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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녕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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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Nov 21. 2022

사과는 진심이지.

오랜만에 당근에 나눔을 했다. 세탁소 옷걸이였다. 제공한 세탁소에서 재사용이나 회수를 하면 좋으련만. 아직까진 비용과 효율이 우선인 곳이었다. 복합재질이라 분리배출도 애매해서 이렇게 한 번씩 나눔으로 처리한다. 약간의 품이 들지만, 자원 선순환 차원에서 감수할만하다.


그녀는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동네에서 잽싸게 물건만 전해줄 요량으로 동심이들만 집에 두고 나왔었다. 5분을 기다리다 전화했다. 어렵사리 연결된 통화에서 15분 정도 더 늦어진다고 했다. 짜증이 났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어떤 오토바이가 내 앞에 서서는 (야타 말고) 당근 물건을 달라고 다. 늦어지는 누나가 자기 대신 바이크 모는 동생을 보낸 거였다. 덕분에 더 늦지 않게 물건을 전해주고 쏜살같이 귀가했다.


그러고 나서 채팅이 자꾸 울린다. 그녀였다. 거듭 미안하다고 했다. 어떤 사정이 있어 늦어질 수는 있지만, 챗 한 통으로 양해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 늦은 것보다 아무 연락 없는 게 불쾌했던 나다. 그녀는 내가 민망하리만치 거듭 사과를 하는 걸로도 모자라, 내게 별다방 음료 교환권을 보내왔다.


그녀는 약속에 늦었다. 하지만, 사과했고, 최선을 다해서 내가 더 기다리지 않도록 조치하지 않았나. 태도를 보니 배려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제야 앳된 음성이 떠오른다. 통화할 때 퇴근이 늦어져 출발도 늦어졌노라 얘기했었다. 아마도 직장에서 양해의 챗 한 통 남길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어린 사원이었던 것 같다. 상사와 함께였다면, 성격과는 상관없이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정말 괜찮다고. 늦게까지 일하느라 수고 많았을 텐데, 그 커피 아가씨 마시고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라는 덕담까지 날려주었다. 괜히 멋진 척한 말이 아니라, 정말 괜찮아졌다. 사람의 언행 어느 한 대목이 전체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지만, 반전도 있는 법. 나는 실수 한 번으로 사람을 단정 짓지 않을 수 있었고, 그녀는 진심 어린 태도로 상대의 마음을 돌렸으니, 우리는 각자 불쾌함과 미안함을 물리칠 수 있는 하루였다.  





Photo by Steve DiMatte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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