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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Sep 16. 2021

아이가 다쳤다.

그런데 내 상태가 별로다.

큰 동심이가 전화를 했다. 셔틀 잘 탔다고 전화오기엔 이른 시각. 끙끙대며 말한다. 발목을 다쳤는데 걸을 수가 없다고. 곧장 병원 갈 채비를 해서 아이를 차에 태워, 퇴근 차량들로 꽉 막힌 도로에 합류한다. 울트라캡쑝짱 걱정병 환자인 아이는 별의별 상상을 하며 호들갑을 떤다. 원조 걱정병 환자인 엄마는 운전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그런 아이의 불안을 잠재우려 노력한다.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했다. 내일 진료과에서 외래로 다시 한번 살펴볼 예정이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동심이 생활에 제약이 좀 생길 거고, 내가 도와줘야 할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최근 큰 동심이가 여러 군데 아팠다. 매일 같이 챙겨야 할 약이 몇 가지인지 모르겠다. 기록을 남겨야 하는 것도 있다. 예후가 좋지 않을 경우 향후 병원에서 취할 조치에 대해 의사 선생님이 해 준 얘기가 아직 날 긴장케 하는 나날이었다. 거기에 부상이 보태졌다.  


사실 아이는 괜찮아진 것 같다. 응급실 어귀에서 우리는 어떤 곤충을 발견했다. 청록빛 똥파리 글로우를 영롱하게 발산하는. 내 허리를 두 팔로 껴안고 절뚝거리던 아이가 말한다. 어? 엄마! 이거 길앞잡이야! 오, 실제로 본 건 처음인데. 길앞잡이야, 여기 위험하다. 얼른 딴 데로 가라~. 진료받으면서는 선생님께 속사포 랩을 쏟아낸다. 주사 맞나요? 제가 피검사는 잘하는데 주사는 무서워하거든요. 대신 피검사를 하면 안 될까요? 이러면 신발은 어떻게 신나요? 아, 잠깐만요. 아, 안돼요. 악, 아파요. 그리고 집에 와서는 작은 동심이에게 반깁스를 뽐낸다. 야, 이무무. 이게 뭐게? 이거 돌덩이 같아. 엄청 딱딱해. 오빠 내일부터 신발도 짝짝이로 신어야 돼. 너 여기에 맞으면 엄청 아프다? 


문제는 나다. 요즘 어둠의 기운이 내 몸의 반쯤 붙들고 있다. 이유를 모르겠다. 보통은 아이가 아플 때만큼은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런데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보글거린다. 아이가 아프니 당연히 걱정이 앞선다. 아이가 다친 게 내 탓인 것 같아 자책을 한다. 그 와중에 챙겨야 할 게 늘어 부담스럽다. 가열차게 서막을 연 혼자만의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려 속상하다. 무엇보다, 아픈 애 앞에서 또다시 내 몸 힘들 걱정, 내 바운더리 문제를 떠올리는 나 자신이 혐오스럽다. 혼자서 어찌해보려고 꾸역꾸역 삼켜 둔 숨기고픈 감정들이, 애들 앞에서 줄줄 흐른다. 


속이 과하게 찬 만두가 따로 없다. 작은 자극에도 여기저기 터지고 마는. MIX & MATCH를 외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럴 수가 있나? 이럴 수가 있네? 긍정뽕이 부족한 날엔 답이 없다. 에너지 안배를 잘해봐야겠다. 그리고 오늘 하루 일만, 제일 코앞에 닥친 일 딱 한 가지만 생각하자. 어휴, 처절해. 어쨌든. 굳세어라, 쑥쑤루쑥. 





Photo by Anne Nygår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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