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속 (聖과 俗)
3부
그 여사장의 건달 애인이 나타날 때마다 내가 남사장의 눈치를 봤던 게 쓸데없는 오지랖 촉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 내가 있을 때 남사장님이 딱 두 번 여사장에게 화를 냈던 적이 있다.
남사장님은 건달 애인이 술값을 자꾸 외상으로 달아놓고 간다고 이제 더는 봐줄 수가 없다고 소릴 질렀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기로 외상으로 못 받은 술값은 그 건달 말고도 수없이 많았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주방 어두운 구석에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이혼한 전처가 다른 남자를 상대로 웃음을 팔아가며 번 돈으로 자신의 집세를 내고, 목숨보다 더 아까운 자식의 등록금을 내는 남자사장님의 심정이 어떨까 헤아려보곤 했다.
사장님은 가끔 손님이 없을 때 남은 과일을 굳이 공들여 깎아 나에게 주시면서, 죽지 못해 산다는 넋두리를 하시기도 했다. 나는 곱게 칼질된 사과를 입에 넣으며 그 한숨 너머에 깔려있는 회한, 자신도 진절머리 나는 질투, 여전히 감정이 남아있는 전처의 행동거지를 눈앞에서 견뎌야 하는 형벌 같은 사장님 팔자에 대한 참담함을 느꼈다.
'처음부터 '저런' 여자는 아니었는데, 집에 있질 못하고 늘 어딘가 쏘다녀야 직성이 풀렸다'는 하소연 같은 말을 나에게 할 때도 있었는데, 한 시간도 더 있고 싶지 않은 아르바이트 술집에서 남자사장님이 오죽 외로우면 나에게 저런 말을 할까 싶어 사장님이 불쌍해서 더 다녀야 하나 양가적인 감정에서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여사장의 건달 애인은 나에게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는데 술이 취해서 비틀대면서 여사장을 때리려는 포즈를 취할 때마다 여사장 아들 눈에 섬광처럼 스치던 두려움과 분노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 기억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어두운 주방 커튼 뒤에 버티고 있는 남자 사장님의 존재를 그 건달 애인이 모르지 않았던 것 같다.
여사장과 무슨 얘길 주고받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술잔을 던졌는데, 여사장은 소릴 지르고, 그를 제지하며 그와 같이 와서 술을 마시던 일행들과 함께 술집 밖으로 내보냈다.
나는 깨진 술잔과 더러워진 자리를 말없이 치우는 남자 아르바이트생(여사장의 아들)을 도와 청소를 했지만, "저게 나쁜 인간은 아닌데 술버릇이 저렇다"라며 혼잣말인 듯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여사장을 보며 이젠 정말 큰일이 나기 전에 여길 빨리 그만둬야겠단 생각을 했다.
알바가 끝나고 밤 12시가 다돼가는 어두운 광안리 유흥가 뒷골목길을 쫓기듯이 걸어 나오며, 나는 그 막돼먹은 여사장 애인이 광안리 조폭 어느 ‘파’에 속해 있는지 궁금했다. 그와 같은 문신을 한 무리들을 마주칠까 소름 끼쳐하며 겨우 집에 도착하면 22살 된 내가 밤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든지 말든지 아무런 걱정 없이 자고 있는 식구들에게 서운함과 씁쓸함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얘기하겠다고 다짐하며 나선 날, 안 그래도 음침한 주점에 비까지 내려서 더 손님도 없고 음산한 날이었다.
여사장 건달 애인의 일행 네다섯 명 외엔, 구석진 자리에 한 연인 커플 말고는 손님이 없었다. 여사장은, 트로피칼 무늬의 몸매가 드러나는 저지 원피스를 입고, 금색 팔찌와 짙은 화장, 그리고 이젠 안 들으면 허전한 그녀가 아무렇게나 껌 씹는 소리까지 평소와 별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미 취해서 들어온 건지, 심기가 안 좋은 건지 여사장은 애인 자리에 좀체 가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질리다시피 친 대중가요 메들리를 그날도 반복할 셈이었는데, 왠지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에 피아노 소리가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웬만한 진상 손님들은 다 겪어봤다는 나보다 나이 어린 여자 아르바이트생도, “언니야, 오늘 분위기 쪼매 이상하제? 아, 빨리 퇴근했으면 좋겠다. 아휴… 저것들(여사장 애인 무리) 대강 먹고 치아뿌지..” 라며, 나에게 푸념을 해댔다.
그리고 조금 지나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왔다. 내가 M이라 불렀던 사장님 아들이라도 있으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든든해질 참에, 갑자기 여사장이 앉아 있던 테이블에서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정확히 무슨 일 때문에, 싸움이 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화들짝 놀라 피아노 치다 말고 무대에서 내려오기 무섭게 여사장 애인이 맥주병을 탁자에 내리쳐서 깨고는 유리 파편이 온 사방에 튀었다. 그리고는 소리를 벼락 같이 지르며 탁자를 뒤집어엎고, 온 가게를 다 부수기 시작했다. 그 건달 애인은, 마치 무기라도 되는 냥, 맥주병을 쥔 손아귀 사이로 피가 흐르는데도 날카로운 흉기가 된 맥주병을 놓지 않고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가게를 헤집었다.
그 순간, 나는 영화에서나 보던 조직 폭력배 싸움을 눈앞에서 본다는 게 믿기지 않는 와중에, 자기를 해하면서까지 다른 이를 괴롭히는 그 창렬 한 무식함에 진절머리가 났다.
말리던 여사장 팔에는 피가 철철 났고, 주방에 있던 남자 사장님도 뛰쳐나왔는데 남자 사장을 본 여사장 애인이 더 흥분해서 길길이 날 뛴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나와 M, 그리고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계산대 아래에 웅크리고 있었다. 가게에는 건달 애인과 그 무리들이 계속 집기를 부수고 있고, M은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차마 계산대 위 가게가 어떤 상황인지,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출입구 쪽으로 뛰어서 도망을 가고 싶었지만, 그러다 건달들한테 잡혀서 괜히 화풀이를 당할까 봐 그럴 용기도 없었다.
그러더니, 경찰 온다고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여사장에게 행패를 부리던 건달 애인 무리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가게 밖으로 나갔다. 중간에 도망갈 용기조차 없던 나는, 그제야 가게 곳곳에 묻어 있는 핏자국과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울고 있는 여사장을 볼 수 있었다.
나는 M에게,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한마디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그를 먼저 위로해얄 지 나를 위로해얄지도 헷갈렸다.
그날, 정확히 누가 얼마나 다친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어두컴컴한 술집 조명 아래 붉은 핏자국이 유난히 더 시커먼 배설물처럼 보였던 기억만 난다.
경찰이 오고서야 가게를 나설 수 있었던 나는 비를 맞으며, 울면서 어두운 골목을 걸었다. 오늘 내게 일어난 이 말도 안 되는 일에, 나를 위로해 주거나 나의 두려움에 공감해 주는 이 하나 없는 집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