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들이 나에게 꽃이 되었다.
제 마음속 우물에, 특정한 단어가 고일 때가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을 할 수는 있지만 그 말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맛과 깊이를 다 전달하지 못하는
'영어 단어들'입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영어를 계속 쓰면서 일하는 프리랜서가 되면서부터 제 인생에 차곡차곡 쌓인 이 단어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프리랜서로 살면서 경험한 자유로움, 불안함, 타인의 평가에 좌지우지되는 하루하루, 마이크로 단위의 성취감, 성공과 실패의 저울 등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은 삶의 파편을 그러모아서 선명해진 흔적입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부당한 평가를 받을 때 단순히 힘들고 억울한 감정 너머 더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이름표를 달지 못한 그 감정들이 내내 저를 끌어내렸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십몇 년 동안 통번역일을 하면서 일을 의뢰한 고객들을 위해 가장 적확한 의미의 단어를 찾아 자신을 고문하듯 온 신경을 집중하는 제가, 정작 저를 위해 정확한 '단어'를 찾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제라도 그러모은 이 단서들을 모아서, 고유한 이름을 지어주는 작업이 제게는 '자기 돌봄'의 시작처럼 여겨집니다. 제게 다가온 이 단어들이 자랑스럽거나 멋들어진 말들은 아닙니다. 오히려, 수치스럽고, 두려우며, 도망가고 싶단 생각이 가득할 때 머물렀던 말들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취약한 상태를 '나는 지금 취약하다'( vulnerable)라고 마음으로 읊조렸을 때 비로소, 크게 숨을 내 쉴 수 있었습니다.
이국적이고, 낯설지만 이러한 말들이 제게 선명해질 때, 상처받고 길 잃은 제 자신에게 말을 걸고 조용히 응시해 줄 힘이 생겼습니다.
살벌한 통역의 현장에서, 다양한 문화와 배경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이내믹이 충만한 국제 행사를 마친 후, 아이를 겨우 재우고 밤 12시에 도둑고양이처럼 겨우 녹음작업을 할 때 등
우당탕탕, 좌충우돌로 이뤄진 제 삶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이 말들이 이 글을 읽는 다른 이에게도 덤덤하게 말을 걸어 주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는, 자신에게 지금 말을 걸어주고 있는 단어가 무엇인지, 조용히 탐색하고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