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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홍차 Aug 26. 2024

나를 잊은 신이 재벌이 되었다. 02

02.

 신의 기운이 서렸다는 커다란 나무엔, 예로부터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고는 했다. 제법 영험하다는 무당들도 치성을 드리고 갈 정도였으니, 신력이 정말 깃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몸통 지름이 2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 이 나무 주변은 오늘도 시끌벅적했다.


 2024년 봄, 여러 색의 화지와 천으로 장식된 나무 앞에서 꽹과리와 북이 박자를 맞추고, 색색의 옷을 입은 무당이 깃발을 정신없이 흔들며 껑충껑충 뛰었다. 무당의 앞에는 한복을 입은 20대 초반의 여자가, 속마음이야 어찌 됐든 눈을 감고 단정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여자는 호운그룹 회장의 둘째 안재경이었다. 재경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다. 여러 병원엘 가봤지만 툭하면 쓰러지는 몸은 원인을 모르니 고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용하다는 무당을 소개받아 굿을 하기에 이르렀다.  조금이라도 건강해지기를 기원하는 굿이었다.


 ‘그래.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제 픽픽 쓰러지지나 않으면 좋겠다.’


 재경은 이 시대에 뒤떨어진 미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엄마의 애원을 생각하며 얌전히 있었다.


 그런데 살아있는 돼지를 잡아 제를 올리고 한바탕 타령을 하던 무당이 갑자기 방울을 잡더니 눈까지 홱 뒤집었다. 화창했던 날씨도 급변했다.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여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어둑해졌다.


 무당의 손에 들린 방울이 세차게 흔들리며 정신없이 짤랑거렸다. 안재경의 가족들이 영문을 모른 채 서로를 쳐다보고, 굿을 돕던 제자무당들까지 당황한 와중에 무당의 입에서 남자도, 여자도 아닌 묘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여기에 숨겨뒀었네.”


 재경은 고개를 들어 무당을 쳐다보았다. 무당은 그런 안재경을 지나쳐 나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무당은 나무에 손을 짚은 후, 피식 웃기까지 했다.


 “이제 신력이 다하였으니 곧 나오겠구나.”


 무당이 뒤를 돌아보며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귀히 여기거라.”


 그중 재경의 오빠인 안지훈과 눈이 마주쳤다. 무당의 하얗게 뜬 눈에, 지훈은 소름이 돋았다.


 “호오, 그 아이와 이어진 끈이 있구나. 이번생엔 어떠려나.”


 그 말을 끝으로 무당의 눈이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무당은 기력소모가 심한 나머지 스르륵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왕신이 다녀가셨다!”


 제자무당 하나가 외쳤다.


 마치 신호라도 되는 듯 꽹과리와 북이 다시 신명나게 울렸다. 대왕신이 다녀가셨다는 말에 트집을 잡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굿은 그럭저럭 마무리가 되었다.


 무당은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갔고, 재경도 산 어귀에 자리 잡은 별장으로 돌아갔다. 대학 개강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며칠 지켜보다가 몸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이번 학기도 휴학을 해야 할 듯싶었다. 그것 때문에 재경이 우울해하자 재경의 엄마 함윤숙이 침대에 걸터앉은 딸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제자무당이 귀띔해 줬는데, 대왕신이 귀히 여기라는 게 뭔지 몰라도 좋은 일이 있을 징조라고 하더구나. 까짓 거 휴학하는 걸로 너무 상심하지 마. 몸만 나으면 유학도 보내줄 테니까, 응?”


 “응. 알았어. 나 좀 잘래. 너무 피곤해.”


 재경이 눕자 윤숙이 이불을 잘 덮어 주며 말했다.


 “그래, 김여사한테 소고기죽 끓여달라고 할 테니까, 일어나서 입맛 없어도 꼭 챙겨 먹어. 알았지? 엄마는 올라가 봐야 돼.”


 “응.”


 재경은 힘없이 손을 흔들고는 잠이 들었다.



***



 굿을 한지 삼일이 지났다.


