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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늦가을의 경주

다시 찾은 늦가을의 경주.
매년 한 두 번은 찾게 되는 경주이다. 굳이 새로운 곳들에 발을 디디지 않아도, 그저 경주 땅을 밞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설렌다.

올해에는 경주 방문이 처음이다. 꽤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고, 고향 부산에서 오랫동안 연을 이어 온 친한 언니도 볼 겸 경주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지역이라 그런지, 경주에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물론, 경주로 향하는 시간도 예상보다 길었다.





우리는 먼저, 황리단길을 걸었다. 황리단길은 황남동 대릉원 일대의 거리로, 신라의 고분과 능과 함께 현대적인 감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마디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엿보이는 장소.





몇 해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번화하지 않았던 골목들이 명백한 관광지 느낌으로 변한 광경을 보며 언니와 나는 "와, 많이 변했네! 우리, 함께 왔을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라는 식의 대화를 주고 받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해와 씁쓸함이 공존했다. 관광지로써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미래지향적인 점에서는 옳지만, 전통이 훼손되지는 않을까, 하는 약간의 우려심이 들기도 했으니까.





황리단길에 들어선 건물들 대부분은 전통 가옥의 색을 입고 있다. 누가 봐도 '한국의 거리'임을 명백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지역색이 짙은 곳이다. 그리 많이 걸을 생각은 없었는데, 걷지 않으면 놓칠 것 같은 풍경들이 대부분인지라 차에서 내려 걷고 또 걸었다. 골목 사이를 누비며, 다양한 가게들(찻집, 식당, 게스트하우스 등)을 기웃거렸다. 사실, 서울에도 서촌·북촌 같은 곳들이 이와 비슷한 지역색을 뽐내고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전통색이 느껴졌다. '경주'라는 지역 브랜드 때문일테다.

길을 걸으며 관광객들과 짧은 눈인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특히 기억에 남았던 집단(!)이 있다. 바로, 초등학교(아니지, 그들의 시절에는 국민학교) 동창회 모임이었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그들은, 옛 교복을 차려입고 자전거를 함께 타며 이색적인 동창회를 즐기고 있었다. 깊은 가을색을 입은 예스러운 공간에서, 옛 추억을 온 몸에 입은 채 즐기는 동창회. 단체 사진을 찍고 있길래, 나와 언니도 덩달아 사진기를 들었다. 사랑스러웠다.





우리가 찾은 날은 11월 4일이다.
늦가을의 색과 정서가 깊게 밴 덕에, 우리의 구경거리가 더해졌다. 곱게 차려입은 붉고 노란빛의 나뭇잎들을 올려다보고, 거친 바람을 못 이긴 낙엽들을 지르밟으며 더 풍성한 가을날을 만끽했다. 그리고 우리는 (또)낙엽을 주웠다. 유치원 선생님인 언니는, 지난 경주 여행에서도 낙엽들을 주웠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만져보게 만들고 싶다는 예쁜 뜻이 담긴 낙엽줍기 활동. 나 역시 적극 동참했다.





가을 하면, 단풍과 낙엽 뿐 아니라 갈대와 억새가 가득찬 풍경도 즐겨야 할 것. 첨성대 앞에 조성된 핑크뮬리 밭이 있다고 해서 들러봤는데, 예상보다 부지가 좁아 다소 실망했다. 많은 이들이 포토존에서 사진을 남기려 줄을 서있기도 했는데, 우리는 그냥 그곳 일대를 훑고 지나가는 데 그쳤다.





가고 싶었던 카페엔 못 들렀지만, 우연히 찾은 멋스러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 주문해놓고 그 동안 못해왔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탓일까. 다소 두서와 요점 없는 이야기들을 나눴지만, 그래도 좋았다. 마치, 어제 만났다 헤어진 친구처럼 우리는 언제나 자연스러운 만남을 갖는다. 이것이 진정한 친구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랜만에 봐도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사이. 거리낌 없이 속내를 털어놓고, 웃고 공감하며 때로는 위로해주는 사이. 나와 언니는 그런 사이다. 자주 보지 못해, 아쉽고 서운하지만 헤어질 때면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돌아가는 우리. 이번엔 조금 더 앞당겨 만나자, 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경주는 나와 언니에겐 추억이 많이 서린 곳이다. 개인의 추억도 있거니와, 함께의 추억도 가득한 곳. 잠시 만나, 경주의 정취를 즐기며 다반사적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2017년 늦가을의 경주에서 얻은 행복. 이 행복의 기운, 당분간은 더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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