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래와 처음 만난 날을, 연아는 정확히 기억한다.
그날은 아침부터 푹푹 찌는 여름날이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연아의 집은 숲의 그늘 덕에 그나마 시원한 편이었다. 그때 열두 살이었던 연아는 마루에 엎드려 서책을 읽으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매미들이 나무마다 매달려 ‘매앰매애앰’ 날개를 비벼대는 통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어스름한 새벽에 집을 나서 산을 둘러보고 이제야 돌아온 연아의 아버지가 마루에 약초를 풀어놓으며 말했다.
“연아야. 개울에 가서 물 한 바가지만 떠다 주련.”
“네에!”
연아는 바가지를 들고 개울로 향했다. 개울물은 시원할 테니, 아버지께 물을 떠다 드리고 자기는 발을 담그고 좀 놀 심산이었다. 아버지의 물부터 떠서 가져다 드린 뒤에 다시 개울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늘은 멍때리기를 해야지! 개울물에 비친 햇빛이 산란하게 빛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눈이 부신 것도 잊고 멍해지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런데 개울에 선객이 있었다. 연아보다 조금은 어려 보이는 사내아이가 쪼그려 앉아 손으로 개울물을 떠서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어? 못 보던 아이잖아?’
연아가 천진하게 물었다.
“넌 누구야? 마을에 놀러 왔니?”
그는 참 어여쁘게 생겼더랬다. 마을에서 제일 예쁘다 소리를 듣고 자란 연아의 어린 마음에도 질투가 일 지경이었으니까. 사내아이의 예쁜 입술이 살짝 미소 짓더니 아리송한 답을 내놓았다.
“그냥, 어쩌다 보니 왔어. 여긴 물이 달아서 나무들이 좋아라 하겠네.”
“헤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나무들이 좋아라 하는지, 싫어라 하는지?”
“난 그냥 알아.”
그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연아에게 물었다.
“넌 여기 살아?”
“응, 저어기 오두막에.”
연아가 가리킨 곳을 본 사내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아는 갑자기 물에 발을 담그기가 민망해졌다. 사내아이가 너무 곱상하게 생겨서 그런지는 몰라도 애꿎은 손만 계속 씻게 되었다. 그래도 더위를 가시기에는 충분했다. 나무 그늘이 어째 더욱 짙어진 것만 같았다.
“넌 언제까지 마을에 머물거니?”
“딱히 마을에 온 건 아니야. 여기에, 온 거야.”
연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혼자 돌아다니기엔 너무 어려 보이고, 산은 위험했다. 누구랑 같이 왔나?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는데.
“곧 해가 지면 위험할 텐데, 돌아갈 수는 있겠어?”
“물론이지.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야?”
“당연히 걱정이 되는 걸. 넌 어린아이야. 혼자서 산에 다니기엔 위험해. 나처럼 산에서 나고 자랐으면 모를까.”
사내아이의 웃음소리는 생각보다 낮았다.
“착한 아이네. 난 괜찮아. 이제 가봐야겠다. 다음에 또 만나.”
사내아이가 떠나간 자리에서는 짙은 풀내음이 났다.
연아는 오늘 만난 사내아이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연, 아버지도 그 아이를 모르는 눈치였다.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네. 연아는 옅은 후회를 느꼈다. 다음에 또 만나자고 했으니,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봐야지.
그렇게 한 해가 흐르는가 했다. 겨울에 먹을 것을 구하려던 연아의 아버지가 산비탈에서 잘못 미끄러져서 목이 꺾이지만 않았어도 평탄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장례 치르는 것을 도와주는 동안, 연아는 어쩐지 현실 같지 않아서 그저 멍하니 따랐다.
