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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Sep 28. 2021

나의 제로 생활

'2020원더키디'였나. SF 좋아하는 오라버니 어깨 너머로 어릴 적 잠깐씩 본 만화영화 제목이. 주인공이 바이크 앞 부분을 떼어낸 것처럼 생긴 요상한 걸 타고 슝슝 날아다니는 장면이 신기했던 걸 빼면, 칙칙한 분위기가 어린 맘에도 별로였던 것 같다. 대단히 먼 미래인 것 같았던 2020년은 어느 새 지나갔고 나는 생활인으로 2021년의 어느 날을 살고 있다. 영화를 좀 챙겨보던 20대 시절에는 SF 영화 속 미래가 너무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려진 게 싫었다. 앞으로의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좋아질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와 장르에 대한 불호에 더해, 그 우중충한 상상력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건 상상력이 아니라 대단한 현실감각이자 통찰력이었고, 어떤 영화에서 갖다 붙여도 잿빛 미래는 너무 말이 될 것 같다. 


작년 가을부터 제로웨이스트를 실천 중이다. 쓰레기를 정말 제로로 만들 순 없겠지만 줄일 수는 있다. 이제는 일상화한 부분이 꽤 많고, 배출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환경 문제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비주류인 트렌드에서 활동하려면 여전히 비용도 품도 많이 든다. 가장 큰 원동력은 역시 아이들이다. 최소한 우리는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기후 위기 걱정 없는 자연을 누렸었다. 불과 한 세대만에 너무 많이 달라졌다. 외출 전 미세먼지 농도 확인은 필수요, 코로나 아니어도 이미 마스크가 친숙했다. 미세플라스틱은 이제 수돗물과 여러 해양생물에서도 검출될만큼, 먹이사슬에 깊숙히 침투하기 시작했다. 늦가을 초강력 태풍은 가뜩이나 짧은 청명한 가을을 앗아가고 있다.


북미에서는 높아진 수온에 조개 떼가 익어서 폐사했다고 한다. 폭염에 살갗이 터진 채 헤엄치는 연어 뉴스도 들려온다. 그런가 하면, 여름이 너무 시원해서 에어컨 없이도 지낼 수 있던 캐나다 어느 도시에서는 올 여름 급격히 치솟은 기온에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했단다. 옮기지 못한 뉴스가 차고 넘친다.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뉴스들은 경고하고 있다. 기후 위기는 벌써 시작되었다고. 


사회적 차원에서의 큰 틀이 바뀌면 효과가 클텐데. 아직은 기업과 정부보다 환경을 위한 친환경에 관심 있는 개별 소비자들이 훨씬 더 적극적인 것 같다. 목소리 내는 일에 소극적인 편인데도 일단 나부터 할 수 있는 걸 하는 한편, 포장재 개선 의견을 내거나, 환경단체에서 주관하는 플라스틱 어택에 참여하는 등 '소비자 행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큰 동심이는 '지구 아끼기'에 나름의 방법으로 동참하게 되었다. 대나무 칫솔과 샴푸바를 쓰고, 재활용 재료로 신나게 미술놀이를 한다. 학교에 본인 자리 청소도구로 플라스틱 대신 스테인레스를 택했으며, 이면지를 자연스럽게 쓴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노트 표지 이면까지 꽉꽉 채워 쓴다. 내가 쓰는 고체치약과 자연 분해 치실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렇게 하면 자기가 지구를 아끼는 거냐고 묻는 순간이 부쩍 늘었다. 내가 노력할수록 아이들의 환경 감수성도 높아질 것이기에 또 한 번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가 거주 가능한 수준으로, 지구가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환경을 돌보는 일, 그 안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방법을 우리는 어디서 배워야할까. 개인적 차원의 각성을 계기로, 서점에서 관련 책을 탐독하고,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의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어야만 할까. 지금 내가 하듯이? 탄소 중립 선언, 플라스틱 프리 활성화, 포장재의 재활용 어려움 정도 표기, 투명 페트병 분리 배출 등의 조치를 환영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나의 제로 웨이스트 생활 역시 완벽하지 않다. 당장 우리 집 쓰레기부터 줄이는 게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확실히 부족하다. 혼자 하는 그 사소한 노력들이 뿌듯할 때도 있고, 나 하나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어 울적할 때도 있다. 그러나 팔랑이는 마음, 그 혼란을 뛰어넘어 오늘도 나는 열심히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내게 제로웨이스트는 아이들 세대 그리고 그 이후 세대를 향한 속죄에 가까우므로.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하지만 또 시작이 반이니까. 그런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Photo by Gaelle Marc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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