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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마린보이>

'부성애'에 대한 영화들이 자주 등장하는 요즘, <올드마린보이> 역시 그 맥락을 따르는 작품이다. 부성애,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중심 소재이자 주제라면, 이 영화는 '탈북자들의 삶'까지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주인공 박명호는 2006년 서해바다를 통해 인천으로 넘어왔다. 가족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온 그. 자신과 아내, 둘 뿐이었다면 내려오지 않았겠지만 두 아들의 미래를 위해 위험과 불안을 감수하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고백하는 그다. 목숨을 감수하고 정착한 남한에서의 생활은, 역시나 녹록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박명호는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한의 국적을 가졌음에도 매일 바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목숨을 건 '머구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는 불안의 나날을 걷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있어서도 상당한 부담감을 안고 있는 그다.

목숨과 가족의 생계에 대한 부담을 지고 살아가는 박명호의 삶은 그가 매일 짊어지는 120kg(장비+몸무게)이상의 무게 이상으로 힘겨워보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들까지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그가 고백했듯, 필자 역시 박명호와 그들 가족에 대한 연민이 들었다. 물론, 스크린을 통해 '지켜보는 자'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향한 시선이 연민에서 그치겠지만,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경쟁의 위치에 선 사람들은 탈북자 가족들을 무시하고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것. 그 사회적 부담까지도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탈북자의 심경을 지켜보면서, 가슴 한 켠이 뭉클해졌다.



”처음엔 동정의 눈빛으로 우리를 본다. 그 다음에 사업을 하면 제어를 하려고 그러더라. 탈북자를 그냥. 노동력으로 부리려고 하지 치고올라오는 걸 허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많더라고.“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다. 탈북자들이 이렇게나 많았을지는. 그들의 고충은, 스크린 너머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체력을 제외한 인력, 권력, 지력, 재력. 그 어느 것도 갖지 못한 자들의 설움을 토로하는 박명호의 말들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히 자리잡고 있다. 고되고 답답하고 불안한 탈북 이후의 삶은, 탈북 이전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보다 당장 내일 아침 가족들이 먹을 쌀이 떨어질까봐 염려하는 아버지의 삶. 형태는 다르겠지만, 이 시대 가장들의 공통적인 내면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박명호 가족은 한데 모여 고향마을의 이름을 딴 '청진호 횟집'을 연다. 아내가 가게를 운영하고 박명호는 매일 아침 장비를 챙겨 바다로 들어간다. 선장은 큰 아들이 맡았다. 가장 큰 믿음이자, 의지의 공동체인 가족이 모여 이뤄낸 작은 성과. 이들의 앞날에는 행복과 성공이 깃들길 바란다.



사실 필자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하지만, 머구리의 삶에 대한 관심은 없었기 때문. 하지만 영화는 생각하지 못했던 탈북자의 삶까지 조명했고, 조금의 지식도 없었던 한 머구리의 일상을 통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그들을 향한 경외까지 느끼게 됐다. 보는 동안 '와!' 하며 감탄사를 내뱉을 만한 장면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뤽 베송 감독의 <그랑 블루>라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것과 일맥하는 장면들이 다수 등장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기대하기 힘든 영상미를 보게 된 것이다.



물에서 살다 생을 마감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고백한 박명호. 그의 직업 의식, 가족을 향한 사랑과 책임감에 박수를 보내며, 더 희망찬 앞날이 이어지길 멀리서나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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