이제 오두막에서 연아 혼자 지내야 했다. 열세 살이 된 연아는 마을에 친척도 없었고, 워낙 가난한 마을이라 나서서 돌봐주겠다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가끔 먹을 걸 가져다주니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봄이 오고, 집 옆의 작은 텃밭을 일구고, 아버지가 남겨두신 책도 뒤적여보고, 산에서 먹을만한 열매도 따오고 하면 하루가 금방 갔다. 그렇게 혼자가 된 슬픔을 도닥이며 지내고 있을 때, 그 사내아이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도 개울가였다. 사내아이는 부쩍 자라 있었다. 연아보다 클 정도로.
“안녕.”
“안녕. 오랜만이네.”
연아가 대답했다. 사내아이는 오두막 쪽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인기척이 없지.
“혼자 있어?”
“응. 아버지는 지난겨울에 돌아가셨어.”
“저런.”
사내아이는 묘한 연민을 느꼈다.
“아직 어린데.”
연아는 그 말에 웃었다. 누가 누굴 보고 어리다고 하는 거야.
“너 이름은 뭐야? 난 연아야.”
“내 이름은 나무아래야. 나무 아래에서 태어났거든.”
신기한 이름이네.
“그럼 ‘나무아래야’, 하고 불러?”
“부르는 건 뭐든 상관없어. 뭐라고 부르던지 본질은 바뀌지 않으니까.”
“그래도 나무아래는 예쁜 이름이야. 나무아래야.”
사내아이가 씨익 웃었다. 인간 아이와 인연이 이어졌다. 나쁘지 않은 기분인걸. 당분간은 이곳에 머물러야겠다. 가을이 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있을 터였다.
“나 너희 집에 가도 돼?”
“오늘은 일찍 돌아가지 않을 거야?”
“응. 조금 더 있고 싶어 졌어.”
“음, 좋아. 아버지가 쓰시던 방이 있으니까.”
이쯤 되니 연아는 사내아이가 떠돌이 고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쉽게 곁을 내어주었는지 모른다.
‘혼자니까. 나도, 너도.’
“혹시 갈 데가 없으면 우리 집에서 계속 지내도 돼.”
“정말?”
“응, 정말.”
나무아래는 예의 그 낮은 웃음을 웃었다.
“그럼, 여름동안 실례 좀 할게.”
둘은 같이 텃밭을 일구고, 산에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연아는 외롭지 않게 혼자가 된 첫여름을 버틸 수 있었다.
나무아래는 산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나무 아래에서 태어났다더니, 숲 한가운데에서 태어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아는 좀 더 많은 나무와, 풀과, 꽃을 배웠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뭇잎 색이 변하는 계절이 왔다.
“가을이구나.”
그가 어딘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봐야 해.”
연아는 조금 슬퍼졌다. 아니, 많이 슬픈 것 같았다.
“어디로 가는데?”
“해야 할 일이 있어. 어쩌면, 나중에 말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연아가 저도 모르게 나무아래의 소매를 잡았다.
“또, 올 거야?”
“응, 내년에.”
‘그럼, 기다리면 되겠다. 기다릴 수 있어.’
연아는 그렇게 가을을 나고,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했다. 아마 나무아래는 여름에 올 거야. 연아는 날이 더워지기를 기다렸다.
“연아야.”
‘왔다.’
연아는 냉큼 달려가 나무아래를 안았다.
“어? 이제 나보다 훨씬 크잖아?”
나무아래의 웃음소리는 조금 더 낮아진 것 같기도 했다.
둘은 손을 잡고 산을 누볐다. 작년 여름처럼, 나무아래는 한동안 머물겠다 했다. 연아는 기뻤지만, 가을이 오면 떠날 것을 알기에 벌써부터 여름이 아쉬웠다. 마주 잡은 단단한 손이 마치 오라버니의 손처럼 든든한데. ……어라, 오라버니?
“나무아래야. 너 몇 살이야?”
“너랑 비슷할걸? 아마도.”
“나 올해 열넷이야. 처음 봤을 땐 나보다 어려 보였는데. 지금은 꼭 오라버니 같다구.”