컹! 컹-!!!


 목줄을 한 셰퍼드가 산 중턱 어딘가를 향해 계속해서 짖었다. 빨리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듯 앞다리가 땅에 닿을 새도 없이 잔뜩 들려서는 당장이라도 공중으로 뛰어오를 것 같았다. 내민 혀에서 침도 줄줄 흘렀다. 이런 적이 없던 개였으니, 줄끝을 쥔 남자가 황당함에 헛웃음을 내뱉으며 끌려가는 중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제노. 알았으니까 천천히 가자고.”


 그제서야 제노는 낑낑거리며 앞발을 제대로 내디뎠다.


 ‘이쪽은……?’


 남자, 안지훈은 얼마 전 동생을 위해 했던 굿이 떠올랐다. 뭐 나무에 신력이 깃들었다던가? 애초에 지훈은 무당의 말을 믿지 않았으니, 그에게는 그저 큰 나무일뿐이었다. 지금 제노가 가는 길은 그 커다란 나무로 향하는 길이었다.


 별장에서는 좀 떨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걸음을 서두른 제노와 지훈은 생각보다는 빨리 나무에 도착했다. 둘은 숨을 몰아쉬며 나무로 다가섰다. 그런데, 나무가 그때와 달랐다.


 밑동이 세로로 쩍 갈라져있었다. 도끼로 찍힌 흔적 같은 것도 없이 그냥 원래 그렇게 자란 것처럼. 하지만 지훈은 며칠 전 봤던 나무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 나무는 원래부터 이렇지 않았다.


 그리고 갈라진 나무 그 사이엔,


 웬 여자가 햇살을 받으며 웅크리고 앉아 잠들어 있었다.


 하나로 길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에 얼룩얼룩 재가 묻어있었다. 요즘 차림새와는 다른 이상한 형태의 옷도, 품에 꼭 안은 보따리도 재투성이였다.


 지훈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꼭 이곳만 이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인 것만 같은. 그래서 손에 쥐고 있던 목줄을 놓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제노가 그녀에게 달려갔다.


 “헉!”


 잘 훈련받은 제노가 사람을 물 리 없지만 이렇게 낯선 사람에게 달려가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 정신을 차린 지훈이 급히 쫓아갔을 때, 이미 제노는 그녀의 손등을 핥고 있었다.


 “……으응?”


 그녀가, 간지러움에 눈을 떴다. 그녀는 처음 보는 커다란 개를 마주하고 놀랄 법도 한데, 이제는 손등을 넘어 그녀의 뺨을 핥아대는 제노를 밀어내지도 않고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맑아서, 지훈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대신 제노를 불렀다.


 “제노, 제노. 그만해. 이리 와.”


 지훈은 다시 혼란한 기분에 휩싸이는 자신을 털어내듯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원래 이런 놈이 아닌데.”


 부드러운 목소리에 퍼뜩, 연아가 놀라 일어났다. 불이, 났었는데. 세상은 지저귀는 새소리만 가득하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것이, 매우 평화로웠다.


 “어? 불은 다 꺼졌나요? 아님, 제가 죽은 건가요?”


 “네?”


 “불이 났었는데요. 마을도 다 타버리고.”


 지훈은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요 몇 년간 호운가의 별장이 있는 이 산에 불이라곤 난적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죽은 거냐니, 이 여자, 꿈을 꿨나? 아니면…….


 “댁은 어디십니까?”


 이 산은 호운가의 사유지였지만 그것까지 들먹여 여자를 내쫓아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데려다 줄게요.”


 갑자기 차가워진 주인의 말투에 제노가 안절부절못하며 꼬리를 내리고 낑낑거렸다. 연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죽은 게 아니라면, 저희 집은 불에 타버렸는걸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그게, 그러니까, 어? 지금은 겨울이었는데……?”


 “봄입니다.”


 “네. 봄, 이네요? 왜 봄이죠?”


 지훈은 이 여자의 정신이 좀 이상한 게 아닐까 싶었다.


