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를 마치고 서울행을 확정 지었다. 서울에서 먼저 대학 생활을 하던 오빠가 내가 진학할 학교의 선배였던 오빠 지기의 도움을 받아 하숙집을 구해주었다.
하숙은 자식을 타지에 떠나보내는 부모 입장에서나, 자취 경험이 없는 자식 입장에서나 꽤 마음이 놓이는 선택지다. 일단 대부분 학교 코앞이고, 하숙집 주인집이 같은 건물에 살아 조금 더 안전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으며, 무엇보다 식사가 제공되었다.
때는 2001년. 평일에는 아침, 저녁 두 끼의 식사가 나왔지만, 나는 밥을 거의 챙겨 먹지 못했다. 새내기일 때 내 학교 생활은 좀 자유분방하다 못해 방탕했다. 이 모임 저 모임 부지런히 참여했는데, 고교 시절 못다 한 일탈을 몰아서라도 하듯 하나같이 호프집이었다. 그러면 나는 자연스럽게 저녁밥을 건너뛰었고 다음 날 아침 늦게까지 자느라 또 아침밥을 건너뛰었다. 밥은 안 먹고, 못 마시는 술을 마시고, 햄버거나 분식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기 일쑤니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규칙적인 식사가 그 누구보다 중요한 나약한 위장의 소유자임을 몸소 확인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시작은 분명 밥이었다. 엄마들에겐 안부의 동의어이자, 객지 생활에서 생존의 필요충분조건인 밥. 하지만, 막상 밥에 대한 기억은 크지 않았으니, 그 하숙집의 밥맛 대신 하숙의 맛을 천천히 꺼내어 보려 한다.
사진: Unsplash의Erol Ahm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