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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Kim Jul 11. 2024

Vulnerability(취약성):모든 것의 시작

*Vulnerability (취약성, 연약함)은 내가 당신에게서 찾는 '첫 번째'요소이고,                         내가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지막'요소이다.                              -브레네 브라운-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내 머릿속에 거대한 추가 들어와 살면서부터였다.  


상상하자면 크기는 컬링이란 종목에서 쓰는 스톤 즈음 되는 것 같다. 그 스톤의 무게가 20KG이라는 데 체감상 그의 열 배는 되는 무게의 추가 내 머릿속에 들어앉아서는, 제 멋대로 흔들리며 오른쪽으로 기우뚱, 어떨 때는 왼쪽으로 기우뚱 가야 할 방향을 조종하고 있었다.  


2023년 6월의 어느 날 나는, 이석증, 전정 신경염(내이의 균형기관에 염증이 생기는 것) 진단을 받았다. 그 후 거의 1년을 대학병원, 신경외과, 온갖 유명하다는 이비인후과를 전전했지만, 내가 느끼는 어지럼증은 완전히 낫질 않았고, 초기에 겪은 눈앞이 까매지며 쓰러지는 심한 어지럼증은 아니지만, 잔존한 어지럼증으로 1년을 보냈다. 


머릿속이 빙빙 돈다는 느낌이 들면 머릿속 추가 침대에 쏟아지듯 누운 내 몸에 퍼져서 바닥에 닿는 건 아닌가 싶게 육중한 무게에 눌린 채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으로 천천히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렇게, 매일 조금씩 나를 갉아먹어가는 어지럼증을 참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의 ‘취약함’은 어지럽게 쏟아지는 머리를 달고 당장 내일, 몇 달 전 오디션에 통과한 국제행사 MC로 6시간을 서 있어야 하는 등, 십 년이 넘게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커리어를 앞에 두고, 바스러지기 직전의 상태로 달려가고 있었다. 



특히 이석증 진단 이후 첫 이석치환술(빠진 이석을 다시 넣는 치료)을 하던 날, 나는 같은 날 저녁 가장 취약한 상태에서, 완벽한 무결점의 갑옷을 입은 것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행사장 리허설을 가기 직전까지, 어지럼증 때문에 여러 번 구토를 하고, 시체처럼 쓰러져 있던 나는 진통제, 구토 억제제, 신경 안정제를 털어 넣고 무대에 섰다. '미래 지향적', '초 연결 디지털 미래사회'가 행사 콘셉트이었던 탓에 무대 전체를 에워싸는 초대형 커브형 모니터 앞에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렬하게 쏘아대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어지럼증으로 구토하다 온 사람이라고는 전혀 눈치챌 수 없게 나는 사력을 다해 내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 심지어 1부는 AI가이드 목소리로 등장하는 ‘성우’로, 2부는 외국인 참가자 환영 만찬을 진행하는 ‘휴먼’ MC가 내 역할이었다.


무사히 행사가 다 끝나고, 밤 9시쯤, 온몸의 수분과 기름기가 다 빠져나간 채, 누군가 해머로 내 좌뇌, 우뇌 벽을 번갈아 가며 계속 쳐대는 두통 속에서 그날 첫 끼니인 감자튀김을 입안에 욱여넣으며 생각했다. 


무대에서 쓰러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리허설 대로 사고 없이 다 진행됐으니 잘 된 거겠지? 담당자가 잘했다고 얘기해 준 건 진심이겠지? 그나저나 AI목소리 흉내와 인간의 특성을 번갈아 가면서 하는 행사라니… 이제 진짜 AI와 공존하는 하이브리드형 행사만 살아남는 것인가…’


그러나 나는, 최악의 몸 상태에서도 다음 일이 끊길까 봐 걱정하는 자신이 씁쓸했다. 그리고... 슬펐다.

왠지 나를 제일 연약한 상태로 만드는 이 육체의 고통이 쉽사리 나를 떠날 것 같지 않은 기시감이 들었다.


다른 이의 좋은 평가에 성취감을 느끼고 멋진 레퍼런스를 쌓고, 프로필에 멋들어지게 작성할 커리어를 양적으로 늘리는 것에만 집중해 온 나의 원동력 어딘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계속 이런 식으로 살 수 없을 거란 사실을, 나는 직감하고 있었다. 



이석증 진단 이후 1년간, 나는 내가 지금 찢어지기 직전의 연약한, 취약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 예전처럼 돌아올 것이라는 오랜 고집 같은 희망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다. 

어지럼증이 낫지 않아 14년 프리랜서로 일하는 동안 처음으로, 일을 거절하기도 하고, 이불 동굴 속에서 며칠씩 칩거하며 나 자신의 쓸모에 대해 계산을 하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일을 간절히 원한다고 느꼈다가 다음 날은 아무 일도 들어오지 않았으면 했다. 어떤 날은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을 했고 나름의 멋진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하다 인스타에 뜬 동종업계의 다른 이들을 보면 나는 ‘애쓰기만 하다 끝나는’ 만년 무명 배우라 느껴졌다. 


그렇게 무한 열정과 무기력 사이, 신박한 아이디어가 터지는 상태와 우울감 사이, 조명이 찬란히 부서지는 무대와 이불 동굴 사이를 오고 갔다. 몸이 아파진 이후, 현실적으로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없게 된 매우 ‘취약한’ 상태의 나는 내 안에 켜켜이 쌓인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감정과 전쟁을 치르며, 비로소 나 자신에게 물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진실로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일까?

                      

                      몸이 아파서, 아무런 일도 못하게 되면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인 것일까?

  

                       경제적으로 ‘무쓸모’한 나도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괜찮을 수 있을까?


1년 간의 고군분투 후에 어지럼증이 거의 다 가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도 나는 아직도 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원하는데, 원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약해 빠진’, ‘취약한’ 상태가 되고서야 내가 진실로 무엇을 원하고 갈망했었는지 조용히 들여다볼 용기가 생겼다. 무엇이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던 것인지, 나는 왜 타인의 평가에 이다지도 민감한 것인지, 자신을 돌보고 인정한다는 것이 나란 사람의 인생에는 어떻게 구현돼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육체의 연약함이 나를 덮치고 나니, 나는 내 안에 깊이 침잠해서 나 자신을 조용히 응시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한 번도 떼지 못했던 ‘성취’와 ‘증명’이란 간판을 내려놓고 말이다. 


이후에 나 자신을 응시하며, 대화를 걸면서 삶을 새롭게 만난 순간 다가온 ‘단어’들은, 고군분투했던 내 인생의 파편들을 아주 촘촘한 체에다 뿌려놓고 곱게 걸러 남은 흔적이자, 새롭게 걸 ‘간판’이다.   


내게 다가와 내 마음 속 우물에 잔잔히 고인 이 단어들은, 좌절과 환희의 순간 제각기 이름표를 찾아 달고 조용히 읊조리게 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연약한 상태를 읊조릴 수 있는 자신이 조금 자랑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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