 ‘괜한 오해를 사기 전에 경찰에 신고해야겠는걸.’


 핸드폰을 꺼내 들었는데 마침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얘, 지훈아. 어디니? 여기 왔는데 재경이만 있구나. 제노 산책시간도 아닌데 어디 갔어?’


 “아, 오늘 제노가 좀,”


 “낑! 끼잉!”


 “……이상해서요.”


 여전히 여자의 주변을 맴돌며 낑낑거리고 있는 제노를 보며 말을 이은 지훈은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상한 여자에 대해 어머니께 말을 해야 되나 고민이 되었다.


 연아는 앞의 사내가 갑자기 네모난 것을 꺼내 귀에 가져다 대더니 혼잣말을 하는 것이 참으로 요상스러워서 고개를 갸웃거린 것이었는데. 지훈은 자신이 이상하게 보일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경찰에 신고하기 전 어머니께 말이라도 해놔야겠다 마음먹고 여자에게 잠깐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몇걸음 물러났다.


 “어머니, 여기 그 나문데요. 이상한 여자가 있어요.”


 ‘그 나무? 아아! 그 신목! 그런데 뭐?’


 “이, 상, 한, 여, 자, 가, 있, 다, 고, 요.”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지훈을 더 이상하게 쳐다보는 연아였다. 아예 뒤돌아선 지훈은 재빨리 덧붙였다.


 “그 신목인지 뭔지에서 자고 있더라고요. 집이 불에 탔다는데 지금이 왜 봄이냐는 둥, 제정신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불현듯 삼 일 전 무당의 말이 떠오른 윤숙은 아들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얘! 신고는 무슨 신고야! 그때 무당이 말한 귀하게 대하라는 분일 거야! 얼른 모시고 와! 얼른!’


 “엥? 누군지도 모르는데요?”


 ‘누군지 몰라도 잘 대접해서 재경이가 낫는다면 그게 누구든지 알게 뭐니. 조심해서 모시고 와라!’


 지훈이 찝찝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뒤를 돌아보니 연아가 쪼그려 앉아 제노를 쓰다듬고 있었다. 제노는 낯선 이에게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데. 이상한 일 투성이었다.


 “저…….”


 지훈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뒷말을 잇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부터 자기 별장으로 가자고 해야 하는데 과연 잘 따라와 줄까? 싫다고 버티면 어떡하지? 온갖 걱정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었다.


 “어? 그러면 입술에서 피나요. 무슨 일이에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여자가 쪼그려 앉은 채로 놀란 토끼눈을 하고 지훈에게 묻는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괜히 순한 동물을 괴롭히려다 제풀에 혼자 다쳤는데, 괴롭히려던 그 순한 동물이 다가와 다친 곳을 핥아주는 기분? 그렇다. 굉장히, 묘했다. 에라, 그 순한 동물, 이름이나 알자.


 “이름은 뭐예요? 내 이름은 안지훈이에요.”


 “아, 저는 송연아예요.”


 지훈이 악수라도 하자는 의미로 손을 내밀었는데, 연아는 의아하게 그 손을 쳐다본 뒤 혼자 일어날 수 있다며 씩씩하게 벌떡 일어났다. 민망해진 손을 거두며 지훈이 말했다.


 “음, 혹시, 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에 갈래요?”


 ‘악! 이거 꼭 가출한 애들 꼬시는 멘트 같잖아!’


 이미 내뱉은 멘트가 너무 저급해서 뺨이라도 맞을까 싶어 눈을 찔끔 감아봤는데 날아오는 손바닥은 없었다. 살금, 눈을 떠보니 연아가 다갈색 눈동자를 빛내며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그래도 돼요?”


 “어, 네.”


 “와! 그럼 염치없지만 잠시만 실례할게요! 저 이 약초 다 팔면 금방 집 살 수 있어요!”


 “어, 네?”


 연아가 보따리를 내밀며 해맑게 하는 말에 지훈이 오히려 당황했다. 약초를? 팔아? 집을, 사? ……역시,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이 여자 데려가는 거 정말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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