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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Sep 18. 2021

보물상자

나에겐 보물상자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동심이들이 내게 만들어준 선물을 모아둔 상자. 장신구와 변신로봇, 초상화, 편지 등 품목 다채롭기가 만물상자 수준이다. 예전에는 아주 와닿는 것만 보관하고 슬쩍슬쩍 처분했었다. 요즘은 동심이들이 내게 선물을 주면 선물에 대해 대화를 하고, 동심이들이 직접 보물상자에 넣어주는 게 루틴이다. 그 모습이 저금통에 코 묻은 동전 하나씩 넣는 것 같다.   


나머지 보물상자는 동심이들의 언행 모음집이다. 큰 동심이가 아기일 때부터 성장 노트 목적으로 문자함에 남겨두었다. 주양육자가 충분히 자기도, 여유롭게 먹기도 어려웠던 신생아 시기에 매번 하드카피로 기록하는 건 쉽지 않았기에 시작한 것이 습관이 되어 이제 양이 꽤 방대하다. 동심이들의 역사, 내 육아의 역사가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심이들의 인상적인 언행을 까먹기 전에 그때그때 '나'에게 문자를 보내 둔다. 이렇게 모은 짬짬이 기록을 날 잡아 워드에 한 번씩 옮겨둔다. 많이 밀린 건 비밀. 소곤소곤.


가끔 동력이 떨어질 때가 있다. 당연히 육아에도 여파가 있다. 그럴 때, 내 보물상자들을 열어본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랬다. 기쁨은 순간이었고, 힘든 일이 오래갔다. 상자 속 보물을 들여다보면 여러 생각이 찾아든다. 아이들 덕분에 행복한 순간이 이렇게 많았는데 내가 기억하는 게 너무 없구나. 자괴감으로 잠들던 숱한 밤이 있었음에도 아이들은 내가 주는 것보다 더 큰 애정을 내어주고 있었구나. 그렇게 보물 상자 속에 붙들어둔 찰나의 기쁨, 사랑, 성장을 엿보는 것만으로 나는 좀 괜찮아지곤 한다. 





Photo by Amol Tyag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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