그래도 생긴 건 여전히 고왔다. 선이 조금 더 굵어져 봤자, 고왔다. 개울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손을 저어 물을 흩트려 놓았다. 여자애인 나보다 고우면 어떡해. 괜히 나무아래를 쏘아보았다. 영문을 모르는 나무아래는 그저 눈을 곱게 접으며 웃을 뿐이었다. 결국 연아는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예쁘게 웃지 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야. 이 바보.”
휙, 토라진 듯 앞서 걷는 연아를 따라 걸으며 나무아래가 말했다.
“내 눈엔 네가 웃는 게 세상에서 제일 예뻐.”
그러니까 웃어줘. 그렇게 토라지지 말고.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 그동안 네 웃는 모습을 많이 보고 싶은데.
‘난 인간 아이를 달래는 법은 모른단 말야.’
나무아래는 속엣말을 숨기고는 빨간 산딸기를 따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 연아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연아의 볼이 산딸기처럼 붉어진 건 못 본 척해주기로 하고서.
그해 여름도, 둘은 함께여서, 좋았다.
***
어느덧 연아는 열여섯이 되었다.
계절이 흘러 여름이 왔다. 여름이 왔는데, 목을 빼고 기다려도 나무아래는 오지 않았다. 오다가 무슨 일이 생겼나? 연아는 매일 산을 뒤졌다. 그래도 기다리는 이는 오지 않았다. 매미들이 끽, 끽하고 죽어가도록, 나뭇잎이 붉게 물들다 못해 떨어지도록, 흰 눈에 덮여, 발이 푹푹 빠지도록 돌아다녀도, 만나지 못했다.
서신이라도 보내주면 좋으련만.
‘난 여기 있는데, 넌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방 안에서 바느질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밖을 내다보았다.
그렇게 봄이 왔다.
산이 여린 초록색으로 싱그럽게 물들고 진달래며 개나리며 예쁜 색으로 수놓는 계절.
열일곱이 된 연아도 싱그럽게 피어났다. 가끔 마을에 내려갈 때면 아주머니들이 시집갈 때가 다 되었다며 너스레를 떨고, 청년들이 흘끔흘끔 훔쳐보는 일이 늘었다. 그중 장태는, 열여덟이랬나 열아홉이랬나, 아무튼 오두막에 올라와 곱게 모은 풀꽃들을 수줍게 건네고 달려 내려가곤 했다. 연아는 꽃들을 곱게 말려두었다. 장태인지 장대인지는 알 일 없지만 꽃은 죄가 없으니까. 하지만 장태는 그게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 표시인 줄 알았나 보다.
“나랑 혼인하자.”
얼굴이 벌게져서 뚝딱 건넨 한마디에 연아가 얼마나 놀랐던지.
“나는 아직 혼인할 생각이 없어요.”
“그럼 나중에 나랑 혼인하자.”
끈질긴걸. 연아가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혼인이라. 정말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생각해 볼게요.”
“알았다.”
그 후로도 꽃은 몇 번인가 더 가져왔지만, 그저 말려서 쌓아둘 뿐이었다.
올해엔 오겠지.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이어서.
그리하여,
“연아야.”
한층 낮아진 목소리, 한층 커버린 키에 못 알아볼 법도 한데.
“나무아래야.”
왜 작년엔 오질 않았느냐고 섧게 따지지도 못하고 그저 가까이 다가가 치맛자락만 붙잡았다.
“왜 울어.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당황한 건 나무아래였다. 한 해쯤은 오지 않아도 괜찮겠거니, 했으나 오히려 버티기 힘들었던 건 자신이라서. 그 못 본 한 해동안 몰라보게 달라진 게 자신만은 아니어서.
자연스레 이 산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억지로 돌리는 게 나도 힘들었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걸 참느라,
여인으로 곱게 자란 아이를 소중히 품에 안고 달래었다.
“보고 싶었어, 연아야.”
작은 등의 떨림이 멎을 때까지 도닥이고, 도닥이고, 도닥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