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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하숙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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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Apr 07. 2023

택배를? 쏘세요!

하숙을 하면 택배랑 친해질 수밖에 없다. 본가에서 주로 받기만 하는 입장이던 시절. 작게는 몸에 좋은 각종 간편식과 영양제, 크게는 이불이 그 먼 거리를 달려 내게 왔다. 이불 부심이 있으신 우리 여사님이 보내신 이불은 많고 많은 이불 중 목화솜이불. 화공솜은 용납하지 않으셨다. 엄마가 보내주신 정갈한 솜이불은 한양의 추운 겨울의 서막을 알리는 빵빵하고 무거운 시그널이었다. 


방이 좁아 둘 곳이 마땅치 않았던 내 옷이 향하는 곳도 본가였다. 정작 그 딸이야 똥꼬발랄하게 잘 지내고 있었지만, 스물을 갓 넘긴 막내딸이 객지 생활에서 어찌 지내고 있을지 내가 보낸 옷을 보며 엄마 심정은 어땠을까 뒤늦게 생각해 본다. 마침 우리 집에 와 계신 여사님께 그때 내 짐을 풀며 눈물을 훔치진 않으셨는지 여쭤봤다. 여사님 말씀. 아니? 전혀. 왜 그래야 하지?


다시 돌아와서. 택배의 필수품은 택배 상자와 박스 테잎. 특히 테이핑할 때면 가위나 칼이 필요하지만, 내 경우 볼펜 한 자루면 뚝딱 해치울 수 있었다. 볼펜심이 나오게 하고 쿡. 반동에 볼펜심이 밀리지 않도록 후크를 꾹 누른 상태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매국노의 경동맥을 노리는 암살자 빙의하여. 그러면 테잎이 툭 하고 숨통을 끊었다. 물론, 테잎은 아무 잘못이 없다. 


공간의 손실이 없도록 촘촘하게 내용물을 담고 볼펜심으로 테잎을 툭툭 끊어내는 스킬은 직딩 시절 회사가 이사할 때마다 써먹은 발군의 고오급 실력이었다. 양가 식구들 모두 전국 팔도에 떨어져 사는 지금까지도 꽤 쓸만한 꿀팁으로 써먹고 있음이다. 하숙하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택배는 마음을 나른다. 효과음은 쿡. 매섭고 날랜 손끝으로. 목적지를 향해 발사. 




사진: UnsplashIan Talma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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