잡한 가족관계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애쓰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자극 없는 공감으로 다가왔다. 역시 정세랑. 

          

어제는 엄마의 14주기 제사였다.      


처음엔 우리도 남들처럼 전을 굽고 나물을 무치고 생선 대가리의 방향까지 심혈을 기울여가며 상을 차려냈지만, 매년 간단히, 간단히를 외치다가, 아예 4~5년 전부터는 다과상으로 방식을 바꿔버렸다. 퇴근하고 오빠네 가서 제삿상을 물리면 이미 오밤중이라 너무 많은 음식이 필요치 않다는 게 이유였지만, 사실 내 엄마 제삿상에 나보다 새언니가 더 긴 시간 고민하고 정성을 들이는 게 미안해서, 이게 제일 컸던 것 같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저녁은 맛있는 식당에 가서 먹고 오빠네 집에서 과일과 디저트를 놓고 제사 후 티타임. 근본 없는 이 제사 방식이 딱 밸런스가 맞는 느낌이다. 엄마는 제사 음식 안 좋아하실거야!라며.     


사실 간단히,라고 하지만 직접 마카롱과 마들렌, 파이를 굽는 새언니를 생각하면 과일만 덜렁 사서 가는 나는 여전히 날로 먹고 있다. 향 피울 거야? 젓가락보단 포크가 맞겠지? 문은 열어야 돼, 닫아야 돼? 근본 없는 제삿상 앞에서 근본을 찾아가며 우린 몇 번이나 큭큭 웃음을 터뜨린다. 엄마의 사진을 앞에 놓고 절을 하는 방식 또한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냥 절도 하지 말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나에게 엄마는 마주 보고 웃는 사람이어야지, 절을 받는 사람은 아니라서. 어색한 자세로 몇 번이나 절을 하다 보면 엄마가 ‘야 니들 지금 뭐하냐!’하고 막 면박을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기묘한 제삿상 앞에서 우리 남매는 몇번이나 툭툭 터지는 웃음을 참지 않고 터뜨린다. 그래, 우리가 좀 정상이 아닌 건 맞다. 엄마 제삿상 앞에서 픽픽 웃으며 애도하다니.      


엄마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 엄마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툭 터지는 눈물의 대상이다. 밤 껍데기를 까려고 물에 담가뒀다가 물이 갈색으로 변한 걸 본 순간이나, 유자차를 다 마시고 뜨거운 물 한 번 더 부어 우려먹으며 역시 재탕은 맛이 싱겁네 하고 생각하는 순간 또는, 파쇄석이 잔뜩 부어진 캠핑장 사이트 구석에서 쑥 더미를 발견한 순간들이 그렇다. 하지만 잘 차려진 제삿상 앞에서 엄마 사진에 절하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 낯설다. 일부러라도 그 앞에선 진지하고 싶지 않은, 사춘기도 아닌데 괜히 삐딱한 심술. 14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엄마가 사진 속에 앉아 절받는 사람 말고 여전히 삶의 순간들에 툭툭 참견해주는 사람이길 바라고 있나 보다.      


하지만 나는 엄마 사진을 앞에 놓고 마음껏 즐거울 수 있는 우리가 참 좋다. 그렇게 공부 안해서 큰일이라고 엄마가 걱정하던 오빠도 이제 적당히 철이 들어서 밥값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균형감각이 나쁘지 않은 어른으로 자랐다. 잘 지낸다. 제사라고 딱히 진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맛있는 밥 사먹고 들어와서 밥보다 칼로리가 조금 더 나갈 달달한 거 먹으며 엄마 얘기를 하고, 칼로리에 대한 죄책감은 0kcal의 캐모마일 티 한잔으로 씻어버리면 적당한 것을. 내년부터는 날짜도 주말로 옮겨볼까, 우리 집과 오빠네 번갈아가며 지낼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심시선 여사네 제사처럼 근사하고 세련된 방식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엄마를 추모하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꽤 괜찮은 제사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홍동백서의 안부가 걱정되어 자꾸 전화를 걸어오는 아빠에겐 모든 게 비밀이다. 남매간의 우애를 평생 강조하신 분이니, 우리끼리의 의리를 다지는 방법으로 이해해 주실거야. 한 50년 뒤쯤엔.       


14주기 제사를 마치며. 

엄마, 내년에 또 만나요. 그때까지 안녕.           


음복이라 쓰고 티타임이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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