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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하숙의 맛

스무살의 이사는요.

by 쑥쑤루쑥

오래지 않아 나도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근처 하숙집을 돌아봤다. 1인실 비용은 비슷했다. 보안, 채광, 입지 등이 눈에 보였다. 하숙방 한 칸이어도 일반적으로 집 보러 다닐 때 체크해야 하는 것과 체크포인트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 하숙집은 오빠가 구해준 거였으니, 이곳이 내가 직접 고른 첫 거처였다.


예전 하숙집은 거대한 언덕 초입의 평지였고, 새로 구한 하숙집은 경사면을 다 올라가야 있는 수많은 하숙집 중 한 곳이었다. 볕이 더 잘 들었고, 방이 더 넓고 쾌적했다. 당연히 같은 1인실이어도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었다. 하숙비에 생활비까지 적잖은 돈을 매달 본가에서 받는 입장이라 오래 고민했다. 결론은 그래도 GO였다.


이사 소식을 전하자 기존 하숙집 아주머니는 어느 집으로 이사 가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지금 같으면 눙치고 넘어갈 것을 순진하던 그 시절 나는 다 불어버렸고, 아주머니는 대뜸 새 하숙집 주인 할아버지 내외 흉을 보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도 어쩌란 말이지, 참 품위 없단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삿짐을 꾸렸다.


아직 1인 가구 살림이 영글기 전이라 짐이 많지는 않았다. 젊은 나와 젊은 내 친구, 그리고 우리보다 힘 좋은 내 오빠 이렇게 세 사람이 이사를 했다. 이사를 마친 우리는 우리만의 회포를 풀었던 것 같다. 이 날 간 병맥주 전문점은 하숙집 바로 앞이기도 했거니와, 폐업할 때까지 N 년을 더 내 단골집으로 자리매김했다 (멋쟁이 친구가 편안한 복장을 하고서 야구모자챙을 뒤로 가게 눌러쓰고는 으쌰으쌰 함께 짐을 날랐다. H야,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마운 일이야. 너 없었더라면 내 첫 이사담이 이렇게 고운 때깔일 수가 없었어). 지금이야 가구 하나만 대청소해도 온몸이 쑤시는 걸. 새로운 거처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에 새삼스레 설레던 밤. 그 밤에 스물을 갓 넘긴 내가 있었다.




사진: UnsplashConvertK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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